여행 에세이- 다카마스

by 김아나


내가 아이 러브 유를 만난 건 일본 다카마쓰 현의 나오시마 섬에서였다. 당시 다카마쓰 현에서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한국인들에게 쿠폰을 무지막지하게 뿌렸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왕복 셔틀 비용, 리츠린 정원 무료입장권, 유람선 할인권. 나는 휴가에 맞추어 비행기 표를 끊었다. 이 여행이 저렴하지만 확실한 정신적 휴식을 제공하리라 믿으면서. 몇 달 뒤 나는 다카마쓰로 떠났다. 시내에 도착하자마자 냉우동을 먹고 나오시마로 가는 유람선을 타러 갔다.


25분가량 지나서 섬에 도착했다. 난 아무 생각도 없었다. 사진을 찍고 싶지도 않았고 뭘 하고 싶지도 않았다. 비행기에 이어 유람선까지 탄 건 내게 꽤나 고된 일이었다. 항구 근처에는 작은 주택들, 음식점과 관광 안내소, 식당, 미술관으로 가는 무료 셔틀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나는 열쇠고리를 하나 산 뒤 도로를 따라 걸었다. 걷는 내내 열쇠고리에 달린 방울 소리가 났다.


나는 한 1킬로미터가량 걷다 지쳐 미술관으로 향하는 셔틀버스를 기다렸다. 나오시마는 섬 전체가 미술관이라고, 다카마쓰 현에서 나눠준 공식 여행 안내문에 쓰여 있다. 나는 소다색 하늘을 찌르는 오벨리스크가 있는 미술관 정원을 발견해 내렸다. 미술관 내부에선 고요를 지키기 위해 열쇠고리의 방울 부분을 손가락으로 누르고 다녔다. 모네의 수련, 월터 드 마리아의 흑요석 빛 구체, 안도 다다오, 제임스 터렐, 데이비드 호크니, 브루스 나우만, 이우환, 기타 등등. 아, 하품. 하품.


재미가 없었다. 나이 들고 부유한 예술가들이 내게 무슨 깨달음을 준단 말인가? 짜증 나. 나는 지중해 미술관에서 나오며 속으로 말했다. 하여간 예술가들은 예술가들이고, 나는 나지, 나는 미지근한 사람이다. 아침에 그럭저럭 일어났고 회사를 그럭저럭 나갔고 주말에 그럭저럭 놀았으니까. 정말 재미없다. 재미없는 휴가야. 나는 앞만 보고 걸었다.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마음 놓고 방울을 흔들었다. 습기 때문에 재채기가 났다.

1시간 정도 걸으니 항구가 보였다. 나는 유람선 대기실에 앉아 있다가 이렇게 나오시마 방문을 끝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깥으로 나가 주택가를 거닐었다. 주택 앞의 소박한 정원에는 꽃과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본의 전통 석상 따위가 즐비했다. 지루해서 담배가 피우고 싶었기에 골목골목을 살폈다. 흡연구역을 찾는 흡연자는 언제나 남들이 가지 않는 곳을 찾아낸다. 나는 한 사람이 겨우 설법한 조악한 길을 찾았다. 길의 끝에는 키치한 외관의 큰 건물이 있었다. 이상한 건물이었다. 나는 필터를 빨아들이며 열쇠고리 방울을 흔들었다.


그때 왼쪽 골목에서 불쑥 할머니가 나타났다. 할머니의 행색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머리카락이 잿빛이었고 동공이 맑았던 건 확실히 기억난다. 그러니까 할머니는 마치 나오시마 섬이 자랑하는 예술성의 구체적 실체처럼 보였다. 하루 내 미술관에서 보았던 그림과 설치미술만큼 할머니도 일종의 작품이었다. 나오시마의 예술품인 할머니가 나를 향해 무어라 말했다. 잘 들리지 않았다. 나는 담배 때문인가 싶어 한국어로 죄송하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를 향해 또박또박 말했다.


아이 러브 유?


나는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닷바람이 불었고 방울이 흔들렸다. 나와 할머니는 약 1미터가량을 두고 마주 보고 서있었다. 나는 뜻밖의 곳에서 뜻밖의 인물에게 사랑 고백을 받았다. 나는 순간 좀 우쭐해졌다. 나오시마의 예술적 상징이 내게 사랑을 맹세했으니 말이다. 그러자 그동안 섬을 대충 둘러본 게 후회됐다. 나는 부랴부랴 골목과 이상한 건물을 눈에 담았다. 할머니는 그런 나를 보며 다시 말했다. 할머니는 내가 이상한 건물이라 칭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한 번 더 말했다.


아이 러브 유?


그런 뒤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할머니는 키치한 건물 벽에 손바닥을 대고 마지막으로 말했다. 아이 러브 유. 나는 잊을 수 없었다. 방울 소리에 감긴 할머니의 잿빛 머리칼을. 맛있는 아이스크림 색의 맑은 하늘을 반사하는 할머니의 동공을. 할머니의 사랑 고백은 왠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갑자기 상큼하고 부드러운 우동면발의 식감이 떠올랐다. 내가 우동면발에로 생각이 미쳤을 때 할머니는 등을 돌리고 골목으로 사라졌다. 할머니는 여행자의 오감을 전부 열어놓고 홀연히 떠난 것이다.


알고 보니 이상한 건물의 이름이 아이 러브 유였다. 건물은 여러 예술가가 모여 대중목욕탕을 갤러리로 꾸몄고 아이 러브 유라고 이름 지었다. 할머니는 관광객들이 이 근처에서 하도 아이 러브 유 대중목욕탕 갤러리를 찾기에 내게 선의를 베푼 것뿐이었다. 나는 이상하고 기분 좋은 오해 속에서 아이 러브 유 대중목욕탕을 관람했다. 절반쯤 둘러봤을 때 유람선 시간이 되었다. 배도 고팠다. 나는 다카마쓰 선착장에 도착하자마자 냉우동에 튀김을 올려 먹으리라 다짐했다.


유람선에 타기 전 나는 나오시마에 도착한 이래 처음으로 사진을 찍었다. 노란색 바탕에 검은 점이 박힌 호박 건축물이었다. 호박은 실크 같은 청록색 바다를 등지고 나른하게 서 있었다. 나는 호박의 팔자가 참 좋다고, 늘어지게 놀고먹는구나, 생각했다. 몇 년 뒤 호박은 거센 태풍 탓에 바다에 휩쓸려 엄청난 모험을 했다고 들었다. 또 몇 년 뒤 나는 매일 아이 러브 유라고 말할, 고양이 롤라를 길에서 데려왔고 목에 방울을 달아주었다. 그리고 아침이 저주스러울 때마다 롤라에게 아이 러브 유라고 말하며 녀석의 목에 달린 방울을 건드린다. 아이 러브 유, 그 문장에 담긴 돌발적이고 이상했지만 동시에 따뜻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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