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elvet Underground - Stephanie Says (White Light/White Heat, 1968)
The Velvet Underground - Here She Comes Now (White Light/White Heat, 1968)
사람 손을 탄 고양이에겐 심도가 깊은 비극이 느껴진다. 그들이 인간에게 이마를 들이댈 때면 어쩔 수 없음의 정서가 농도 짙게 다가왔다. 이마를 들이대야만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누군가 회칼로 자자의 가슴팍을 난도질하는 것만 같았다. 칼끝이 뱉어낸 쇳가루가 심장 부근에서 부유하는 것같이 아팠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예순 마리에 육박하는 고양이들의 심장 박동이 느껴지는 듯했고 그 떨림이 멈추지 않기를 바랐다. 박동이 가슴을 두드릴 때마다 쇳가루가 근육에, 내장에, 장기에 상처를 냈지만, 그들의 심장이 멈추지 않기를.
집 안의 고양이들은 대부분 사람 손을 탄 아이들이었다. 야생고양이로 태어난 녀석들은 사람의 집에 기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엄마가 무상으로 돈을 받고 고양이를 찾아다닌 것도, 모두 사람과 공존했던 고양이들의 비극적인 결말을 본능적으로 감지했기 때문이리라. 그녀는 어쩌면 저주받은 게 아닐 수도 있다. 신유선 씨는 우둔하고 바보 같다.
다시 한번 갓등의 스위치를 눌러보았다. 전기가 끊긴 게 확실하다. 저택에는 밝음이 실종되었다. 그녀의 이마 위에 늘어진 어둠의 무게가 시간이 지날수록 묵직해졌다. 유선은 이런 집에서 매일 어둠을 머리에 지고 살았던 걸지도 몰랐다.
십 년간 고양이들의 입소 역사를 목격한 반반이의 이마에도 묵직한 어둠이 들러붙었을 것이다. 뒷목과 골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맥주 캔을 하나 더 땄다. 그녀는 고양이라는 이상한 동물에게 제가 느끼는 연민을 깨끗이 씻어내기 위해 오물을 치우기로 결심했다. 구아노를 치우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다.
엄마와 여전히 전화 통화가 되지 않았다. 전원이 꺼졌다는 멘트만 반복되어 들렸다. 인스타그램 계정도 업데이트가 없다. 최근 게시물에 리플만 계속 달린다. 자자는 고양이들을 내버려 두고 기숙사로 돌아갈까 생각했다. 그러다가도 몇 시간만 치우면 구아노를 처분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택시를 부를 순 없었다. 사실 구아노를 치우는 것도 엄마의 일이었다. 하다 하다 박쥐까지 떠맡은 건 결국 유선이 아닌가. 그렇지 않은가. 자자는 반복되는 걸레질에 콧등을 따라 흐르는 땀을 닦으며 속으로 외쳤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지 않은가.
엄마, 유선. 그녀는 부모에게 상속받지 않아도 될 것을 상속받았고, 딸에게는 상속하지 않아도 될 것을 상속했다. 자자는 그 사실만 생각하면 가끔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엄마가 없으면 여긴 도대체.
그래도 치우기로 한다. 집을 나간 뒤 자자는 유선의 전화를 무시했다. 문자에 답장하지 않았다. 기숙사에 찾아와도 모른 척했다. 엄마는 기숙사 앞에 자자가 좋아하는 갓김치, 고들빼기, 오이무침을 담은 통을 놓고 갔다. 경비가 김치 냄새가 난다며 가져다줬을 때, 뒤늦게 미안하다, 네가 없으니 정말 힘들다, 다른 사람에게 일 시킬 수 없다, 너 여야만 한다는 메모는 버리고 김치 통만 가져왔다. 부릴 사람이 없으니 힘든 건가, 인스타그램 리플로 피치 못할 사정을 끝없이 반복하는 사람들처럼 자자에게도 집을 떠날 사정이 있는 것임을 유선이 알아야 했다. 그리고 자자는 엄마가 고양이들을 반려동물로 생각하지 않음을, 그저 못난 딸을 대체할 유아적인 애착 동물로 여긴다는 사실 역시 깨달았다.
그래도 청소를 했다. 빗질과 걸레질은 그동안 엄마에게 비정하게 군 태도에 대한 일종의 사과였다. 어제와 오늘 딱 이틀만 열심히 청소하자. 서로에게 진 이상한 빚을 청산하는 것이다. 구아노가 사라지면 자자와 유선을 둘러싼 끈도 끊기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상한 끈. 하지만 끈은 질겼다. 캣 폴에 감을 면 끈은 모자랐다. 끈이 모자라도록 내버려 둘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길고 많던 끈은 어디로 간 걸까.
악취가 심해졌다. 치워도 사라지지 않았다. 문틈에 빨간 구더기가 끓어 틈새가 점선처럼 보였다. 결국 제거해야 하는 건 북쪽 방에 있었다. 그녀는 문손잡이를 잡고 돌리려다 문득, 박쥐가 여름잠을 자는 게 아니라 죽어버린 게 아닌가 싶었다. 사후경직이 일어나 빳빳하게 굳어 매달려 있을 수밖에 없는 상태라면. 이게 사체 냄새라면. 자자가 치운 것이 똥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면.
문고리를 잡은 자자의 손에 구더기가 떨어졌다. 그녀가 상상한 구더기는 이토록 검붉은 색이 아니었다. 고양이들의 입도 붉었다. 이 집의 모든 것이 부조리했다. 창 너머 밤하늘 구름이 묵직하고 시꺼먼 엉덩이를 지상을 향하여 드러내는 중이었다. 썩어가는 밭에 널브러진 농작물 위로 물방울이 적적하게 떨어지다 말았다를 반복했다. 자자는 걸레를 반으로 접으며 생각했다. 이렇게 영원히 구아노만 치우다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영원히 고양이들 엉덩이를 닦아주고 똥오줌을 치우다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가만히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다리에 경련이 왔다. 몸이 알콜을 불렀다.
그녀는 거실 바닥에 요를 깔고 누웠다. 소주 몇 모금을 마시니 진정이 되었다. 밭에 뿌리고도 엄청나게 남은 구아노는, 가장 큰 쓰레기봉투에 담아 집 밖에 내놓았다. ‘박쥐 똥, 품질 좋은 구아노입니다. 거름으로 쓰세요. 무료입니다.’ 라고 쓰인 똥 봉투 다섯 개.
그녀는 엄마가 놓고 간 플래시로 집안 이모저모를 비추었다. 불빛을 발견한 고양이들이 소음 없이 다가왔다. 뱅갈이는 거의 맹목적으로 자자에게 의존했다. 뱅갈이가 자자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검은 털 고양이, 삼색이, 카오스, 먼치킨, 랙돌과 노르웨이 숲, 푸른 것들, 흰 것들, 무채색인 것들, 수컷들, 암컷들, 새끼들, 생식능력이 없는 무성의 것들, 고양이의 질서를 따르고 자란 토끼와 포메라니안, 바닥에 숨어있던 이구아나, 도망간 줄 알았던 햄스터. 모두 자자의 겨드랑이와 품, 배와 명치 위, 가랑이 사이를 파고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나뭇가지고 몸 곳곳에 똬리를 틀고 누운 고양이들은 꽃봉오리라 상상했다. 어둠이 깊어질 때마다 더 많은 꽃을 개화하는 야행성 꽃나무. 나무뿌리는 구아노를 먹고 쑥쑥 자랄 것이다.
하늘 끝까지. 지옥까지.
짐승들과 자자가 오늘 밤 일구어낸 비정상적인 화합에는 어딘가 비정한 맛이 있었다. 녀석들과 자자가 함께 모여 살아야 하는 어쩔 수 없음의 씁쓸한 향기 말이다. 짐승들이 인간의 손을 타길 원한 적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녀석들에게 주인이 필요 없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답을 낼 공식이 없다. 그녀는 반반이가 돌아오지 않아도 이해하기로 했다.
내일 하루만 더 엄마를 기다려보고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기로 했다. 신고를 할 생각을 하니 심장이 뛰었다. 박동이 머리꼭지까지 올라왔다. 낮게 그르렁대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자신의 골통에서 나는 소리인지 장마의 전조인지 알 수 없었다. 술이 필요했다. 부엌으로 가려던 찰나 고양이들이 옹성옹성 모인 게 보였다. 녀석들 사이를 들여다보니 엄마가 사용하던 휴대전화가 있었다. 녀석들이 작은 이빨로 갉고 물어 모서리가 한참 닳은 전화기가. 전화기 전원을 눌러보았다. 아무리 눌러도 켜지지 않았다.
다음 날. 일요일 새벽 다섯 시 반. 자자는 헐떡이며 편의점에서 나왔다. 안개 연기가 자자 앞에 막을 쳤다. 짐을 들고 집으로 가기 위해선 이 모든 연기를 뚫고 지나야 했다. 한 걸음을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없어지지 않아. 치우고 치워도 계속 생긴다고. 그녀가 쉰 목소리로 중얼댔다. 지난 새벽 북쪽 문 틈새로 구아노가 또다시 흘렀다. 분명 자기 전에 깨끗하게 닦았는데도 흘렀다.
구아노가 고양이와 개와 이구아나를 온통 덮어버렸다. 녀석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비명 사이로 반반이가 나타나 북쪽 방 고양이 구멍으로 들어갔다. 그토록 찾던 반반이가.
김장 봉투, 방진 마스크, 고무장갑, 고양이 사료, 습식 캔, 여명 두 병, 타이레놀 두 개, 활명수 세 병을 샀다. 집으로 향하며 타이레놀 다섯 알을 물 없이 입에 털어 넣었다. 그녀의 양옆으로 선 주택들은 이른 안개에 대비하지 못한 채 연기 속에 잠긴 상태였다. 안개라는 캔버스 위로 드문드문 지붕만이, 창문만이, 우체통만이 표정 없는 얼굴을 드러냈다.
집 앞의 똥 봉투는 모조리 사라졌다. 누구 하나 엄마의 안부를 물으러 오지 않았지만 구아노를 가지러는 오는구나. 대문을 열자 순무와 김장 무, 케일과 상추가 비정상적으로 웃자란 모양이 보였다. 담을 넘고도 남을 정도로 키가 큰 식물들. 고양이 네 마리의 무덤 위에도 거대한 새싹이 돋아났다. 자자의 키를 훌쩍 넘는 길이였다. 잎의 두께가 손가락 마디만큼 두꺼웠다. 현미경으로 확대한 것처럼 잎맥과 줄기 패턴이 자세히 보였다. 사람의 혈관 같이. 식물들은 자자를 향해 고개를 깊게 숙였다. 케일을 바라보는 자자의 입에서 침이 흘렀다. 손등으로 침을 훔치며 그녀가 중얼댔다. 술에서 덜 깬 걸까.
공장에 술에 취한 채로 갈 수 없었다. 술이 깨는 데엔 하루가 꼬박 걸리니 새벽부터 깨려고 노력해야 했다. 그녀는 집 안으로 들어가 여명과 활명수 총 일곱 병을 내리 마셨다. 엄마는 돌아오지 않을 게 분명했다. 자자가 기숙사로 돌아가 버리면 고양이들은 아사하거나 구아노를 먹고 바깥의 케일만큼 크기가 커질지도 몰랐다. 커다란 고양이의 세상에서 사람들이 살 수 있을까.
그토록 징그럽고 거추장스럽던 고양이들을, 그토록 사랑하는 반반이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밖엔 없었다. 이 맹목적인 감정의 무게는 꽤나 무거웠지만 과연 유선이 짊어졌던 무게만큼이나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엄마는 충분히 도망갈 만했다. 어쩌면 실종 신고를 하는 걸 원치 않을지도 모른다. 영원히 숨어버린 걸지도 모르니.
어젯밤 그녀와 함께한 고양이들은 사라졌다. 집안의 모든 창을 열기 시작했다. 구아노의 냄새에는 악마적인 중독성이 있다. 사람을 취하게 만든다. 뱅갈을 버리고 간 사내가, 이름도 얼굴도 모를 지새동 주민들이 선뜻 똥을 가져가게 만든 건 구아노가 내뿜는 악취의 이상한 매력 때문이다.
방진 마스크를 썼다. 문으로 다가갔다. 한 손에는 엄마가 고양이를 찾을 때 썼던 LED 랜턴을, 한 손에는 식칼을 들고. 박쥐가 공격하면 칼로 찌를 것이다. 엄마가 고양이들에게 주기 위해 닭과 토끼, 양과 오리를 죽여 생고기를 식사로 준 것처럼.
문으로 향하는 걸음마다 구아노가 눌어붙어 듣기 싫은 소리를 냈다. 오물 냄새가 방진 마스크를 투과했다. 눈이 시렸다. 소리를 듣고 온 육십 마리의 고양이들이 일제히 거실에 자리를 잡고 왜앵왜앵 울었다. 고양이들의 숲. 녀석들은 빽빽한 잡초와 들꽃과 이름 모를 괴식물이 되어 자자가 걷는 길을 방해했다. 발톱을 세워 등까지 올라타고, 종아리를 물고, 발등을 할퀴고. 그녀는 구아노와 고양이를 몸에 이고 북쪽 방으로 향했다.
문손잡이에 붉은 구더기들이 똬리를 틀고 인간도 동물도 무엇도 아닌 것처럼 움직였다. 핏물을 흡수해 부풀어 오른 작은 들깨 같은 것들이 제 존재를 과시했다. 그래도 열어야 했다. 박쥐를 내다 버려야 했다. 박쥐가 반반이를 잡아먹으면 어떡하나. 그녀가 장갑을 낀 두툼한 손으로 문을 열었다.
문을 밀었다. 문돌쩌귀가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다.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짙은 냄새에선 색이 보인다. 흑색이. 북쪽 방은 지난 세월의 기운이 여전히 감돌았다. 동그랗게 말려 내려간 벽지, 습기의 기둥에 매달린 검은색 물체. 아무리 깊은 여름이라 할지라도 북쪽 방에 들어가려면 전등을 켜야 한다. 검은 것 앞에 선 자자는 투박한 손짓으로 랜턴의 전원을 켰다. 휠을 끝까지 돌려 가장 밝게.
스포트라이트는 속절없이 허공에서 배회하다가 검은 것의 무릎을, 허리를, 쇄골을, 얼굴을 비추었다. 둥그런 빛이 비로소 비춘 건, 박쥐가 아니라 고양이들을 즐겁게 해주던 로프로 여러 번 목을 감은 엄마, 유선의 얼굴이었다. 생이 빠져나가 초록색으로 변한 얼굴. 스포트라이트 빛이 미세하게 떨렸다. 랜턴을 껐다.
어둠의 장막이 그것을 영원히 덮길 바랐다. 아무리 밝은 빛으로 비추어도 결코 보이지 않을 만큼 두껍게 덮어버리길. 사라져버리길.
다시 랜턴을 켰을 때 스포트라이트는 엄마의 메마른 눈코입, 꺾인 목, 끈에 쓸린 짙푸르고 굵은 생채기들을 비추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사정이 있겠지, 워낙 마음이 가는 대로 고집대로 사는 사람이니 그런 거겠지 싶다가도 이해할 수 없었다. 심장 속에 물먹은 솜덩이 같은 것들이 차올랐다. 숨쉬기 힘들었다. 화장대 위에서 고양이 우는 소리가 났다. 자자는 반반이를 향해 플래시를 비출 수 없었다.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새벽 구름은 제 입속에 억지로 지옥을 욱여넣은 듯 낯이 납빛이었다. 문 앞에 자리를 차지한 플로렌시오가 죽은 고양이의 눈알을 파먹었다. 정원에서 아비니시안과 샴이 러시안 블루 한 마리를 잡아먹는 중이었다. 조그맣고 통통한 입술이 붉다. 녀석들이 자자를 향해 얇고 날카롭게 울었다. 날 것에 익숙해져, 악의 없이 맑기에 더욱 몰인정한 목소리로. 정원의 아이들이, 저택과 무덤 속의 고양이들이 일제히 울부짖기 시작했다.
자자는 리사로 개명하려고 했다. 이제 와서 이름을 바꾸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싶다.
제발 비가 오길 바랐다. 장마인데 도대체 왜 비가 오질 않는가. 비가 와서 이 모든 것을, 엄마의 냄새와 존재, 그녀가 질끈 묶어 저승으로 가져간 묵직한 절망감을, 세상의 모든 존재에 대한 오해를 모두 세척해내었으면 했다. 비를 토해내라. 도대체 왜 비가 안 오는가. 어디선가 낮게 그르렁대는 소리가 났다. 자자는 그것이 자기 머릿속에서 난 소린지 비의 전조인지 알 길이 없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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