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셀로 출석 표를 만들어 아이들을 관리하는 것도 자자의 몫이었다. 그녀는 아침마다 반쯤 감긴 눈으로 짐승들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검지를 까닥댔다. 다다, 레오메네, 카시오. 마르시아는 어디 있지? 계단 밑에 숨은 마르시아를 발견한 뒤 체크를 하기. 에이즈에 감염된 레오메네, 다락방을 개조한 방에 격리되어 살던 녀석의 방에 가서 녀석과 싸워야 한다. 약을 먹여야 하니까. (녀석은 결국 외로움 때문인지 면역력 결핍인지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죽었다), 아르카디오가 재채기를 하루에 몇 번 하는지 세기, 열 번 이상 한다면 병원 스케줄 잡기. 병원 갔다 오면 체크하기. 신용카드로 결제했나, 현금으로 했나 적기.
엄마의 집은 여전히 자자의 행위를 품고 있나 보다. 자자는 늦잠을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무장갑과 쓰레기봉투를 들고 위해 거실로 향했다. 공장에서 훔쳐 온 신제품 샘플 사료는 아무도 먹질 않았다. 나름 유기농 공정을 거쳐 만드는 사료인데, 그레인프리에 수작업으로 일일이 포장하는 고급사료인데, 시장 반응도 좋은데 고양이들이 한 줌도 먹질 않았다.
냉하고 비정한 놈들.
고양이들은 자자를 피해 무리를 지어있어 멀리서 보면 다채로운 독버섯들이 한데 모인 서식지처럼 보였다. 자자가 고양이들과 엄마에게 질려버려 독립을 결심했을 때 주택에 있던 고양이는 마흔 마리였다. 그때보다 스무 마리 이상은 더 입소한 것 같다. 집이 고양이들에게 잠식당하는 중이다. 이곳에 있으려면 고양이의 승인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북쪽 방 딱 한군데만 빼고.
문 앞에 밤새 오물이 더 쌓였다. 오물이 퍼진 모양은 사고 현장에 스프레이로 사망자 표시를 그린 것처럼 묘하게 인간의 모습을 띠었다. 자자가 방을 향하자 방 앞에 모여 있던 고양이 녀석들 중 몇은 날아가듯 위층으로 향했다. 도망가지 않은 용기 있는 녀석들은 이 년 전까지는 알고 지냈던 자자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녀석들은 자자를 꿰뚫어 보며 어떤 영혼을 가진 사람인지 탐색하기 시작했다. 두 마리가 자자의 옷을 타고 어깨 위로 올랐다. 그녀는 고양이들의 묵직한 무게를 견디며 오늘 안에 오물을 다 치워버려야겠다 결심했다.
오물은 구아노다. 박쥐 배설물. 구글에 검색해 보았다. 박쥐들이 머무는 자리엔 항상 구아노, 즉 배설물이 탑처럼 쌓여있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구아노를 거름으로 쓴댔다. 구아노를 죄다 모아 밭에 뿌리는 게 낫겠다.
고무장갑을 끼고 오물을 담기 시작하자 고양이들이 다가왔다. 그 전보다 품종묘가 많아졌고 대부분 결함이 있었다. 이빨이 하나도 없다던가, 대각선으로 걷는다던가, 앉은뱅이던가, 눈이 하나 없다던가, 발작적으로 기침한다던가, 개구호흡을 멈추지 못한다던가.
아르카디오는 이 년이 지난 지금도 기침이 심했다. 눈곱과 콧물이 누런 걸 보니 심각한 허피스 같았다. 유선이 아르카디오가 이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 둔 것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고무장갑을 벗고 출석부를 확인하니 분명 동물병원 예약을 잡았다고 쓰였다. 체크 표시는 없었다. 다른 아이들의 출석 표도 마찬가지였다. 한 달 전 이후로 표시가 없었다. 엄마가 이토록 기나긴 출장을 갔던 적이 있던가.
자자가 출석부를 닫았다. 그녀의 물음에 응답이라도 하듯 러시안 블루 한 마리가 입에 고양이 시체 하나를 물고 다가왔다. 하체가 없었다. 카시오. 러시안 블루는 마치 상부 사수에게 보고하듯 카시오의 얼굴을 바닥에 내려놓은 뒤 돌아섰다. 고양이들이 같은 종을 죽였을 리 없다. 박쥐가 죽였을 것이다. 박쥐를 없애야 한다.
욕조 옆에서 시체 몇 구를 더 찾았다. 식도까지 올라온 딱딱하고 뜨거운 덩어리를 삼켰다. 수레에 사체들을 담고 뒤뜰로 향할 때는 덩어리가 입 밖으로 나올 지경이었다. 그녀가 첫 삽을 떴다. 소피아를 묻은 자리 옆의 김장 무와 상추, 고추와 강낭콩, 케일은 죄다 고개를 푹 수그리고 무릎을 꿇었다. 비쩍 말라 수분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자기 전에 밭에 물을 줬는데 의아했다.
-자자 씨?
밭 너머 돌담 앞에 온통 검은색 옷으로 차려입은 한 남자가 있었다. 자자는 이미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더욱 뒷걸음쳤다. 아직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헛것이 보일 리가 없는데. 남자가 돌담에 핀 나팔꽃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 인스타그램으로 DM을 보냈는데, 유선 님께서 답이 없어 직접 왔다고. 그가 고양이 캐릭터가 그려진 쇼핑백을 돌담 위로 흔들자 꽃이 작은 비명을 지르며 바스러졌다. 자자의 손등으로 분진이 떨어졌다.
자자는 그에게 정문으로 오라고 손짓한 뒤 엄마가 고양이 섬으로 장기 출장을 갔다고 말했다. 섬이라 데이터가 잘 안 잡혀 DM을 못 봤을 거라고. 그의 굽은 어깨 너머 회색 젤라틴 같은 구름이 낮게 깔렸다. 수십 장의 젤라틴이 겹쳐지자 하늘이 검어졌다. 장마가 올 때다. 그는 기부할 게 있다고.
-좋은 것도 감당이 되지 않도록 많으면, 다른 사람들과 나눠야 하잖아요.
구아노를 덜 치워 집안 꼴과 악취가 말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녀는 기부 물품을 문 앞에 두고 가면 된다고 했다. 남자는 대문 앞에 간식 가방과 과일 박스 하나를 내려놓았다. 그런 뒤 시선을 돌려 밭에 흩뿌려진 구아노를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자기도 의정부에 주말농장 하나를 가지고 있다며. 그가 구아노 냄새를 맡았다.
-좋은 거름인데요.
-구아노에요. 박쥐 똥. 엄마가 박쥐도 길러요.
그가 짙은 눈썹을 움직였다. 그는 박쥐 똥이 담긴 봉지를 들고 밭에 흩뿌리며 연신 냄새를 맡았다. 이런 시큼한 냄새가 나는 거름이 좋은 거란다. 자자는 거름 좀 달라고 말하지 못하는 그의 꼴이 조금 우스웠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봉지에 구아노를 담으며, 거름이 하도 많아 감당이 안 되니 가져갈 의향이 있냐고 물었다. 흑백영화 같은 주택의 색감 사이로 그의 얼굴만 오롯이 밝게 피었다.
텃밭과 맞닿은 화장실에 난 창문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뛰쳐나왔다. 자자는 하도 고양이가 많아 저것이 엄마가 밥 주고 재워주는 녀석이 맞는지, 아니면 또 누군가가 버린 녀석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터키쉬 앙고라. 눈이 정말 파라네. 사진 찍어도 되나요? 예쁘네. 키우고 싶다.
남자가 말했다. 녀석이 호화로운 코트를 뽐내며 사내를 지나쳐 자자에게 다가왔다. 고양이는 마른 낙엽 줄기가 묻은 이마를 자자의 손등이 들이댔다. 자자는 고양이를 향해 쪼그리고 앉아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지만 심장이 입 바깥으로 뛰쳐나올까 할 수 없었다. 흙바닥에 떨어진 심장은 발딱대며 알코올을 갈구할 것이다.
집안에서 맥주 한 캔을 가져왔다. 맥주 캔을 따 홀짝대며 사내를 바라보았다. 식도가 끓었다. 사내의 얼굴이 고양이의 모습과 덧게비쳤다. 밭이 엎드린 몸을 일으키려고 등을 일렁였다. 묽은 묵 같은 구름이 손을 내 뻗어 제 흐린 색을 지상에 묻혔다. 그녀를 둘러싼 세계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취해갔다. 나른하다.
사내는 그녀를 흘끔 본 뒤 이제 가보겠다고 했다. 오늘부터 비가 온대요. 비가 오면 밭도 풍성해질 거예요. 그가 덧붙였다. 사내 뒤로 펼쳐진 낮은 산의 풍경이 심통 난 표정이었다. 무엇이 그리 화가 나서. 엄마가 가졌던 모든 것들이 자자를 향해 신경질을 내고 있구나.
사내에게 구아노 뿐 아니라 시들 지 않은 행운의 청경채와 케일, 강낭콩까지 줬다. 그는 고맙다 했지만 자자 입장에서는 선의가 아닌 처분에 불과했다. 그녀는 청년의 기이한 방문을 되새기며 맥주 캔을 하나 더 땄다. 오늘만 네 캔을 마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놈이었다. 토요일 오후에 방문하다니, 무엇이 그리 급하다고. 그녀는 사내가 놓고 간 사과박스를 들었다.
박스의 무게가 불길했다. 애써 모른 척 거실로 박스를 들고 향하자 예순 마리의 고양이들이 그녀 주위로 모여 온통 울기 시작했다. 듣기에 껄끄럽다. 언젠가 이성을 잃어버린 인간들이 저렇게 소리를 지를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비명 그 자체를 말이다. 자자는 자신이 고양이들처럼 앉아 비명을 지르고, 종국에는 비명이 매개가 되어 자신이 고양이가 되어버린 공상을 하다가 박스를 떨어뜨렸다.
뱅갈 고양이 한 마리가 박스 틈으로 뛰쳐나왔다. 녀석은 몸을 바닥에 바짝 붙이고 주변을 탐색하다 자자를 올려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녀석의 동공이 팽창되어 온통 검었다. 녀석의 타원형 동공에서 행성이 폭발하는 장면이 보였다.
술에 취했으니 진짜 고양이가 아닐지도 모른다. 녀석을 만져보았다. 사람의 시체일지도 모르지, 토막 난 머리나 어깨, 정강이나 손일 수도 있지 싶어서. 사내가 고양이를 버렸다는 걸 확인하기 보담, 토막 난 시체를 자자에게 떠맡기는 게 더 낫겠다 싶어서. 후자는 경찰에 넘기면 된다. 전자를 다 받아내다 보면 이 지경이 된다. 자자는 박스 안에 반으로 접힌 미색 편지를 펴 보았다.
유선님, 유학을 가게 되어 아이를 키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편지를 찢어 갈겼다. 뱅갈 고양이는 그녀에게 이마를 들이댔다. 그녀는 제 품에 안긴 고양이의 심장 박동을 느끼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 등이 벽 등이 오래간 켜진 적이 없는 듯 몸 주위에 거미줄을 목덜미에 감았다. 엄마의 집에는 인간적인 정서가 모두 사라진 것 같았다. 이 집이 인간이라면 자살했으리라. 영혼이 헌 채, 고양이에게 집을 물려주려고. 그녀의 품으로 겨드랑이 사이로 뱅갈이 고개를 파묻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