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상속하지 않은 죄책감을 기어코 받아내는 사람이 있다. 엄마였다. 자자의 엄마 신유선 씨. 유선의 아버지는 건강원과 식당을 운영했다. 식당 메뉴는 염소탕, 나비탕, 보신탕. 온갖 동물을 몽둥이로 때려죽여 우려낸 국물 탕이었다.
유선은 피비린내를 증오했다. 피 냄새는 두통과 전신 열감, 다리 저림과 부종, 때로는 헛소리와 몽유병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언젠가 자신이 극단적 채식주의자가 된 건 신념 때문이 아니라 육체적 고통 때문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사실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아버지가 끓는 물에 고양이를 던져놓으면 찾아오는 진공상태의 찰나 때문이라고. 그녀는 대형 냉장고 속에 화석처럼 얼어버린 개와 고양이의 사체보다도, 내장처럼 꼬인 모양으로 서로의 몸을 감싼 미꾸라지들보다도 두려웠던 건, 고양이가 물에 빠지고 난 뒤 도래하는 멈춤의 시간이라고 했다. 우슬 뿌리처럼 바짝 마른 정지의 때. 물 끓는 소리만 울리는 그때.
유선은 아버지가 고양이를 잡는 시간을 피해 새벽부터 집을 나섰고, 주말마다 이 마을 저 마을을 돌고 돌아 밤이 깊어서야 집 뒷문으로 들어왔지만 어떻게든 아버지가 솥뚜껑을 여는 장면과 마주했다.
유선의 어깨가 굽어갔다. 얼굴이 검어졌다. 술을 마셨다. 임신을 했다. 배에 종양이 생긴 것 같아 병원에 갔더니 임신을 했다고 그랬다. 유선은 중절 수술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아홉 달 동안 뱃속에서 숨죽이고 자란 자자의 머리를 의사가 꺼냈을 때, 피부가 찢기는 고통보다 신경질이 앞섰다고 그랬다. 분노보다, 울분보다, 반경이 좁고 사소한 감정인 신경질이. 그녀는 죽은 고양이들에게 사죄하는 의미로 당장 생각나는 단어 두 개를 붙여 의미 없는 이름을 딸에게 지어주었다. 자자의 이름은 의미가 없었기에 의미 깊었다.
그녀가 아버지를 대신해 죄책감을 가진 건 멜로드라마만큼 전형적인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재개발로 인해 유선의 가족이 졸부가 되어버린 건 클리셰에서 벗어난 일이었다. 그 돈의 대부분을 딸에게 상속한 것도. 유선의 아버지는 딸이 대신 짊어진 죄책감을 지우려는 듯 모든 보상금을 줬다.
이 돈으로 유럽 다녀와. 어디든 상관없어. 한국에서 벗어나. 유선아. 제발 정신 차려.
고양이들에게 집착을 거두어.
상속을 받고 유선이 먼저 한 건 아버지에게 돈의 절반을 떼어 준 뒤 가게 메뉴에서 나비탕을 빼라고 협박한 것이었다.
남은 돈으로 서울과 경기도가 닿은 외곽에 부지를 사, 주택과 낮은 건물들을 올렸다.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서울 외곽까지 내려온 힙스터와 예술가들은, 동물애호가로 유명한 아주머니가 부른 높은 임대료에 코웃음을 쳤다. 그들이 말했다.
-반려동물을 위한 비건 식자재 마트를 만들 거예요. 좋은 의도를 가지고 하는 일이니 좋은 가격에 주세요.
그녀는 항상 입던 상복 같은 원피스의 소매를 올리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리 애들 식비를 충당하려면 이 가격도 저렴한 겁니다. 우리 아이들은 매 끼니 생식을 해요.
-생고기 말이에요.
엄마는 마장동에 가서 윤기가 도는 생고기들을 매주 월요일마다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왔다. 자자는 어떤 날, 고기를 썰며 뼈에서 발라낸 매끈한 고기가 숨을 쉬고 있다고, 아직 살아있다고 느낀 적이 있다.
자자는 주택 뒤뜰에 소피아를 묻으며 방 안의 박쥐를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박쥐가 맞았다. 예전부터 북쪽 방은 유달리 습했다. 박쥐가 이곳에 거처를 잡은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혹은 누군가 박쥐를 기르다 싫증이 나서 집 앞에 버렸을 수도 있다. 엄마가 으레 그랬듯 박쥐를 거둔 것일 수도.
녀석의 밑, 그러니까 바닥에 아슬아슬하게 닿을 듯 닿지 않은 정수리 밑에는 오물이 쌓여있었다. 거품처럼 동그마니 떠다니는 것은 녀석이 소화하지 못한 곤충의 눈알 같기도 했다. 눈알이라니. 욕지기가 올랐다.
집 안으로 들어가 보드카를 땄다. 한 모금 마시고 토하고, 다음 모금을 마시고 토하기를 반복했다. 그녀가 재차 술을 게워내고 고개를 들었을 때 숨어있던 고양이들이 그녀를 에워쌌다.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뭉쳐 부풀어 올랐다. 자자는 어릴 때부터 반반이를 제외한 모든 고양이가 싫었다.
녀석들에겐 발소리가 없다. 항상 얇은 울음소리를 내며 인간이 저들의 의도를 지레짐작하길 바란다는 점에서, 오만하기 짝이 없는 동물이다. 반반이는 그런 적이 없다. 녀석은 오만하지도,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형광등 스위치를 눌렀지만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장식장 서랍 속에서 랜턴을 꺼내 켰다. 스포트라이트가 고양이들을 굴곡진 몸을 훑자 녀석들이 증발하듯 도망갔다. 그녀는 쓰러지듯 바닥에 꿇어앉았다. 엄마에게 전화를 해보았지만 전원이 꺼져있다는 기계 음성만 반복될 뿐이었다. 다시 일을 시작했나 싶었다. 엄마는 고양이들을 수색할 때 휴대전화를 껐다.
유선이 탐정 일을 그만둔 건 이 년 전이다. 서울과 경기도 전역, 어느 날에는 강릉과 익산, 제주도까지 가서 고양이들을 구조하러 다녔지만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탐정이 저주받았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찾아낸 아이들의 절반은 죽었거나 다리가 절단되었거나 장결석, 습식 건식 복막염, 구순염, 하다못해 영역싸움을 하다 잔뜩 맞은 채 발견되었으니까.
의뢰인들은 아이들의 시체를, 에이즈 양성 반응이 뜬 고양이를 맡기고 사라졌다. 간절한 사람들은 러시안룰렛을 하는 심정으로 유선을 찾았지만 그마저도 뜸해졌다. 결국 무료로 동물을 찾아준다고 홍보하기 위해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뜻밖의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고양이 탐정 신유선 의뢰 비용 없음>이라는 프로필 아래 바둑판 형태로 진열된 사진 아카이브에는 유선이 뛰어난 탐정 기질로 찾아냈지만 종국에는 주인에게서 버림받은 고양이들의 사진이 빼곡했다. 유선의 팔로워 중, 반려동물을 버리려고 결심한 사람들은 사진에 드문드문 찍힌 도로명주소를 기억해두었다. 그들은 로드뷰를 확인해 유선의 집 주소를 찾았다. 고양이들을 유선의 주택 앞에 버렸다.
자자가 오전 여덟 시마다 쓰레기를 질질 끌고 문을 열면 전자기기 박스, 과일박스, 더러는 마대 포장과 쓰레기봉투 안에 담긴 아이들이 있었다. 고양이뿐 아니었다. 개, 돼지, 햄스터, 앵무새, 이구아나도. 자자가 박쥐를 보고 놀라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사람들이 이젠 박쥐까지 키우고 그마저도 버리는구나 싶어서.
눈을 뜨자 고양이 오줌 냄새가 골을 찔렀다. 저도 모르게 예전에 엄마를 도울 때처럼 오전 여섯 시 반에 일어났다. 기숙사에서는 토요일 이 시간에 결코 눈을 뜨지 않았다. 이불을 걷고 일어나는 행위 자체가 어렵게 얻은 자유에 대한 배신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녀는 정신이 또렷해도 기어코 눈을 감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렸다.
자자가 이 년 전까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했던 일은 잠자리 주변에 사막처럼 퍼진 모래들을 쓰는 일이었다. 이어 사십여 마리가 밤새 내뱉은 배설물을 치워야 했다. 바닥을 깨끗하게 쓸고 광이 나도록 스팀 청소하기. 생닭 해체하기, 황태 삶아 국물 우려내기, 엘라이신과 타우린을 반질반질한 고기 위에 뿌리기, 그릇 닦기, 투명한 그릇에 청결한 물을 준비해놓기, 캣폴에 면로프 감기, 아이들이 많이 긁어 실밥이 튀어나온 로프와 스크레처 교체하기.
아침부터 저녁까지 청소를 하느라 허리가 굽어 이대로 굳는 건 아닌지 걱정한 적도 많다. 청소기가 지나간 자리엔 항상 고양이가 모래를 흘렸다. 엄마가 소리쳤다. 모래 분진이 날리잖아. 아이들은 깨끗한 곳에서 살아야 해. 자자는 전체 모래 갈이를 할 때마다 에탄올을 적신 걸레로 화장실을 소독했다. 에탄올 냄새가 날아갈 때까지 화장실은 전부 자자의 방에 보관했다. 그녀가 일찍이 소독약 냄새에 익숙해진 건 그때부터일 테다. 술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된 것도.
매일 아침과 저녁에 이루어지는 출석 체크. 유선은 키우던 마흔 마리의 고양이, 개, 이구아나, 지금은 도망간 돼지와 햄스터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천주교 사이트에 들어가 성자, 성녀들의 이름을 검색했다. 특히 순교자 신분의 이름을 선호했다. 자자는 가끔 짐승들에게 부러움을 느끼는 자신이 수치스러웠다. 그녀는 개명을 결심하고 천주교 사이트에 가서 성자들의 이름을 ㄱ부터 ㅎ까지 전부 훑었다. 어떤 이름을 가질 수 있을까? 고를 수 없었다. 자자는 자자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