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5일(흐리고 더움)
8.15를 이웃국가인 일본 왕따일이라도 되는 줄 착각하는 일각의 움직임에 우민은 기가 막혔다. 프로야구장에서 외국인 용병이 출전하는 날 그 나라 국적기를 걸어주는 관행을 들어 광복절엔 일본 국적 프로야구 선수 출전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쌉소리를 늘어놓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심지어 그날 하루 자발적으로 문을 닫는 일식집을 개념식당이라 찬양하는 경우까지 봤다.
광복절은 단지 한민족만의 축제일이 되어선 안된다. 전세계 사람들이 함께 기뻐하고 축하해주는 인류사적인 기념일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민족주의적 도취감에 빠져 일본인과 일본 문화에 대한 집단 협오감을 표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마음자세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
광복절은 강자가 약자를, 다수가 소수를 짓누르고 억압한 야만적 제국주의가 패배한 날이다. 주체적 선택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을 존중하는 문명 질서가 승리한 날이다. 어찌 그런 날 한국사회에서 소수일 수밖에 없는 일본인과 일본문화를 공격하고 조롱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그런 날 제국주의 일본을 비판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제국주의 시대를 겪은 적도 없는 현대 일본인과 오랜 전통과 미덕을 지닌 일본 문화를 집단으로 공격하고 괴롭히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는 것은 오히려 숭고한 광복절 정신을 망각하고 훼손하는 짓 아닐까?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한 윤석열 정부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광복절의 숭고한 의미를 제대로 새기지 못하고 광복절 말고 건국절을 기념해야 한다는 국가론자들에게 휘둘려 국민 정서를 외면하고 이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 또한 패착이 아닐 수 없다. '일본 때리기'를 통해 지지율을 끌어올리려 한 문재인 정부도 문제지만 그런 문재인 정부를 비판한답시고 과거 일제의 과오를 반성하는 자세를 망각하고 적반하장의 자세를 보이는 일본 정부에 부화뇌동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은 더더욱 문제다.
그것과 별개로 제국주의의 사슬로부터 해방된 광복절의 의미를 망각하고 타민족에 대한 혐오와 공격본능을 마음껏 표출해도 되는 날로 둔갑시키는 '우리 안의 제국주의'와 맞서 싸워야 하지 않을까? 민족해방론을 주장하지만 사실상 일계만손의 일본 천황제를 계승한 북한 공산주의를 미워하는 것과 그런 허위의식에 물든 사상과 체제에 의해 억압받는 북한 민중을 혐오하는 것이 결코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없듯이.
8.15는 또한 결코 그날 하루로만 기념되는 날이 아니다. 3.1과 4.19, 5.18, 6.10 그리고 통일의 그날까지 죽 이어지는 헌정사적 의미망 속에서 이해돼야 한다. '그날이 오면'이란 심훈의 시부터 노찾사의 노래까지를 관통하는 우리 국민의 오랜 염원이 오롯이 새겨진 그런 기념일인 것이다.
#우민은 '어리석은 백성(愚民)'이자 '근심하는 백성(憂民)'인 동시에 '또 하나의 백성(又民)'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제 자신에게 붙인 별호입니다. 우민일기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운 '맨스플레인'에서 벗어나보자는 생각에 제 자신을 3인칭으로 객관화하려는 글쓰기 시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