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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우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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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소아 Aug 30. 2024

진중권과 리프먼

2024년 8월 30일(맑고 더움)

평기자 시절 이름을 날렸던 선배가 편집국장 후보가 됐을 때 이런 말을 했다.   제법 멋진 말이라고 우민은 생각했다. 하지만 선배의 약속은 말만 번드르르한 공수표였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가 편집국장이 된 뒤 제가 다니던 언론사는 권력의 주구가 됐다는 비아냥거리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한참 뒤 구체적 출처를 찾아봤지만 정확한 워딩 확인이 어려웠다. 리프먼의 대표작인 '여론(Public Opinion)'에서 이방인(Alien)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 중 하나가 "반대편에 선 사람(A person who is on the opposite side)"임을 지적한 정도만 확인됐다.     


리프먼이 말년에 칼럼리스트로 옮겨간 워싱턴포스트(WP)의 워터게이트 스캔들 보도를 진두 지휘한 빌 브래들리의 “신문(언론)을 만드는 사람과 신문에 등장하는 사람 사이에는 늘 정중한 거리가 유지되어야 한다”와 뒤섞일 수도 있겠다고 우민은 생각했다. 구체적 워딩보다 중요한 것은 '권력의 대척점에 서기'를 행동에 옮긴 언론인이 리프먼이란 점이다.     


20세기 미국 언론의 전설이 된 리프먼은 최근 영화화되면서 유명해진 오펜하이머와 닮은 구석이 많다. 뉴욕의 부유한 독일계 유대인 가문 출신으로 하버드대를 나온 엘리트로 한때 마르크스의 저서를 통독하며 사회주의에 경도됐다가 자유주의를 지키기 위한 투사로 변신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오펜하이머를 희생양으로 만든 메커시즘을 리프먼이 혐오했다는 점도 공명하는 점이다.     


리프먼은 현장 취재기자를 거치지 않아도 훌륭한 언론인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하고자 했다. 그렇다고 사실 취재를 등한시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언론에 보도된 내용과 진실을 동일시해선 안된다고 역설했지만 사실 보도의 원칙을 중시했다. 하버드대 동문이자 친구인 존 리드가 러시아혁명을 칭송한 책 '세계를 뒤흔든 10일'과 뉴욕타임스(NYT)의 관련 보도가 필자들의 희망과 사실을 뒤섞었다며 조목조목 비판한 것도 그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모든 권력은 부패한다는 자유주의적 믿음에 입각해 살아있는 권력은 물론 현대민주주의의 주역으로 부상하던 대중에 대한 비판에도 거침이 없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을 맹비판한 것도 그의 뉴딜정책이 전체주의의 특징인 계획경제를 채택함으로써 국민의 자유의지를 억압한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나치즘 파시즘 같은 우익 전체주의뿐 아니라 스탈리니즘 같은 좌익 전체주의를 동일선상에 비판한 것도 같은 선상에 있었다.


     

[중앙일보]



그렇게 좌와 우를 가리지 않고 냉철한 비판을 가했기에 욕도 많이 먹었다. 특히 혼란스러운 정보의 공급 과잉에 휘둘리는 대중에 의해 조성되는 여론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고 경고한 '여론'과 모든 이해관계와 여론조작에서 자유로운 공중에 대해 회의를 표한 '유령 공중(The Phantom Public)'으로 십자포화를 맞았다. 자유주의를 우파 일반으로 비꼬기 좋아하는 한국의 식자들 눈에는 우파 자유주의 언론인으로 평가절하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자유주의는 휘발성이 강한 사상이다. 그래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재구성하는데 무능할 때가 많다. 하지만 세상이 잘못 돌아갈 때 거침없이 비판을 가하는 데는 가장 유능한 사상이기다. 그렇기에 권력 비판의 사명을 부여받은 언론에게 자유주의만큼 어울리는 옷이 없다는 것이 우민의 믿음이다.  

   

리프먼 역시 여론조작에 휘둘리는 여론과 그에 의존하는 민주주의의 허구성과 약점을 비판하는데 귀재였지만 그 대안 제시에는 한계를 보였다. 뉴딜정책이 전체주의적이라며 유화적인 프랭클린 루즈벨트를 비난하면서 독불장군형 지도자인 처칠과 드골을 일방적으로 영웅시한 과오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럼에도 좋은 언론을 언급할 때 리프먼에 대한 언급이 지금도 빠지지 않는 이유는 현실 권력을 쥔 정치인이든 여론몰이에 놀아나는 대중이든 권력을 쥔 이들을 대상으로 일관된 비판을 가했다는 점이라고 우민은 생각한다.


일관성 있는 비판을 요즘말로 하면 '모두까기'가 되는가 보다. 오늘 중앙일보에 실린 진중권 씨 인터뷰 기사(https://n.news.naver.com/article/025/0003383119)를 보면서 왜 보수언론이 진중권 발언 받아쓰기에 급급한 매체로 전락했는지를 우민은 재확인했다. 

     

이에 대해 우민은 4년 전 이미 '진중권 현상에 대하여'에서 비슷한 의견을 피력한 바가 있다(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confetti0307&logNo=223198634636&referrerCode=0&searchKeyword=%EC%9A%B0%EB%AF%BC%20%EC%A7%84%EC%A4%91%EA%B6%8C).  


4년 후 다시 인터뷰 기사를 접하니 한때 사히주의자를 자처했던 그가 리프먼처럼 자유주의에 경도되고 있음을 재발견하게 됐다.  


“예전에 쓴 ‘적녹흑’이라는 칼럼에서 사민주의(적색)-환경주의(녹색)-자유주의(흑색)의 결합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누군가에게 끌려다니는 게 아니라 해방된 개인들의 연대와 결사가 꿈이었다. 이것이 결합된 진보정당을 꿈꿨다. 한때 그런 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서 정당도 가입하고 도왔던 건데 이건 뭐….”(웃음)      


“소위 ‘심판자’가 사라진 시대다. 과거엔 시민단체가 그런 역할을 했는데, 문재인 정부에서 참여연대가 논평을 내는 거 봤나? 윤석열 정부 되니까 열심히 낸다. 민언련 최민희 같은 인사들이 죄다 정치권으로 갔다. 진영논리에 충실한 유시민을 봐라. 결국 김어준 밑으로 들어가지 않나.”     


진중권 씨가 의식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1인 언론매체로서 그가 지금 취하고 있는 스탠스가 자유주의 정신에 충실한 언론인 리프먼의 스탠스다. 한국 언론이 방기해버린 ‘권력의 대척점에 서는 자리’ 아니겠는가? 진중권 현상이야말로 한국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반증 아니겠는가?



#우민은 '어리석은 백성(愚民)'이자 '근심하는 백성(憂民)'인 동시에 '또 하나의 백성(又民)'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제 자신에게 붙인 별호입니다. 우민일기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운 '맨스플레인'에서 벗어나보자는 생각에 제 자신을 3인칭으로 객관화하려는 글쓰기 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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