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2일(비)
빨갱이라는 단어가 있다. 영어로는 핑코(Pinko)라고 한다. 빨갱이가 아니라 분홍이에 가깝다. ‘색으로 치면 물 빠진 빨강’이라는 조롱의 의미를 담아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 동조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다.
핑코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1925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당시 ‘타임’은 오늘날 한국에서 ‘강남좌파’에 해당하는 이들을 이렇게 불렀다. ‘분홍색 응접실(parlor pink) 사회주의자.’ 사치스러운 분홍색 응접실에서 책으로만 공산주의를 접한 몽상가라는 의미였다. 공산주의가 꼭 그렇게까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 공산주의자까진 아니더라도 공산주의가 꼭 그렇게까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 영화 '오펜하이머' 속 오펜하이머와 같은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미국에선 풍자적 표현이었지만 태평양 건너 한국에선 누군가의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명칭이 됐다. 공산주의 동조자뿐 아니라 공산주의자까지 지칭하는 용어가 됐기 때문이다. 냉전시대 한국에서 누군가를 빨갱이로 지목한다는 것은 그의 생존을 위협하는 일이었다.
비슷한 사례로 네오콘(Neo Con)이 있다.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이후 등장한 새로운 보수를 풍자적으로 지칭한 표현이다. 영미권에서 순수한 뜻의 새롭다는 뜻에 new를 붙인다. 반면 새로운 척 한다, 신상으로 포장됐다고 살짝 희화화할 때 라틴어/이탈리어에서 온 neo를 붙이곤 한다.
한국에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등장한 뉴라이트(New Right)는 네오콘의 한국 버전이라 할 수 있다. 과거 공산주의에 대한 안티테제(Antithesis)로서 반공주의를 국시로 여기던 보수 우파가 아니라 자유주의와 시장주의라는 진테제(Synthesis)를 강조하는 새로운 우파라는 의미다. 과거의 보수가 한국적 특수성을 강조했다면 뉴라이트는 세계적 보편성을 강조한다는 긍정적 의미가 투사됐기에 neo가 아니라 new라는 용어가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뉴라이트가 식민지근대화를 주장하고 이승만 박정희 찬가를 부르는 신종 우익을 지칭하는 단어로 변색됐다. 우민이 이를 알게 된 것은 윤석열 정부 들어 국사편찬위원장 한국학중앙연구원장 독립기념관장 같은 국책 학술기관장이 식민지근대화론자 내지 8.15 건국주의자들로 채워지면서였다. 이를 비판하고 나선 야당이 이들을 뉴라이트라고 싸잡아 비판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우민은 뉴라이트라는 용어가 언론에서 처음 사용될 때 현장을 지키던 기자였다. 그 취지에 부합하는 양심적 자유주의자들을 뉴라이트 지식인으로 소개하고 호명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이런 개념과 용어의 변질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입말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언중의 선택에 달린 일이니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다고 받아들이게 됐다.
다만 만일 뉴라이트가 새로운 친일파/반공주의자로 인식되고 있다면 누군가를 뉴라이트라고 함부로 호명하는 행위는 자제돼야 마땅하다는 게 우민의 생각이다. 그것은 냉전시대 스스로는 극구 부인하는 사람을 빨갱이로 지목하는 행위와 같은 마녀사냥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중세 유럽에서 누군가를 마녀라고 여러 명이 지목하면 그때부터 지목한 사람이 아니라 지목당한 사람이 마녀가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엄청난 곤욕을 치루다 재산과 목숨을 잃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다. 한국사회에서 빨갱이로 지목당했던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수모와 고난을 아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뉴라이트라는 딱지 붙이기 또한 자제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국회 청문회장에서 "뉴라이트 맞죠?"라고 태연자약하게 질문하는 야당의원들을 보면서 우민은 생각했다. '1950년대 매카시즘의 광풍을 몰고 왔던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과 뭐가 다르지? 당신 공산주의에 경도된 빨갱이 맞죠라고 질문하는 것과 본질적 차이가 있을까?'
우민은 기독교도가 아니지만 예수의 가르침만큼은 가슴 깊이 새기고 살아가려고 한다. 예수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자면 "십자가에 못박혀 억울하고 비참하게 희생된 나를 보고 나와 같은 사람을 다시는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무리 중의 누군가를 이단이다, 배교자다, 간첩이다, 빨갱이다, 뉴라이트다라고 손가락질하고 집단따돌림하다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 예수는 바로 그것을 '사탄의 길'이라고 고발했다.
그 어둠과 죽음의 길을 버리고 예수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이것부터 지키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에 대해 함부로 손가락질하지 않는 것. 그 사람이 동의하지 않는 딱지 붙이기를 함부로 하지 않는 것.
#우민은 '어리석은 백성(愚民)'이자 '근심하는 백성(憂民)'인 동시에 '또 하나의 백성(又民)'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제 자신에게 붙인 별호입니다. 우민일기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운 '맨스플레인'에서 벗어나보자는 생각에 제 자신을 3인칭으로 객관화하려는 글쓰기 시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