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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일기 - 북해

넷츠고

by 노르웨이신박

오랫동안 날씨로 항구에 정박해 있는 동안 배 안은 조용했다. 자주 들여다본다고 안 좋은 날씨가 별안간 좋아질 리 없건마는,

날씨 예보를 계속 들여다보게 되는 것은 비단 내 마음뿐만은 아닐 것이다.

다음 주에 살짝 작업 가능한 날씨가 예보되었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이 기회를 버릴 순 없기에 오늘 저녁 먹고 현장으로 출발해야 한다.

현장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12시간. 험한 파도를 뚫고 가서 파도가 누그러지기를 현장에서 기다려야 한다.


작업이 없는 사무실은 조용하지만, 선상은 여전히 바쁘다. 기관실은 연료를 채워 넣고, 엔진오일을 교체하고, 크레인 오퍼레이터는 장비를

점검하고 테스트한다. 조사 오퍼레이터는 피로한 코일을 교체하여 장비의 피로파괴가 일어나지 않도록 준비하고, 지오텍 엔지니어는

채취한 샘플리스트를 정리한다. 신기하게도 모든 샘플은 바코드를 출력해서 관리한다. 식당은 비워가는 냉장고에 신선한 과일과

야채를 채워놓고, 브리지에서는 다음 출발을 위한 좌표를 설정하고 해상경찰과의 교신을 주고받는다.


배는 그냥 가는 게 아니었다. 각자 자기가 맡은 위치에서 자기가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해 줄 때 험한 파도가 몰려와도 유유히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는 것이겠지. 내가 속한 가정도, 회사도, 사회도, 국가도.


점검을 잘 마쳤다는 엔진룸 주변을 점검하다 바닥에서 주웠는데,


설마,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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