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시피 알려주는 친절한 글은 아닙니다만...
굉장히 존경하는 가수 겸 시인 Rossella Faa(로쎌라 파아)의 콘서트를 기획하고 그녀와 가까이 리허설,식사 및 콘서트까지 몇시간 정도 함께했다.
그녀의 콘서트 스타일은 조금 특이한게, 본인이 만담을 하듯이 개그가 빵빵 넘쳐나는 짧은 에피소드들을 풀이해내고, 이야기가 끝날즈음 그 이야기의 연장선으로 노래를 부르는거다. 이런 식으로 그의 전체 앨범을 콘서트장에서 전부 들을 수 있었는데, 너무 웃어서 배꼽을 잡다가 뒷따른 잔잔한 감동에 눈물짓게 만든다.
그중 기억에 깊이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녀는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의 굉장히 작은 시골출신이다. 그곳엔 대대로 내려오는 민담이 있는데.이 마을의 사랑을 책임진 아름다운 여신이 있는데 큐피트와 비슷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소원을 이루어야 한다고... 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사람과 잘되고 싶으면 이리 하라고 가르쳤단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짝사랑하는 사람도 좋아요)을 머릿속에 그려보세요. 그리고 그사람을 생각하면서 음식 한가지를 상상하고, 직접 만드세요. 기존에 있는 음식이라도 괜찮아요,새로운 레시피 없이도. 그리고 혼자 한끼 식사로 다 먹을만큼의 양을 남기지 말고 다 먹어버리세요. "
솔직히 이 얘기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미 커플인 사람은 더 잘될건지,짝사랑하는 사람은 소원성취해서 사랑이 이루어질지...
왜냐면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눈앞의 모든게 블러처리 되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무슨 음식일까'라는데만 온통 정신이 팔렸기 때문이다. 그 생각에 몰두하다가 반짝 하고 눈앞에 떠오르는 음식:양송이버섯 리조또(이탈리아어로 Risotto ai funghi)!
요즘엔 한국에서도 흔한 음식이지만 굳이 설명하자면 하얀 쌀과 올리브오일,버터,마늘,파슬리,소금 등등과 주인공 격인 버섯을 넣고 부드럽게 끓이면 그만인 고소한 이태리식 죽. 상에 낼 땐 파마산치즈를 하얀눈처럼 소복히 갈아서 올리면 끝.
부드러우면서도 은근히 탱탱하게 살아있는 쌀과 어우러지는 은은한 버터향과 마늘향, 추가로 파마산치즈의 특유의 꼬소함이 어울려서 전체적으로 적당히 짭쪼름하며 고소하다.
간단한 식재료를 은근히 끓여서 그 본연의 맛들만이 우아하게 섞여서 자연스럽고 심플하다.
그 심플함 때문에 사람들이 쉽고 자주 만들어 먹을 수 있으며, 영양이 풍부하고 자극적이지 않다.
어른아이 할 것없이 전부 맛있게 즐길 수 있고, 가격도 착하다.(적어도 이탈리아 현지에서는.물론 여기선 버섯리조또 얘기이고, 해물 등이 들어갈 경우 당연히 가격이 올라간다)
유백색의 단순하고 여리여리한 색감밑에는 숨겨진 재료들이 깊은 맛을 낸다. 그냥 부드럽기만 한 줄 알았는데 쫄깃한 버섯알맹이들이 귀엽게 깨작깨작 통통 입안에서 튄다...
사실 버섯리조또를 생각하면서 쓴 감상평이 아니다.
로쎌라가 콘서트에서 얘기한 그 민담을 생각하면서 남편 생각을 했다.
우리 남편을 음식에 비유하면 뭘까? 어떤 음식이야말로 남편을 닮았을까? 아니, 남편은 어떤 음식을 닮았을까...?
온화하면서도 유순한 성품의 남편, 항상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다.
아이같이 마음이 깨끗하고 올곧으며, 이유없이 무조건 적으로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 사람사이의 존중을 제일 우선으로 하며 동물을 사랑하는 깊은 사람.
그러면서도 일상을 유머러스함으로 채워서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나를 깔깔 웃게 해주는 사람.
글을 쓰다보니 내가 참 복 받은 사람인 거 같다. 이렇게 줄줄이 나열하고나서도 칭찬을 더 쓰고싶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 내 남편이라니.
버섯리조또를 33년 인생 통털어 셀 수 없이 많이 요리하고 먹었지만 여기에 큰 감명을 받아서 줄줄이 레시피를 쓰고 팔불출처럼 남편자랑을 하게 만들다니... 참 고마운 음식이 아닐수가 없다. 안 그랬더라면 일상에 지쳐서 매일 남편을 마주하면서도 뭐가 불만인지 툴툴대고, 다른 사람도 아닌 나 자신의 남편이면서도 그의 장점은 다 제껴두고 받는걸 당연하게만 생각했을 것이다.
하얗고 부드럽고 깊은 맛의 버섯리조또와 그와 꼭 닮은 우리 남편. 내가 사랑하는 사람.
존경하는 우리 Rossella에게 정말 허리굽혀 감사드리고 싶다.
아니, 로쎌라한테 이런 발상을 준 그 시골의 민담 덕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민담에 나온 사랑의 신 에게?
뭐 어쨌거나, 여러분도 상상해보기 바란다. 사랑하는 사람 혹은 짝사랑하는 사람을 어울리는 음식으로 생각해보는 거. 자신이 그 음식을 정성껏 조리해서 그 음식의 귀중함을 느껴보는 거.
저도 모르게 행복을 느낄 것이다. 자신이 잊고 있었던 행복.
뭐, 적어도 나는 그랬다고.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