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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이 Dec 19. 2018

내 나이의 엄마


토요일 저녁 9시 강남을 떠나는 지하철은 그리 넘치지도 그리 차지도 않게 적절히 사람들을 싣고 있었다. 나의 맞은편 자리에는 중학생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와 그의 엄마가 나란히 앉아있었다. 아들이 간간이 말을 걸면, 엄마는 고개를 돌려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말이 없지만 결코 무심한 표정은 아니다. 발치에는 두 사람이 양팔 가득 들어야 할 만큼의 물건들이 놓여있었다. 아마 둘은 외출을 하고 쇼핑도 하고선 귀가하는 길일 것이다. 서로 살뜰히 챙기는 모습은 아니지만, 녹녹한 무표정보다는 부드럽고도 서로가 당연한 얼굴로 나란히 있었다. 그 순간, 무언가 나는 참 부러웠다. 고향을 떠나 산지 너무 오래되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나만 빼고 부모님과 언니네 부부가 같이 김장하는 질투 어린 날이라 더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종종 서면에 있는 치과에 가기 위해 엄마와 둘이서 외출을 하곤 했다. 하지만 나의 진짜 목적은 치료를 마치고 엄마와 지하상가를 둘러보고 치킨을 사 먹는 즐거움이었다. 가끔은 부전시장까지 둘러보고 물떡을 사 먹고선, 새로 장 본 물건을 들고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면 오늘 둘이서 뭐했냐고 묻는 아빠에게 비밀스러운 채하며 아빠의 질투를 즐겼다. 외출 후 잔잔한 피곤함을 안고 돌아오는 그 길에서 엄마와 나는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했을지 지금은 생각도 안 나지만, 나란했던 엄마와 나의 모습이 생각이 나고 그립다.


'그때의 내가 몇 살이었지, 보자 엄마는..?' 나이를 계산하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내 나이는 엄마가 나를 낳았을 때의 나이와 같다는 것을. 그 생각이 다다르자 갑자기 마음이 이상하게 미적거렸다. 지금 내가 아기를 키운다는 상상을 하니 덜컥 무섭고 겁나고 싫었다. 스무몇의 나는 서른 언저리가 되면 보다 안정적이고 완전하게 성장했을 것이라고 뿌연 상상과 같은 기대를 하곤 했었다. 이십 대의 불안감은 다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여전하다. 서른의 언저리에도 모든 것이 불안하고 불어오는 바람에 휘청거리는 이토록 그리고 여전히 미성숙한 존재이다. 그런 이 나이에 엄마는 이미 두 아이의 엄마였다. 하나는 어부바하고 오른손으로 다른 하나를 손잡고 왼손으로는 찬거리가 가득 든 장바구니를 짊어지고 밥상을 기다리는 노부부와 남편을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을 내 나이의 엄마. 내가 키우고 있는 고양이의 삶의 무게에도 나의 두 어깨를 무겁게 누르는데, 대체 어떻게 내 동갑의 엄마는 두 아이를 기르며 시부모님까지 모실 수 있었을 까.


스무 살, 서울로 상경을 하면서 나는 기차역에 데리러 와 준 엄마와 단둘이서 이별을 하였다. 스무세 살,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공항에 데리러 와 준 아빠와 단둘이서 이별을 하였다. 나는 막연히 기차에서 울음을 터뜨렸고, 비행기에서 외로움에 휩싸인 공허함에 숨을 죽였다. 당시 나는 경험이 별로 없는 어린아이니까 상대적으로 엄마와 아빠는 강할 것이라고 은연중에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 비슷한 나이가 되어보니, 부모님도 그 순간 결코 강하지 않았을 것 같다. 실제로 그러지 않으셨고. 여전히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나이, 준비를 한다 해도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는 게 인생이란 걸 매번 새로이 겪어 나가는 존재. 그래서 내 나이의 엄마가 당시 모든 게 두렵고 미성숙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미적였던것 같다. 그저 나이가 들수록 시행착오를 조금 더 겪었음에 아주 약간은 더 무뎌지거나 조심스러울 순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모든 나이에도 항상 미성숙한 것 같다.


뜨거웠던 이번 여름, 언니에겐 이쁜 아기가 생겼다. 병원에서 돌아와 평일에 출근을 하는 형부를 뒤로한 채 언니는 혼자서 아기를 돌봐야 했고, 엄마는 거의 매일 들려 함께 육아를 보탰다. 부모님에겐 첫 손주이자 내겐 첫 조카인 집안의 경사이자 우리에겐 가장 특별한 아기이기에 나는 엄마가 아기를 만나러 가시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다 엊그제 엄마와 단 둘이 이야기를 하다 알게 되었다, 엄마가 그 더운 여름에도 이 추운 겨울까지도 발걸음을 재촉해 아이를 돌보러 가는 것은 다름아닌 당신의 딸을 위해서라는 것을. 그 나이의 엄마가 시집살이를 하며 홀로 아이를 보채던 그 날들의 서러움으로부터 축나버린 몸과 마음을 알고, 고로 그 나이인 딸도 얼마나 무섭고 힘들지 아니까. 그래서 낮에라도 엄마가 가서 도와주면 그 시간동안 당신의 딸은 자기 몸을 추스르고 조금이라도 쉴 수 있는걸 아니까.  귀엽고 통통한 손주를 안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의 딸이 어린 엄마가 돼버린 고됨을 보듬어 주기 위해 엄마는 그 늙은 몸을 일으켰던 것이다.


나는 영화 속 타임머신을 빌려 삼십 년 전으로 돌아가 버둥거리는 두 딸이 버거우면서도 해내려고 열심히 살아가는 어린 엄마에게 돌아가 등허리를 한번 꽉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얼른 커서 엄마 여행 보내줄 테니까 조금만 더 힘내라고 말하면서. 하지만 엄마는 타임머신 따윈 생각도 않고, 오늘 당장 미성숙한 아이들에게 큰 힘과 위로를 건네주고 있었다. 지금의 엄마의 등허리를 한번 꽉 안아주는 것은 오늘의 엄마 뿐만 아니라 내 마음을 미적거리게 한 그 때의 엄마를 안아 주는 것과 같은 일이란 것을 바보같이 오늘에서야 엄마를 보고 배우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보고 싶어서 연락했지. 엄마.. 있다이가.. 다음 주는 언니가 아 보라카고.. 우리 둘이 어디 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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