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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쳐도 괜찮아

돈 받고 수련 중입니다

by 이을

청소 35일째, 오늘의 오디오북 [도망칠 용기], 와다 히데키


청소를 하면서, 아침마다 전문가들의 책을 들으면서 나를 위한 수련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늘은 아들러 심리학을 바탕으로 [미움받을 용기]를 쓴 기시미 이치로와 고가 후미타케의 영향이 느껴지는 책이다. 와다 히데키는 그 이론들 위에 자신만의 언어로 ‘현실적인 대안’을 이야기했다.


오늘 아침은 6시 10분에 일어났다. 7시 전에 스터디 카페의 청소를 마치고 싶었던 내 계획은 오늘도 실패다. 그래도 괜찮다. 5시에서 8시 사이 안에서 청소하면 되니까. “괜찮아”라고 시계를 보고 놀란 나에게 말해준다.

나는 주 3회 1시간씩 스터디카페 청소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 일을 시작한 지도 벌써 35일째 날이 되었다.

사실 이렇게 오래 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계속하고 있는 오늘이 감사한 마음이다.

오늘은 75리터 종량제 봉투를 상가 밖까지 가서 버려야 하기 때문에 조금 더 서둘러야 했다.

하지만, 손은 빠르게 마음은 여유 있게 오디오북을 들으면서, 내 손은 익숙하게 청소 동작에 집중했다.


[도망칠 용기]는 일본의 정신과 의사 와다 히데키의 책이다.

책은 다양한 심리이론을 바탕으로, 현재 상황이 너무나 힘이 들다면 버티지 말고, 용기 있게 그 상황, 그 사람에게서 '도망쳐야 한다'라고 말한다.

도망쳐야 하는 상황들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르다.

어떤 사람은 인간관계가, 또 어떤 사람에게는 직장이, 혹은 아주 가까운 가족이 그 대상일 수 있다.

최근 방송되는 리얼 이혼 관찰프로그램을 보면, 이러한 메시지가 더욱더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일반인인 출연자들의 실제 상황은 흔히 말하는 '평범함'의 기준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경우가 많다.

패널들조차 "왜 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할 정도다.

누구의 잘못이든, 출연의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그 상황이 지속적으로 한 사람을 무너뜨리고 있다면 버티는 것 자체가 해가 될 수 있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상황, 이 지점에서 버티지 말고, 도망쳐야 한다고 말한다.


학교, 직장, 가정, 사회에서의 어려움은 형태는 달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버티기 힘들어 떠나고 싶었던 순간을 경험해 봤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버텨야 한다', '이겨내야 한다'. '참아야 한다'는 말에 익숙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치열한 경쟁 사회이다.

경쟁하고, 그 안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부모세대에서 이어져서 우리 아이들까지 전해지고 있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처진다', '최선을 다하자!'라는 말을 어릴 때부터 수도 없이 들어왔다.

그리고, ‘끝까지 버텨야 한다’는 말도 익숙하지 않은가?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제일 먼저, 언제나 강한 에너지로 끊임없이 달리는 사람이 있다. 항상 무리의 중심을 유지하려는 사람, 두각을 드러내며 스스로를 증명하는 사람들이다. 보통사람들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그들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다음으로 적당한 보폭으로 그 무리에서 다른 사람과 행동을 똑같이 적당히 하면서 일단 안전하게 무리에 있는 것을 선택하는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 종류의 사람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그들은 크게 튀지 않고, 낙오하지 않도록 무리의 안쪽에서 안전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경쟁이라는 무리 자체에서 한 발 빠져나오는 선택을 한다. 성공보다는 개인의 삶을 더 소중히 여긴다. 속도에 휘둘리지 않고, 비교하고 증명하고, 결과에 집중하는 구조의 바깥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마지막으로, 이 무리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지쳐버린 사람들이 있다.

달리고, 버티고, 또 달려보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감정과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어 버린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경쟁에서 지면 도태되고, 도태된 사람은 곧 '인생의 실패자'라는 낙인으로 속해있는 사회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불안으로 혼란스럽다.

처음에는 힘들다고 말하면"넌 할 수 있어!", "파이팅! 좀 더 버텨봐!" 같은 말로 사람들은 힘든 사람을 격려해 준다. 하지만, 힘들다는 말을 반복하기는 어렵다. 그 말이 반복될수록 자신을 나약하고, 무능한 사람처럼 보일까 두려워지고, 결국엔 입들 닫고 고립을 선택한다. 그래서 누군가 "도망쳐! 당장!", "그만해도 괜찮아, 지금은 네가 먼저야"라고 말해줘도 실제로 도망치는 것은 쉽지 않다. 도망친다는 건 어쩌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일이고, 누군가에게는 실패처럼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포기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더 노력해야 한다고 자신을 다그친다. 그러는 사이, 상처는 반복되고 그 상처가 회복되기 전에 또 다른 자극으로 상처는 악화된다.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문을 닫고 방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사람들... 그리고 스스로 삶의 문을 닫아버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작가는 말한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도망쳐야 한다고 말이다.

도망쳐도 괜찮다.

도망치는 것은 전략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도망쳐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도망치는 방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제시했다.

하나는 '그 자리에 머무르며 도망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거리를 두고 도망치는 방법'이다.

먼저 그 자리에 머무르며 도망치는 방법은 글쓰기, 인지치료, 과제의 분리, 완벽주의, 싸우지 않기, 내편 20퍼센트에 집중하기, 물든척하면서 상황을 넘기는 방식을 말한다.

거리를 두고 도망치는 방법은 매우 실질적인 방법으로 생각 그만하기, 휴직하기, 산재보험 신청하기 등이다.


작가는 정신과 전문으로서의 임상 경험은 물론, 의사로서의 사회적 책임감을 바탕으로 글을 풀어간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더 많이 구하고 싶다는 진심과 사명감이 책의 전반에서 분명하게 전해졌다.

특히 그는 단순하게 '괜찮아'라는 말로 끝내는 위로가 아니라, 정말 안전하게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을 하나하나 짚어준다. 이 책은 위로를 건네는 감상문이 아니라, 현실적인 탈출로를 아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안내서에 가깝다.


지금 여기, 내 상황 속에서 조용히 나 자신을 바라본다.

이른 아침, 이렇게 깊이 있는 책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청소를 마치고, 집으로 가서 대강 정리를 한 후, 10시에 비대면 워크숍에 참석해야 한다.

오늘도 바쁜 하루가 예상된다.

곧 있을 시험공부와 워크숍에 관련된 준비, 워크숍 중간에는 아이와 이야기도 나누고, 점심도 챙기고, 저녁에는 가족 식사와 미뤄둔 빨래도 해야 한다.

분명해야 할 일은 많고, 그 속도를 따라가야 하는 긴장도 있지만, 그렇다고 도망가고 싶을 만큼 힘들지는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6월 7일의 지난 기록을 글로 정리해 본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이 글 한 편이, 바로 작가가 말하는 '그 자리에 머무르며 도망치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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