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을 하고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회사 사람들의 경조사로부터 멀어지는 일이다. 난생처음 보는 차장님의 자녀 결혼식에 가지 않아도 되고 모친상, 부친상, 조부모상 등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 회사에 다니는 동안 어쩌다 결혼 성수기에 마주하는 날에는 달콤한 내 휴일을 쪼개서 사용해야만 했다.
누가 우리나라 혼인율이 저조하다고 하는 건지.
같은 날 아는 지인의 결혼이 겹치기라도 하는 날에는 어디 결혼식에 가야 하나 항상 고민에 빠져야 했고 더 친한 쪽? 집이랑 가까운 쪽? 내 결혼식 때 온 친구? 등을 생각하곤 했다. 분명 결혼은 남녀가 만나 축복해줘야 할 일인데 속세에 물들고 나서부터는 봉투를 얼마나 해야 될까? 5만 원? 10만 원? 호텔에서 하는 결혼식이니 10만 원은 해야 되지 않나? 지난번 이 사람이 나한테 얼마를 했더라? 등의 갖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회사에서 경조사 메일이 날아올 때면 "청구서 날아왔네"라고 얘기하신 과장님이 생각난다. 처음엔 그 뜻을 알지 못했는데 지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또야? 이 직원은 한 달 전에도 봉투 했는데 또 해야 되네", "내 경조사 때 한 번을 안 오고 봉투도 안 한 놈이야.", "봉투를 해야 돼? 말아야 돼?"라는 말들이 사무실에서 난무했다.
어느 한 직원이 부친상을 치르고 일주일 만에 출근을 했는데 책상에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빨리 처리해달라고 했고 그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 아버지를 여의고 온 사람한테 저렇게 일을 모아뒀다가 주는 건 무슨 심보지?라고 생각했는데 이 사람들한테는 부친상 모친상 등이 너무 흔하고 잦은 일이라서 동정심 따위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과연 나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나는 일주일 만에 회사를 나올 수 있을까.
그때도 회사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지금처럼 "청구서 날아왔네"라고 할 테지만.
경조사 때마다 돈을 주고받는 행위는 언젠가는 근절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제껏 해왔던 거를 한 번에 없애기는 쉽지 않지만 언젠가는 없어질 문화, 없어져야 하는 문화. 상대를 축하해주기 전에 돈부터 생각하게 되는 거짓된 축하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결혼 문화에 대해 가나 친구에게 들려준 적이 있다. 그는 한국 문화를 이해할 수 없었고 가나에서는 결혼식날 신랑, 신부, 하객 모두가 같이 춤을 추고 하루 종일 축하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30분 만에 공장을 찍어내는 듯 한 결혼식에 많은 비용을 내곤 한다. 물론 요즘엔 작은 결혼식이 진행되기도 한다. (말은 '스몰 결혼식'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면 더 큰 비용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선 결국 모든 것은 다 돈이다.
지금은 경조사 메일, 문자가 오면 가볍게 넘길 수 있어서 좋다. 휴직을 하면 내가 그곳에 가든 안 가든 사람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사실 내가 휴직을 하지 않고서도 그곳에 가지 않는다고한들 서운해하는 감정은 잠시일 뿐. 내 경조사 때 외로워 보이기 싫어서 죽어라 남의 경조사를 따라다니는 일만큼 나를 더 외롭게 하는 행동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없다면 빈 껍데기처럼 몸만 간다면 그저 나의 달콤한 휴일을 방해하는 일만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