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에 값을 매기는 세상

by 소나무

한국의 깊은 산골, 자연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곳에서 주인공 미자는 외할아버지와 슈퍼돼지인 옥자와 평화로운 나날을 보낸다. 이들의 안식은 루시 미란도가 이끄는 글로벌 식품 기업 ‘미란도’의 방문으로 깨진다. 알고 보니 옥자는 미란도가 10년 전 세계 농가에 배포한 ‘슈퍼돼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키워진 실험체였다. 그중 가장 우수한 성장을 보인 옥자는 강제로 뉴욕으로 이송된다.


미자는 옥자를 되찾기 위해 홀로 도시로 향한다. 그 과정에서 동물해방전선(ALF)이라는 비밀 조직을 만나 도움을 받는 듯하지만, 그들의 진짜 목적은 옥자에게 몰래카메라를 부착해 뉴욕으로 보낸 후 미란도의 부조리를 폭로하는 것이다. 미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옥자는 송환되고, 미디어의 주목을 받은 미자 또한 기업의 홍보 수단으로 뉴욕에 초청된다.


얼마 후 뉴욕 한복판에서는 미란도의 화려한 홍보 퍼레이드가 열린다. 그곳에서 미자는 옥자와 극적으로 재회하지만, 실험 시설에서 학대를 당한 옥자는 공포와 트라우마로 인해 통제력을 잃고 날뛰게 된다. 이 와중에 ALF는 옥자 몸에 설치한 카메라로 촬영한 잔혹하고 비인도적인 실험의 실상을 무대 위 대형 스크린에 송출한다. 장내는 순식간에 혼란에 빠지고, 퍼레이드는 아수라장이 된다. 미자는 ALF와 함께 탈출을 시도하지만, 미란도의 사설 보안 업체인 블랙초크에게 무력으로 제압당하고, 옥자는 도살장으로 끌려간다.


블랙초크로부터 가까스로 도망친 미자와 ALF의 제이, 케이는 옥자를 구출하기 위해 마지막 힘을 모은다. 도살장에 무작정 침입해 옥자를 찾아 헤매던 그들은, 퍼레이드의 참사 이후 새 대표로 취임한 낸시 미란도에 의해 가로막힌다. 어떠한 말로도 낸시는 흔들리지 않으며, 옥자는 도살 직전의 위기에 놓인다. 그 순간, 미자는 할아버지가 옥자를 넘긴 대가로 받은 황금 돼지 조각상이 여전히 자신의 가방 속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설득이 아닌 ‘거래’를 통해 옥자를 데려가겠다는 미자의 제안에, 철저히 실리적이고 이윤 중심적인 낸시는 이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옥자와 미자는 간신히 구출된다. 그러나 돌아가는 길에 미자는 도살을 기다리는 수백 마리의 슈퍼돼지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중 옥자가 몰래 입에 숨겨 데려온 새끼 슈퍼돼지 한 마리와 함께, 미자는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금 평온한 삶을 이어간다.


영화 내내 관객들이 느끼는 중심 감정은 ‘불편함’이다. 미란도의 유전자 실험 시설에서 표본이 추출되고, 강제 교배가 시도되는 장면은 동물의 고통을 날것 그대로 묘사하며 감정적 충격을 준다. 동시에, 서사는 ‘미자’의 시선을 따라가며, 옥자를 지키고자 하는 그녀의 순수한 마음이 어른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짓밟히는 과정을 통해 관객에게도 그녀의 무력감을 전이시킨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영화는 마치 동화처럼 부드럽고 환상적인 톤을 통해 이 불편한 현실을 완화된 방식으로 전달한다. 옥자의 외형은 돼지보다는 하마를 연상시카는 순한 이미지로, 그 고통을 더욱 애처롭게 만든다. 또한 서울 도심을 종횡무진하며 트럭을 추격하는 미자의 모습은 액션 영화처럼 과장된 활극으로 그려져, 현실의 잔혹함을 완충시키는 동시에 이야기의 리듬을 부여한다. ALF 역시 처음에는 미자를 도구로 이용하려는 집단처럼 보이지만, 비폭력을 원칙으로 삼고 미자와 옥자를 끝까지 돕는 리더 제이의 모습은, 동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을 보호하려는 그들의 순수하면서도 확고한 신념을 보여준다.


이러한 요소들을 통해 옥자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생명과 감정을 상품화하고 수단화하는지를 명확히 드러낸다. 미란도는 ‘슈퍼돼지 프로젝트’라는 명목으로 식량 위기 해결과 환경 보호라는 그럴듯한 이상을 내세우지만, 결국 모든 결정은 이윤의 논리에서 움직인다. 착한 기업, 지속 가능한 소비라는 슬로건은 실천이 아닌 이미지 연출과 마케팅을 통해 ‘그럴듯해 보이기’만 하면 되는 시대의 본질을 풍자한다.


이 체제에는 기업만큼이나 소비자 역시 공모하고 있다. 사람들은 퍼레이드에서 옥자를 귀엽다며 즐기고 사진을 찍지만, 자신이 소비하는 고기가 어디서 왔는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에는 무관심하다. 영화는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진실을 직시하게 하며, "당신은 이 시스템과 무관한가?"라는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옥자는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만이 아니라, 그 체제를 유지시키는 인간의 안일함과 태만함까지 비판의 영역에 포함시킨다.


결말에서 미자는 황금 돼지 조각상을 사용해 옥자를 구한다. 이 장면은 감정도 정의도 아닌, 오직 자본만이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세계의 냉혹한 현실을 상징한다. 결국 옥자 한 마리는 구해졌지만, 수백 마리의 슈퍼돼지들은 여전히 도살을 기다리고 있다. 영화는 개인의 윤리적 선택이 체제를 바꾸기엔 역부족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선택이 무의미하지만은 않음을 말한다. 감옥에서 풀려난 ALF 단원들은 더 큰 규모의 활동을 다짐하며, 개별적 저항이 모여 집단적 행동과 구조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옥자』는 자본주의 체제의 민낯을 고발하는 동시에, 우리가 그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응시할 용기를 가질 것을 요청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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