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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도니뇨 Nov 08. 2024

멈추지 마, 꿈부터 써 봐.('23.07)

취업을 향한 도전

 메일이 왔습니다. 몇 번이나 겪은 상황이지만 아직 긴장되는 것은 여전합니다. 의연한 척 눌러봅니다. ‘귀하의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 순간 가슴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일렁입니다. 대략 서른 번째 죄송하다고, 앞길을 응원한다는 연락입니다. 내 앞길을 응원할 생각이면 그냥 곁에 두고 잘하라고 응원해 주고 격려해 주면 안 되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래도 여러 차례 매를 맞다 보니 맷집이 좋아졌습니다. 잔잔한 감정선에 잠시 스파크가 생겼었지만 금세 괜찮아지고 다시금 안정적인 감정선으로 회귀합니다.

 

 어떤 회사는 제게 인상 깊게 읽은 책을 물어봅니다. 전체 12권이나 되는 대하소설1)을 적고 싶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밤을 새워가며 책을 읽고는 학교 보충수업에 가 쿨쿨 자게 만든 책입니다. 평소와 너무 다른 모습에 요즘 무슨 게임에 빠진 거냐고 물으시던 한국지리 선생님. 아무리 평소에 성실했다고 한들 형평성에 어긋날 수는 없다고 교실 밖으로 가 반성하라고 하십니다. 반성하러 나가는 이 순간에도 슬쩍 책을 챙겨 나가 읽습니다. 에어컨이 없는 복도는 찌는 듯한 더위로 가득합니다.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매미 울음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다시금 책을 읽습니다. 2주 남짓 한 시간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홀린 듯이 탐독하였고 조선과 미국 하와이, 중국을 넘나드는 배경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정말 제가 인상 깊게 읽은 책을 묻는 것이 아니지요. 결국 저는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하기 위해 다시금 머릿속 책장을 살펴봅니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비슷한 시기에 읽은 책이 한 권 있습니다. ‘골든벨 소녀’라고 불리는 김수영 작가님의 ‘멈추지 마, 가시 꿈부터 써봐’라는 책입니다. 이 작가님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책을 읽어 보았는데 꿈을 찾아 방황하는 제게 힘과 용기를 주는 책이었습니다. 하고 싶었던 일, 꾸었던 꿈들을 이루었던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언젠가 이런 어른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이런 내용을 자기소개서에 잘 풀어내야 합니다. 제한된 글자 수 안에 배운 점과 포부에 대해서도 짧게 적어봅니다. 이 이야기가 그들이 원하는 이야기일지 확실치는 않지만 꽤 그럴싸하게 말을 지어냅니다. 멈추지 않고 제 꿈을 써보았는데 저들은 제 꿈을 멈추지 않게 해줄지 의문입니다.

1) 23년 2월의 글 ‘출근길’에 짧게 소개된 책입니다. 조정래 작가님의 아리랑입니다.

 

 폭풍과도 같던 상반기가 끝났습니다. 1월 중순부터 정신없이 달린 것 같습니다. 바쁘면 시간이 잘 간다는 말이 너무 어울리는 6개월이었습니다. 출근하던 곳의 계약기간도 끝나고, 수많은 거절에 약해졌을 것만 같은 심신을 보살피자 본가를 다녀왔습니다. 마침 선생님께서 부산에 계신 선배님을 뵈러 가자고 하셔서 선생님과 부산 서면으로 갔습니다. ‘글 나누리’ 모임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오갑니다. 선생님께서는 선배님과 공부할 때도 현재의 ‘글 나누리’와 같은 모임에 대해 여러 번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정말 이렇게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삶을 나누는 모임을 만들고 싶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씀하신지 몇 년이 지나 네 명이서 시작한 모임이 이제는 15명이 삶을 나누고 있습니다. 참 좋다고,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선생님의 행복에 조금이나마 기여한 것 같아 뿌듯합니다. 그러면서 오래전부터 말씀하신 ‘취락당2)’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글 나누리’를 현실화하신 것처럼 시간이 걸리더라도 ‘취락당’도 꼭 현실화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 선생님께서 만들고 싶어 하시는 별장입니다.

 ‘꿈을 꾸는 사람은 그 꿈을 닮아간다.-앙드레 말로3)’라는 격언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조금 전 소개한 책에서 읽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다른 어떤 곳에서 들은 것도 같습니다.4) 멈추지 말고 꿈부터 써 보라는 김수영 작가님의 책에는 살아가며 이루고 싶은 꿈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작가님은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그것들을 하나씩 이루어 나갑니다. 처음 작성했던 버킷리스트와 책을 집필할 당시의 상황을 비교하여 몇 개를 이루었고 몇 개가 진행 중인지 나와있습니다. 상상도 못 해본 것들을 꿈꾸고 이루어가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고 3, 재수생 그리고 군인이었을 때까지 포함하여 세 번 정도 읽으며 저도 버킷리스트라는 것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러고는 한참을 잊고 지내다 이번 ‘글 나누리’와 ‘취락당’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다시 생각났습니다. 언젠가 저도 제가 훗날 하고 싶은 것들, 이루고 싶은 것들을 일기장에 적어두었다는 사실이요. 군 복무를 하며 작성한 버킷리스트에는 전역하고 싶은 것들을 쭉 써봤던 것 같습니다. 본가 책장에서 일기장을 꺼내어 확인합니다. 열심히 써 내려간 흔적을 보니 꿈이 크고 당찬 23살의 제가 생각납니다. 그래도 몇 개 이루었습니다. 스페인어를 배우겠다고 다짐했었는데 몇 개월을 투자하여 자격증을 땄습니다. 또한 당시 자유형과 배영만 할 줄 알았는데 이제는 접영까지 할 줄 아는 녀석이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 못 이룬 것도 많습니다. 10년 넘게 응원하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경기장인 ‘올드 트래퍼드’를 아직 못 가봤습니다. 이제는 이룰 수 없는 꿈도 있습니다. 지난 몇 년 간 세계를 잠식한 역병으로 해외 교환학생은 더 이상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직 진행 중인 것도 있었습니다. 꾸준히 운동하는 것, 책 읽는 것이 그런 것들입니다. 혹시 하나도 이룬 것이 없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열심히 살아온 것 같습니다. 버킷리스트의 수정과 보완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하며 지난 몇 년간 열심히 살아온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3) 편지를 쓰다 좀 더 찾아보니 프랑스의 작가 앙드레 말로의 원문은 내용이 약간 다르다고 합니다.

4) ‘멈추지 마. 꿈부터 써 봐’ 책에 나온 것 같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중학생 때 체중을 크게 감량한 적이 있습니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줄넘기를 들고 집 앞 놀이터에 어머니와 갔습니다. 줄넘기를 하며 개수까지 세는 것은 무리가 있으니 대신 좀 세어달라고 억지를 부리며 줄넘기를 했습니다. 몇 개 뛰지도 않았는 데 턱하고 걸립니다. 처음 몇 번이야 걸리더라도 괜찮았는데 자꾸만 걸리니까 승질이 납니다. 1,000개를 넘는 동안 수 십 번을 걸리며 겨우 끝냈습니다. 체중 감량에 성공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저녁에는 야채만 가득한 샐러드를 먹고, 바쁘신 어머니랑 공원에 가 줄넘기를 하였습니다. 그쯤 유행했던 ‘시크릿’이라는 책에서는 본인이 원하는 상황, 모습 혹은 대상을 머릿속으로 계속 그려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주로 신호를 보내면 어디선가 그 신호에 응답할 것이라며. 비과학적인 것은 알지만 당시 저는 줄넘기를 하러 가며 밤 하늘에 둥둥 떠 있는 달을 향해 기도 아닌 기도를 보냈습니다. 살을 뺄 수 있게 도와달라고, 나는 체중 감량이 필요하고 저녁도 조금 먹고 운동도 이렇게 하고 있으니까 이제는 달님이 응답할 차례라고 하며 갔습니다. 줄넘기는 점점 익숙해져갔고 한 번도 걸리지 않고 1,000개도 거뜬히 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가득 찼다가 또 비워지는 달을 향해 몇 번이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매일 밤 3,000개 혹은 4,000개씩의 줄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샌가 살이 제법 많이 빠져 있었습니다. 원하는 것을 이루고 홀라당 떠나 버리면 안 될 것 같아 그 후로는 고맙다는 신호도 몇 번씩 보냈습니다.

 

 달리는 기차 안은 책 읽기도, 부족한 잠을 채우기에도 또 생각들을 정리하기에도 제격입니다. 선생님께서 모임을 만드신 일, 제가 버킷리스트를 적고 저도 모르는 새 조금씩 이루어 온 과정 그리고 달빛을 조명 삼아 줄넘기를 하던 모습들이 스쳐 갑니다. ‘꿈을 꾸는 사람은 그 꿈을 닮아간다.’, ‘원하는 것을 상상하며 우주를 향해 신호를 보내라.’는 말의 뜻을 알아내려고 합니다. ‘자기암시’의 효과가 아닐까 하며 그럴싸한 답변에 내심 만족합니다. 꼭 거창한 내용이 아니라도 원하는 것을 스스로 자꾸 상기시킨다면 어떤 행동을 함에 있어 원하는 것을 이루는 방향으로 본인도 모르게 나아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스페인어를 배우기 위해 휴학을 하고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원비에 보태었습니다. 꾸준히 운동하기 위해 부지런히 살고 있습니다. 또 달님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저녁에 줄넘기를 들고 공원을 향했습니다. 선생님도 아마 ‘글 나누리’의 현실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꿈을 이루기 위해 그 꿈을 잊지 않고 노력하며 스스로 되뇐다면 시간이 걸릴지언정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만족스러운 사고(思考)의 시간을 보낸 것 같아 기차를 내리는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친구와 맥주를 한잔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마침 꿈에 대해 한참 생각했던 날이라 제가 정리한 생각들을 말해봅니다. 나름 열심히 고찰한 것들에 대해 열심히 토로하고 나니 친구가 말합니다. “꿈을 꾸는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인 것 같아.” 잠시만 기다려 달라 하고 제법 술이 취했음에도 메모장을 켜 기록합니다. 꿈을 꾸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사실 꿈을 꾸며 그 꿈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이 녹록지만은 않았습니다. 밤새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쪽잠을 자고 학원을 갔으며, 가기 싫은 체육관이지만 별 수 있냐는 생각으로 갔습니다. 또 코로나로 인해 하늘길이 막히자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재앙이기에 어찌할 방도가 없다고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또 아직 이루지 못 한 꿈들을 위해 여전히 고군분투하는 중입니다. 이렇게 힘을 짜내며 달리다가 넘어지는 순간도 있습니다. 하지만 ‘꿈’이라는 한 글자를 위해 또 달려가는 중입니다. 넘어질 줄 알아야 하고 다시 일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상황에도 한발 내딛는 것 자체가 용기였던 것입니다.

 

 아직 저를 부르는 곳이 없기에 꾸준히 지원하고 있습니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오늘도 여전히 가기 싫은 체육관을 갑니다. 또 잠깐의 여유가 나면 책을 읽으려 노력하고, 언젠가부터 늘지 않는 기타 실력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튕겨봅니다. 이렇게 노력하고 있지만 이루지 못하는 것들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꾸는 자 답게 용기를 갖고 나아가려 합니다. 그렇게 원하는 꿈들을 향해 달려가다 보면 그 꿈들과 닮아있는 모습이 될 것 같습니다.

 또 메일이 왔습니다. ‘아쉽게도 한정된 인원으로 인해……’ 가슴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일렁입니다. 용기 있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입니다. 아마 뜨거운 이 감정은 꿈을 향해 달려가도록 만드는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다른 누군가 저를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스스로 멈추지 않고 또 달리고 있습니다. 꿈을 쓰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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