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없는 자는 승리한다.

by 이음

막 서른이 지났을 때 일했던 곳은 비슷한 나이대의 직원들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그때 당시 밀레니얼 세대로 분류되었던 미혼의 직원들과 이미 연차가 많이 쌓인 기성세대의 관계에서는 보이지 않는 대립이 존재했다.


회사의 손과 발이 되어 실무를 담당하고 있던 밀레니얼 세대들은

이미 열정을 잃고 안주하며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무능한 상사들을 경멸했고,

오랜 시간 회사를 일구고 정착시켜 온 공로를 인정받아야 할 기성세대들은

전체를 보지 못하고 당돌하고 혈기만 앞선 어린 직원들을 이해하고 다루는데 서툴렀다.


그곳에서 기성세대에 포함되는 한 분의 소개로 일을 시작했던 나는

그 두 세대의 중간 지점에서 귀를 막고 내 할 일만 하기 위해 무척 노력했다.


그건 아마도 막 사회 초년생이었을 때,

직장에서의 권력 구도 가운데서 결국 나만 얻어터졌던

그 참담하고 서러웠던 가슴 아픈 기억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순진하기만 했던 나는 말 한마디에 참 잘도 휘둘렸다.


그때 밀레니얼 세대를 대표했던 주동자는 나를 회유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는데

그로 인해 나는 참 많은 시간을 걷기로 수행하며 깨달아야 했다.


“왜 그렇게 눈치가 없어요?”


어떤 일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회사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고 거기서 그녀는 나의 상사가 나를 이용하는 거라고,

거짓말하고 있는 거라고 가르치듯 혹은 충고하듯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 말을 곱씹으며 사람들의 말속에 내포한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의심의 눈으로 보기 시작했고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녀의 말은 맞는 말이기도 해서

덕분에 나는 손해를 덜 보고 좀 더 영리한 척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행복해지지는 않았다.


한번 깨어난 감각은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고 그만큼 분노도 많아졌다.


인간관계에서 서로 간의 피해를 주고받는 것은 불가피한 일인데도

나는 아주 약간의 피해도 용납하고 싶지 않았다.


직장 상사가 그녀의 말처럼 나를 이용하고 속이려고만 하는 파렴치한이었다면

나는 변해버린 나의 내면을 슬프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직장 상사가 때론 나를 위해 고민하고, 나를 도와주려고 한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또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어쩌면 지나고 났기에 깨달은 것일지도 모른다.

인생의 슬픈 지점은 거기에 있는 것 같다.


살면서 가끔 내가 좋아했던 나의 선하고 따뜻했던 부분들을 잃고 흔들린다.

그게 서글프고 부끄러워질 때면 내가 변한 건 날 그렇게 만든 사람들과 세상 때문이라고,

심성과 의도가 못된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그들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똑같이 못되고 삐뚤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합리화하며

그렇게 행복을 빼앗겼다.


덜 손해 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대신

눈치 없어 행복했던 내 지난날을 떠올리며 눈치 없음을 노력하려고 한다.

손해보지 않기 위해 별로인 사람이 되기보단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지키는 나로 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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