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집 근처 공원을 처음 달리던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다.
나에게 달리기는 늘 ‘급한 이동’이나 ‘도망쳐야 할 상황’에만 쓰이던 동작이었다. 그런데 달리기 자체를 목적으로 달리기 시작하자 전혀 다른 세계가 열렸다. 내 몸이 움직이며 바람이 생기고, 그 바람 속에 스며든 풍경이 낯설고도 아름답게 다가왔다. 나는 달리기의 리듬 속에서 나와 세상이 연결되어 있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달리기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존재가 관계 맺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곧 기록을 공유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동료들의 빠른 속도, 긴 거리, 그리고 그에 쏟아지는 찬사 앞에서 나는 작아졌다. 달리기는 어느새 즐거움이 아니라 “나는 잘 살고 있다”는 증명을 위한 시험지가 되었다. 남들의 기록과 나를 비교하며 불안해했고, 초조함에 새벽잠을 설쳤다. 그리고는 무작정 달렸다. 숨이 목까지 차오르면, 생존의 감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남지 않았다. 그것조차 차라리 감당하기 편하다고 느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발목이 부풀어 올랐다. 멈추지 않고 달린 끝에 활액낭염 진단을 받고 깁스를 하게 되었다. 그제야 멈춰 서서 생각할 수 있었다. 나는 내 약한 발목을 원망했고,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겼다. 더 이상 잘 살고 있음을 증명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우울로 번졌다.
다시 묻는다. 나는 왜 달리기 시작했는가?
처음 달릴 때 나는 아이들의 작은 발자국 소리에 리듬을 맞추며 웃었다. 언젠가는 환자들과 함께 달리고 싶다는 소박한 꿈도 꾸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나는 모든 존재를 내 성취를 비춰주는 거울로만 삼았다. 나무도, 새도, 사람도, 심지어 내 몸조차 도구로 전락시켰다. 나는 달리기의 본질, 연결의 기쁨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여기서 내가 붙잡아야 할 것은 자존감이 아니라 연존감이다.
자존감이 ‘나’를 세워 올리는 감각이라면, 연존감은 ‘나’가 수많은 존재들과 얽혀 있음을 알아차리는 감각이다. 나의 발밑을 스치는 개미, 하늘을 가르는 새, 옆을 지나가는 사람, 땀 흘리며 움직이는 내 몸까지—이 모든 것이 이미 나와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 위에 내가 존재한다.
달리기는 누군가를 따라잡기 위한 질주가 아니라, 관계의 리듬을 다시 배우는 시간이었어야 했다. 나의 속도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존재들의 호흡에 귀 기울이는 일이었어야 했다. 내가 그걸 알고 있었더라면, 달리기는 훨씬 더 깊고 부드러운 기쁨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제 다시 묻는다.
달리기는 왜, 누구와 함께, 무엇을 향해 하는 것일까?
그 답은 성취가 아니라 연결 속에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진작 알고 있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