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찰하지 않으면 방황하게 된다
“해찰하지 말고 곧바로 집으로 와.”
초등학교 때 늘 듣던 말이다. 저학년 때는 작은오빠와 함께 등교를 했었다. 어슴푸레 그런 기억이 남아 있다. 비 내리는 날, 등굣길에 동네 아주머니가 정성스레 심어놓았을 것이 분명한 토란대를 잘라 들고 빗방울이 또르르 굴러떨어지는 모양새 같은 걸 보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초등학교 3학년, 초등학교 1학년, 작은 보폭으로 20여 분을 걸어서 집과 학교를 오갔다. 말갛고 천진하고 마냥 즐거웠던 나날이다. 골목길과 대로변을 거쳐 온갖 불량식품과 학용품을 같이 팔았던 문구점 앞을 지나 학교 정문까지 가는 길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학교 가는 길은 어쩐지 흥청흥청 신이 났다.
언제부터인지 자연스레 혼자 등하교를 하게 되고, 그때는 지금과 달리 호기심이나 사교성이 만발했던지 혹은 다른 아이들보다 유난히 조그맣던 내가 걱정이 됐는지 엄마는 늘 해찰하지 말라는 말로 나를 배웅했다. 그 말 그대로 학창시절 내내 거의 학교와 집밖에 모르고 살았다. 사실은 그런 생활에서 재미를 느꼈던 것도 같다. 눈앞에 집중해서 할 일이 있고, 그걸 하나씩 걱실걱실 해치우는 게 즐거웠다. 물론 가끔 곁길로 샐 때도 있었지만 기껏해야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오락실을 가보고는 거기 담뿍 재미를 들였던 거, 고3 때 독서실 앞에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몇 번 마신 정도였달까. 그야말로 얌전한 일탈이다.
국어사전의 건조한 문장을 빌리자면 해찰이란 “일에는 마음을 두지 않고 쓸데없이 다른 짓을 함”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딴짓을 하다니, 그럼 쓰나. 예전 같으면 그 뜻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을 거다. ‘그렇게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되지.’ ‘할 일은 재깍재깍해야지.’ ‘부지런히 해야지, 농땡이 부릴 시간이 어디 있담.’ 암, 그렇고말고.
그런데 많은 것이 그렇듯 이 단어에 대한 감각 또한 살다 보니, 살아보니 꽤 달라졌다. 아니, 꽤가 아니라 정반대라고 해도 될 만큼 뒤바뀌었다. 아니, 해찰 없이 어떻게 살지. 그렇게 각박하게 살아서 뭐가 남나. 인생에 목적지라는 게 그렇게 뚜렷할 수가 있나. 정작 거기까지 가는 여정에서는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한다면 그걸 제대로 살았다고 말할 수가 있나. 예전의 내가 해찰을 한심하고 위험한 것으로 봤다면 이제 나는 장난스러운 뉘앙스의 그 단어에서 ‘목적지 따위는 잠시 잊어도 좋다는 느긋한 뒷모습’을 본다.
가진 것이 없어도 자신만만했고,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면 그럭저럭 즐겁게 인생길을 걸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젊은 날. 엄청난 재미나 성공 같은 걸 꿈꾸지는 않았다. 다만 어떤 똑바른 길 같은 건 미리 그려보고 싶었다. 결혼 생활의 청사진 같은 것. 그리고 프러포즈를 받을 때 내가 그에게 요구한 건 단 하나였다. 일종의 인생 계획표. 거창하지 않아도 어떻게 살고 싶고 어떻게 살아갈 건지 밑그림 정도는 보고 싶었다. 거기엔 어떤 그림이 그러져 있었나. 여행을 얼마나 자주 가겠다거나 내 집 마련을 언제쯤 하겠다거나, 그런 말이 적혀 있었던가. 구체적인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걸 받아드는 순간은 이렇게 살아도 괜찮겠다는 안도감 같은 걸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야말로 참 쓸데없는 일이었다. 함께 사는 동안 나는 사는 일에 급급해서 그 계획을 까마득히 잊었고, 결과론적인 말이지만 계획대로 된 것도 하나 없으며, 나중에는 그 계획마저 잊어버리고 말았다. 아니, 계획표의 존재 자체를 잊었다. 잠시 잠깐 눈에 보이는 목적지는 있을 수 있을지언정, 인생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해찰하지 않으면 방황하게 된다. 꽤 오랫동안 방황했다는 감각이 몸에 남아 있다. 발밑을 보며 부지런히 걸었지만 마음은 늘 어딘가를 헤매는 기분이었다. 걸어도 걸어도 허한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다. 겉에서 볼 땐 묵묵히 길을 걷는 것처럼 보였을지언정 내 마음속 한구석에는 길을 잃고 엉엉 우는 아이가 있었다. 아마도 그건 느긋하게 해찰할 시간을 내게 허락하지 않은 탓일 테다.
해찰이 느긋한 산책이라면 방황은 조급한 헤맴이다. 방황하는 이는 신발 밑창이 닳도록 길을 물으며 쏘다니지만, 해찰하는 이는 길가에 핀 이름 없는 풀꽃 앞에 쪼그려 앉아 시간을 잊는다. 방황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가야 한다는 ‘당위’의 통증에, 지금 길을 잃었다는 ‘당혹’까지 겹친다. 그러나 해찰에는 지금은 잠시 여기에 머물겠다는 ‘기꺼움’의 휴식이 있다. 갈 길에서 눈을 돌려 이런저런 것을 더 많이 마음에 담아보려는 여유가 있다. 일직선의 길을 찾느라 헤매는 대신 잠시 여기저기 둘러보며 놀아도 괜찮은 시간을 허락해줘야 할 때가 생에는, 분명 있다.
생각해보면 직선으로만 걸었다고 생각했던 학창 시절에도 틈틈이 즐기는 해찰의 시간이 있었다. 누군가 떨어뜨린 아이스크림을 향해 까맣게 달려들던 개미의 행렬이나 마당에 핀 탐스러운 장미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기억. 굳이 길을 돌아서 친구 집에 들러 같이 학교에 가자고 그 애 이름을 부르던 기억. 학교에서 이끼에 대해 배우고는 그걸 기어이 눈으로 보겠다고 강변의 그늘 한편에서 우산이끼, 솔이끼를 찾아보던 기억. 별것 아니지만 추억하는 것만으로 빛나는 기쁨이 지금 여기로 소환된다. 그건 게으름이라기보다 오히려 세상을 촘촘히 양껏 느끼겠다는 성실에 가깝다. 그리고 그건 세상이 내게 건네는 사소한 인사에 일일이 대답하는 예의인지도 모르겠다. 효율의 눈으로 보면 낙오겠으나, 응시의 눈으로 보면 발견이고 풍요로움이다.
마음속 긴긴 방황을 마치고, 이제야 마음껏 해찰하고 싶어진다. 지난 12월부터 3개월여, 겨울방학을 맞이한 아이처럼 놀았다. 방학 숙제처럼 꼭 필요한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냈다. 해야만 한다는 당위를 머릿속에서 몰아내고 다른 것으로 그 자리를 채웠다. 그렇게 생긴 공간에서 삶의 다른 가능성을 기웃거려보기도 하고, 혹시나 내 미래가 될 성싶은 그림을 펼쳤다 접었다 해보기도 했다. 오전 9시의 햇살이 거실 어디까지 닿는지 관찰하며 화분 위치를 조절했고, 구석에 처박아뒀던 시집을 꺼내 가만히 낭독하고 녹음해보기도 했다. 듀오링고로 내게 무용한 스페인어를 꾸준히 공부해보기도 했다.
그러고 돌아온 곳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제자리라고 해도 한껏 해찰하고 다시 돌아온 이 자리는 전과 같은 자리는 아니다. 컴퍼스처럼 중심은 여기 있지만, 조금은 반경이 넓어졌다는 느낌이 두 발에 남았다.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일지라도 그 해찰의 시간이 참 좋았다. 이 자리가 그때 그 자리와 똑같다 해도 아무 의미 없는 시간이란 없다. 눈이 조금 맑아진 기분이다.
분명 방황의 순간이 또다시 찾아올 것이다. 내가 서 있는 곳의 좌표를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한 기분이 급습할 때가 있을 거다. 그때 잠시 멈춰 서서 구름의 문양을 살피거나 지나가는 바람의 결을 만져볼 수 있다면, 방황의 순간에도 해찰의 호흡이 스며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럴 때 해찰은 부끄러운 방기가 아니라, 삶이라는 긴 문장 사이에 찍는 쉼표가 될 것이다. 혹은 내가 써 내려가는 가장 아름다운 오문(誤文)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