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아래서 나를 세우고 햇볕 아래 연결되는 마음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앉아서 여유롭게 하루를 계획하는 시간은 다시 생각해도 좋다. 강서구를 떠나서 다시 서북 지역으로 이사한 후 한동안 어둑한 새벽을 걷어내고 집을 나섰다. 북적이는 시간을 피해서, 버스가 만원이 되기 전에, 도로에 차가 쏟아져 나오기 전에. 조금 늦게 출발하면 사람에 치여서 회사에 도착하기도 전에 지치고 말 테니 이편이 내게는 여러모로 현명한 선택이다. 오랫동안 ‘올빼미형’이라 믿으며 밤의 정적에 기대 살았지만, 의외로 나는 일찌감치 일어나 하루의 첫 페이지를 넘기는 그 서늘하고 상쾌한 감각을 꽤 사랑한다.
코끝이 찡한 한겨울 아침, 버스가 한강을 건너갈 즈음이면 저쪽 멀리서 해가 둥실 떠올라 강 위로 윤슬을 뿌린다. 햇살의 붉고 노란 기운이 얼굴에 아낌없이 쏟아진다. 태양의 에너지가 얼마나 강렬한지 그야말로 물리적으로 실감한다. 그 빛을 한 아름 받아들이면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꿈틀거리는 생동감이 느껴진다. 그렇게 버스 창을 바라보며 하루 치의 에너지를 충전한다. 내 안에 그 힘을 고이고이 담아두는 상상을 한다. 몸 안쪽이 노랗게 환해진다. 달의 은은한 기운을 여전히 좋아하지만, 날이 갈수록 온 세상을 일시에 밝히는 해의 압도적인 생명력에 마음이 기운다. 아침 해를 바라보면 해바라기라도 된 양 심상이 밝고 경쾌해진다.
청소를 해주시는 여사님보다도 사무실에 일찍 도착해 자리에 앉아 있던 적도 여러 번. 그 시간에 나를 마주치면 그분은 일부러 더 과장되게 놀라면서 “어머, 설마 어제 퇴근 안 한 건 아니죠?”라고 농담을 던지곤 하셨다. 그 짧고 유쾌한 환대로 시작하는 아침은 하루 전체를 친절하게 만든다. 텅 빈 사무실에서 커피를 내리며 머릿속으로 일정을 그리고, 회의와 통화로 마음이 산란해지기 전 원고의 제목을 이리저리 굴려보는 시간. 타인과 연결되기 전 오롯이 혼자서 도모하는 이 비공식적인 시간이 역설적으로 그 이후의 ‘함께하는 시간’을 단단하게 지탱해준다.
사실 아무도 모르게 뭔가를 도모하는 시간을 즐기는 편이다. 다른 이들이 멈춰 있거나 속도를 내기 전, 내 속도로 먼저 밑그림을 그려놓는 일은 꽤 달콤하다. 맞다, 이건 좀 음흉하다면 음흉한 그런 즐거움인지도 모르겠다. 아직 비어 있는 사무실, 곧 동료들이 각자를 자리를 채울 것이다. 타인의 존재를 예비한 빈 의자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나는 이제 혼자의 얼굴 위로 함께할 얼굴을 준비한다.
흔히들 혼자의 외로움과 위태로움을 경고하지만, 한편에선 고독의 가치를 찬미하기도 한다. 피카소는 “큰 고독의 시간 없이는 그 어떤 진지한 일도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처럼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에게 자신을 담금질하는 침잠의 시간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혼자의 시간은 그 자체로 완결되지 않는다. 읽고 쓰는 행위조차 누군가와 나누고 공명할 때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 아무리 좋은 음악을 만들고 영상을 만들어도 봐줄 사람이 없으면 별 재미가 없다. 혼자 계획을 세워보는 것도 타인과 발맞춰 일을 더 잘해내기 위해서다. 고독한 충만은 언제나 ‘다음의 함께’를 위해 존재한다. 순전한 자족은 없다. 완전한 혼자도 없다. 다소의 인정, 나누는 즐거움, 조금 빗나가더라도 겨냥하고 실행해보는 기쁨 같은 것은 모두 타인을 필요로 한다.
혼자의 시간에 너무 매몰되면 한 발을 내딛기도 겁나는 때가 찾아온다. 완벽주의라는 핑계나 변명 뒤에 숨어서 아무것도 내놓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달빛 아래에만 있는 사람은 헤어 나올 수 없는 불안의 늪에 빠지기 쉽다.
나 역시 차분히 밑그림을 그리고 일을 도모하면서도, 불안감에 압도될 때가 많았다. 그러고는 막상 햇빛 아래 나설 때가 되면 곱게 그려놓은 그 그림을 어린아이가 낙서하듯 엉망으로 색칠해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기도 했다. 써놓은 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괜히 화풀이를 하듯 열심히 깎아둔 연필 끝을 뭉툭하게 뭉개버린다. 단정하게 정리해둔 메모를 구겨버린다. 쓰다 만 원고가 폴더에 한가득이다. 이렇게 아무도 모르는 ‘준비’와 아무도 모르는 ‘도피’ 사이에서 인생을 탕진하지 않으려면, 결국 빛 아래로 걸어 나가야 한다.
달빛 아래에서 나를 조금 세웠다면, 그다음에는 햇볕 아래에서 세계와 다시 연결되어야 한다. 혼자와 함께는 페어(pair)다. 달과 해가 서로의 자리를 바꿔가며 나타나지만 완벽한 한 쌍이듯. 이제 나도 그늘만 찾아다니면서 볕이 들기를 바라는 어리석음은 그만두려 한다.
최근 교정 작업을 한 책 『나를 잃지 않는 관계의 기술』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초반에 나오는 이 문구를 보고 단박에 이 책이 좋아졌다.
“인간은 (…) 다른 사람과 연결되려는 욕구와 한 개인으로서 자기 길을 가려는 욕구로 이루어진 현실을 살아간다. 이 멋진 춤을 추며 우리는 한 사람으로 존재한다. 늘 혼자 행동하거나 늘 집단과 함께해서는 자신에게 진실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서로가 있어야 하고 동시에 자기가 있어야 한다.”
달과 해가 번갈아 하늘을 차지하듯, 혼자와 함께도 그렇게 서로의 자리를 내어주며 한 삶의 리듬을 만든다. 달빛에 은은히 고요했다면, 이제 봄볕 가득한 뜰 안에 앉아 빛을 머금은 사람이 되고 싶다. 홀로 충만했으니, 이제 문을 열고 기꺼이 타인을 맞이할 차례다.
그러니 그대, 아무 계절에나 오세요. 나는 충분히 달궈진 마음으로 그대를 맞이할 준비가 되었으니. 우린 그 계절에 맞는 문장을 함께 써나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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