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시속 4N km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걷는다 Dec 30. 2023

환대했더니

hospitality

우리 모두 새해엔 더 단단해지자는 대표님 말에 

아뇨 전 흐를 거예요. 물처럼. 단단하면 힘들어요. 지쳐요. 

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나왔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시간. 결재판 사이에 사직서를 끼워 넣은 12월의 어느 날. 나를 앉혀놓고 한 시간가량 당신의 인생사 회고와 나의 어떤 부분이 좋아 보이는지 등을 버무려 장밋빛 미래까지 펼쳐놓으신 끝에 

오늘 대화는 즐거웠고 3일 뒤에 다시 보자 한 지 3일 된 그 시간이었다. 

심사숙고한 내 결정을 바꾸는 일. 나에 대한 다른 사람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는 일. 평소의 관성대로라면 하지 않을 선택. 이번엔 그걸 한번 해보자고 마음먹고 들어간 방이었다. 

그런데 그 말이 인상적이었나. 송년회 때도, 종무식 때도, 개회식 순서에서 계속 그 말을 하신다. 

우리 새해엔 서로 스며듭시다,라고. 

(난 사실 대단한 의도가 아니었는데. 너무 열심히 일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는데)


어제와 같은 오늘은 없다지만 전에 없이 새로 시작한 것들이 많았던 한 해.

어느 순간 문득 이대로 현상유지는커녕 죽을 것 같아 달리기를 시작했고(내가 달리기를 하다니!)

전직한 분야에서 첫 1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기억하기 위해 비공개블로그에 주간일기를 자세히 기록했다. 언제 쓰일지 모르겠지만 조금씩 토익공부를 했고 직무교육비를 mbti전문자격과정과 기타 관련 교육에 투자했다.

 

출근한 지 2주 정도 되었을 때인가, SNS프로필에 hospitality를 적었다.

환대하자. 매일 새로운 어려움이 터지는 이 경로를 통해서 내게 오는 사람, 벌어지는 일, 배워야 하는 업무들. 아는 바가 없고 가리지를 못하니 그냥 환대하자. 사업계획서와 결과보고서 그 사이의 시간들. 사이클을 한 바퀴 돌고 나면 그땐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있겠지.


모든 커리어에는 갸륵한 애증이 있다. 가끔 나는 나의 1모작 시기의 일을 그리워하고 사실 그게 나와 가장 잘 맞는 job이라고 믿는다. 다시 만나면 잘 될것 같지만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 또한 매우 모르지 않다. 들뜬 그리움으로 재회한 순간이 지나면 아, 우리가 이것 때문에 헤어졌었지! 하고 금방 깨닫게 되니 그래서 인생은 직진 아니면 절충이다.


"고마워 2023"이라고 하지. 

가끔은 수월하게 그보다 더 자주는 힘들게, 내게 벌어지는 디테일을 환대하려고 노력했다.

이제 더이상 나를 받아주지 않는 과거로 뒤돌지 않고 가던 길로 계속 나아갈수 있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고양이 편이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