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물류 솔루션이 살아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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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물류 솔루션 기업이 파산 절차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업계에 전해졌습니다. 이 기업은 물류 솔루션을 사용한 만큼 과금하는 ‘as a service’ 모델을 앞세워, 기존의 구축형(SI) 물류 IT 시장과는 다른 길을 가겠다고 선언했던 곳입니다.
초기 반응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름만 들으면 알 법한 기업들로부터 투자를 유치했고, 기대 섞인 평가도 뒤따랐습니다. 거대한 고정비를 들여 시스템과 설비를 직접 구축하지 않아도, 물류센터 규모나 물량에 따라 필요한 만큼만 비용을 내고 사용할 수 있다는 이 기업의 사업모델은 분명 매력적으로 들렸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와 달랐습니다. 고객은 쉽게 늘지 않았고, PoC(개념 증명)는 실사용 매출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매출 성장이 더뎌진 사이 투자금은 빠르게 소진됐고, 추가 투자 유치는 어려워졌습니다. 결국 현금흐름이 무너지면서, 이 스타트업의 도전은 막을 내리게 됐습니다.
이 사례가 유난스러운 일일까요? 사실 물류 시장에서 SaaS(Software as a Service)를 표방하는 기술 기업들의 시도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눈에 띄는 성공 사례를 꼽기란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어떤 기업은 고객 요구를 맞추다 보니 점점 커스터마이징 비중이 커져, SaaS라기보다 SI 업체와 다를 바 없는 구조가 되기도 했고요. 또 어떤 곳은 물류 솔루션 자체에서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아예 다른 사업모델을 찾아 방향을 틀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한 번 질문을 바꿔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SaaS 솔루션은 어떤 조건에서 확장 가능할까요? 이 질문부터 오늘 콘텐츠를 이어가고자 합니다.
일반적으로 SaaS 솔루션이 확장성을 만들려면 사용자들의 공통 요구 사항이 어느 정도 표준화돼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반복 가능하며, 고객이 늘어나더라도 추가 비용이 급격히 증가하지 않는 구조여야 합니다.
그래서 SaaS는 흔히 ‘많은 고객에게 같은 제품을 팔수록 수익성이 좋아지는 모델’로 설명됩니다. 회계, 마케팅, 협업 툴처럼 업무 방식이 비교적 유사한 영역에서 SaaS가 먼저 자리 잡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커넥터스가 사용하는 구독 멤버십 서비스(네이버 프리미엄콘텐츠), 뉴스레터 발송 도구(스티비), 기업용 이메일 서비스(구글 워크스페이스), 협업 툴(트렐로) 역시 별다른 커스터마이징 없이 수년째 안정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물론 추가적인 요구 사항이 없었던 것이 아니고, 잘 반영되지 않아 아쉬웠지만요. 일부 고객의 보편적이지 않은 요구 사항을 솔루션이 모두 반영한다면 IT 자원 운영 효율성이 나오지 않을 것이기에 이해가 됩니다.
그렇다면 이 조건을 물류에 그대로 대입해 보면 어떨까요? 어딘가에서 걸리는 지점이 생깁니다. 물류 역시 어느 정도 규모화된 조직에선 ‘시스템’ 사용이 필수로 여겨집니다. 디지털화의 여지도 크다고 반복적으로 이야기되기도 하죠. 실제로 WMS(창고관리 시스템), OMS(주문관리 시스템), TMS(운송관리 시스템) 같은 이름의 솔루션은 오래전부터 존재했고, 좀 더 미시적인 영역의 운영 최적화를 돕는 IT 솔루션도 많습니다.
다만 이 시스템들이 과연 ‘같은 문제를, 같은 방식으로, 반복해서 풀 수 있는가’ 떠올려 보면 의문이 따라옵니다. 물류는 회사마다 다르고, 같은 회사 안에서도 운영하는 물류센터마다 달라질 수 있습니다. 취급하는 상품, 물량의 패턴, 자동화 수준, 인력 구성, 고객과 약속한 서비스 조건까지 모두 제각각입니다. 겉으로 보면 모두 ‘물류센터 운영’이라는 하나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시스템으로 풀려는 순간 요구 사항은 빠르게 갈라집니다.
이 지점에서 물류 SaaS는 구조적으로 불리한 출발선에 서게 됩니다. 그렇게 조금씩 사용자가 요구하는 기능들을 하나씩 시스템에 반영하다 보면, 누군가에게는 사용하지도 않는 기능 수백 개가 덕지덕지 붙은 어렵고 복잡한 시스템이 만들어지기도 하죠.
앞서 던진 문제는 결국 이 지점으로 수렴합니다. 물류는 과연 확장성 있는 SaaS 솔루션이 전제하는 ‘표준화된 문제’에 해당하는 영역인가. 물류 시스템 기획 및 설계 경험이 있는 개발자 A씨는 이 질문에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의 답변은 기술의 한계보다, 물류라는 도메인이 가진 구조적 특성에 가까웠습니다.
“다른 회사에서 물류를 운영하던 분들이 저희 회사로 이직하시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게 있어요. 물류센터가 다루는 상품 특성, 상품군의 비중, 센터 위치, 들어가는 자동화 설비, 그리고 해당 지역에서 확보할 수 있는 인력 수준까지. 이 모든 게 다 다릅니다. 심지어 같은 회사가 운영하는 물류센터들조차 특성이 달라요. 이걸 하나의 표준 프로세스로 묶는 건 정말 어렵습니다”
- 대규모 풀필먼트 시스템 설계 경험이 있는 개발자 A씨
겉으로 보면 물류센터는 모두 비슷해 보입니다. 입고하고, 보관하고, 피킹하고, 포장해서 출고합니다. 이 흐름만 놓고 보면, 그 안에서 펼쳐지는 여러 운영 프로세스를 하나의 표준화된 시스템으로 묶는 것이 그리 무리한 시도처럼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 들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표면적으로 같은 ‘출고’라는 공정도, 그 안의 조건은 전혀 다르게 작동합니다. 인력 중심으로 운영되는 물류센터라면 출고 상품의 바코드 인식이 완벽하지 않아도 물류 처리는 가능합니다. 작업자들이 상품의 형태와 글자를 보고 판단해 어떻게든 넘길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자동화율이 높아진 센터는 다릅니다. 바코드 정합성을 높이지 않으면, 자동화 설비를 타고 들어가는 후속 프로세스가 전부 꼬여버립니다. 이런 센터에서는 PDA 도입은 물론이고, 공급사와 사전에 바코드를 맞추는 작업이 필요해집니다. 단편적인 예시지만, 이런 서로 다른 체크포인트가 물류에는 숱하게 많이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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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물류 SaaS가 마주치는 첫 번째 딜레마가 등장합니다. 표준화를 하자니 현장을 못 따라갑니다. ‘최대한 공통 기능만 제공하겠다’고 하면 실제 현장에서는 “이건 우리 물류에 안 맞는다”는 이야기가 나오니까요.
반대로 현장을 따라가자니 ‘커스터마이징’이 끝없이 늘어납니다. 고객 요구를 하나씩 반영하다 보면 어느 순간 SaaS라기보다 고객사별 맞춤 개발 프로젝트, 즉 SI에 가까운 형태로 변해갑니다. 이렇게 되면 SaaS의 표준 요율은 의미를 잃고, 개발 공수와 운영 비용은 빠르게 불어납니다.
여기에 더 현실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팔기 어렵다’는 겁니다. 저와 이야기를 나눈 개발자는, 물류 SaaS 솔루션을 기획했던 경험도 있는데요. 실제 시장에 나가보니 이 지점을 가장 크게 체감했다고 말합니다. 제품의 완성도나 기술적인 설득 이전에, 애초에 SaaS가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너무 좁다는 거죠.
그 이유는 시장에 ‘물류 솔루션을 대체하여 쓸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가 말한 ‘이미 쓸 수 있는 것’의 정체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바로 ‘엑셀’입니다. 물류 현장에서 엑셀은 단순한 스프레드시트가 아닙니다. 입·출고 관리, 재고 정리, 작업 지시, 예외 처리까지. 웬만한 중소 기업의 물류 운영은 엑셀만으로도 굴러갑니다. 최근에는 여기에 ‘AI’까지 붙었습니다. 괜히 거의 모든 물류 시스템에 딸려 오는 기본 기능이 ‘엑셀 업로드’가 아니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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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어느 순간 엑셀만으로 물류 시스템을 운영하지 못하는 순간은 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또 다른 딜레마가 찾아옵니다. 상대적으로 운영이 복잡하지 않은 기업들의 물류 시스템 시장은 이미 기존 저가형 솔루션이나 엔트리급 시스템들이 흡수하고 있고요. 그 위 단계의 일정 규모 이상의 물류를 운영하는 기업들은 외부 물류 시스템을 도입하는 대신 ‘직접 시스템을 구축’하는 결론에 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부 솔루션을 쓰면 쓰는 대로 제약이 생기고, 커스터마이징을 요구하면 원하는 일정에 맞추기가 어려우니 결국 내부 개발이나 기존 SI 방식으로 회귀하는 구조입니다.
“물류 SaaS를 호기롭게 만들더라도 실제로 고객을 만나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엑셀’이 너무 좋거든요. 더군다나 엑셀 수준에서 벗어나는 업체들의 물량은 이카운트나 사방넷처럼 저렴하게 쓸 수 있는 시스템으로 흡수되곤 합니다. 그 윗 단계로 가버리면 외부 솔루션을 도입했다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자체 개발해 버리는 업체들이 많아지고요. 시장이 너무 작고, 그렇다고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데도 추가 자원과 영업 역량이 필요하니 쉽지 않습니다. 글로벌 기업이라고 물류 운영에 엑셀을 안 쓰는 건 아니거든요”
-대규모 풀필먼트 시스템 설계 경험이 있는 개발자 A씨
이렇게 되면 물류 SaaS가 설 수 있는 자리는 더욱 좁아집니다. 엑셀로 충분한 구간 아래에는 들어갈 틈이 없고, 복잡도가 올라가는 순간에는 인하우스 개발이나 SI가 선택됩니다. 그 사이 어딘가에 물류 SaaS가 들어갈 수 있는 시장이 존재하느냐가, 이 업계에서 반복해서 던져지는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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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류 SaaS에 대한 기대는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표준화될 수 있지 않을까’, ‘기술이 더 발전하면 가능해지지 않을까’ 같은 질문이 업계 안팎에서 반복됩니다. 자동화와 AI, 클라우드 기술은 계속 고도화되고 있고, 물류 역시 그 흐름 위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 쉽지 않은 길이지만,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저와 이야기를 나눈 개발자는 물류 SaaS 솔루션이 성장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으로 ‘적용 범위를 과감히 좁히는 것’을 꼽았습니다. 모든 물류를 아우르는 범용 SaaS가 아니라, 변수 자체가 제한된 버티컬 영역을 타깃으로 삼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문제의 형태가 비교적 일정하다면, 그 안에서는 표준화의 여지가 생긴다는 겁니다.
“물류 SaaS 솔루션을 운영하는 대표님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타깃이 굉장히 명확하더라고요. 공산품도 하고 식품도 하고 뷰티도 하면 표준화가 너무 어려운데요. 뷰티 중에서도 특정 운영 영역에 초점을 맞추거나, 식품 중에서도 상온 식품만 한다고 하면 그 안에서는 어느 정도 표준화가 가능해집니다”
- 대규모 풀필먼트 시스템 설계 경험이 있는 개발자 A씨
둘째는 역설적으로 고객이 요구하는 사항들을 너무 잘 받아주지 않는 겁니다. 이건 비단 물류 시스템뿐만 아니라 3PL에도 통용되는 이야기가 된다는데요. 공통된 운영 기준과 표준을 먼저 세우지 않으면, 어떤 시스템도 확장성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류업계에서도 쿠팡 같은 자체 물류를 운영하는 기업은 내부적인 표준화 프로세스가 굉장히 잘 돼 있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물류센터를 지을 때마다 새로운 프로세스를 만들기보다, 기존 프로세스 그대로 이식하는 작업을 했거든요.
물론 3PL은 이런 설계가 쉽지 않습니다. 고객사들의 요구가 너무 제각각이니까요. 누구는 대량의 물건을 싸게 빠르게 처리하는 것을 요구하고요. 또 어떤 고객은 물류 서비스 품질을 신경 써서 꼼꼼히 처리해달라고 요구하는데 이걸 모두 맞추기는 말처럼 쉽지 않거든요. 그럼에도 저는 3PL이 물류 혁신을 주도해야 한다고 봅니다. 자체 물류만으로는 확장성이 너무 떨어지고, 결국 우리나라 물류 대부분은 3PL이니까요”
- 대규모 풀필먼트 시스템 설계 경험이 있는 개발자 A씨
제목에서 여러분에게 남긴 질문은 이렇게 다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 성공한 물류 SaaS 솔루션은 나오지 않을까’가 아니라 ‘어떤 물류 솔루션이 살아남을까’라는 질문으로 말이죠.
물류는 여전히 기술로 풀어야 할 숙제가 많습니다. 다만 그 해답이 반드시 우리가 익숙한 SaaS의 모습일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껏 물류 SaaS 솔루션이 잘 확산하지 못한 이유는 기술의 부족이 아니라, 도메인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이 불편한 조건 위에서 도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성장하는 물류 SaaS도 존재하죠. 이런 솔루션은 전형적인 SaaS와는 다른 모습입니다. SaaS로 중심을 잡지만, 커스터마이징을 통해 고객의 특화 요구를 수용하는 중간 지점을 고민하고요. 컨설팅을 통해 같은 고객의 서로 다른 요구 사항을 받으면서도 표준화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물류 SaaS 솔루션의 미래는, 그 이름을 버리는 순간에 시작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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