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있어도 못 사는 뽁뽁이, 물류의 기본값이 흔들린다

거대한 인플레이션의 입구를 지나며

by 엄지용

1. 이 글은 커넥터스가 만드는 큐레이션 뉴스레터 '커넥트레터'의 3월 26일 목요일 발송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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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커넥트 :

10년을 거슬러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당시 저는 작은 물류 전문지에서 일하고 있었고요. 맡은 역할은 단순했습니다. 우리 잡지에 글을 써줄 업계 필진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페이스북에 거의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업계에서 자신의 비즈니스 경험과 노하우를 풀어내는 사람들의 글을 유심히 읽었습니다. 그리고 괜찮다 싶은 글을 발견하면, 조심스럽게 기고를 요청하곤 했습니다.

거봉님을 처음 본 것도 그때였습니다. 문장은 거칠었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이상하게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커머스 스타트업 물류 현장을, 아주 솔직하게 풀어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미팩토리라는 신생 뷰티 브랜드에서 물류팀장을 맡고 있던 거봉님의 글은, 저에게 ‘제가 모르던 현실’을 보여줬습니다. 실무를 잘 몰랐던 기자였지만 그의 글을 편집하면서, 조금씩 업계의 현실과 이상을 배워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페이스북 DM으로 시작된 인연이 벌써 10년. 편집자와 창작자로 만났던 관계는, 꽤 긴 시간을 지나 오늘까지 이어졌습니다. 저는 커넥터스라는 미디어를 만들고, 운영한 지 4년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거봉님은 올해, 수천억 매출을 만드는 브랜드 기업의 물류 자회사를 이끄는 대표이사가 됐습니다. 신입사원부터 대표이사까지. 지난 10여 년 거봉님이 겪은 물류 이야기는 커넥터스에 연재됐고, 올해 상반기 책으로 출간됩니다.

[마감 임박] 박스 접던 물류팀 사원은 어떻게 2000억 브랜드 물류회사 대표가 됐을까


돌아보면 커넥터스가 지금까지 만들 수 있었던 이야기들 역시, 결국 이런 인연에서 시작됐습니다. 우연처럼 시작된 연결이 시간이 지나며 서로의 궤적을 바꾸고, 다시 새로운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 어쩌면 우리가 콘텐츠라고 부르는 것의 본질도,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기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계속 만나고, 묻고, 연결하려 합니다. 그 과정에서 또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질지, 저 스스로도 궁금하거든요. 10년 전 페이스북 DM 하나로 시작된 인연이, 지금의 이야기로 이어진 것처럼요. 그 과정을 이 글을 읽는 여러분과도 만들고 싶습니다.

AI도 모르는 유통물류 이야기 :

혹시 뽁뽁이 구할 데 없나요?

얼마 전 한 물류기업 관계자에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연 매출 수백억 원 규모의 3PL 기업에서 일하는 분이었는데요. 평소처럼 안부를 묻는 메시지가 아니라, 꽤 급한 톤의 질문이었습니다. “최근 전쟁 이슈로 에어캡(속칭 뽁뽁이) 발주와 수급이 어려워졌는데요. 혹시 주변에 발주 가능한 곳 아세요?”


최근 이란 전쟁으로 전 세계 공급망이 난리라는 소식은 이미 전했죠. 특히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가 커지면서 유가가 오르고, 항공사들도 연이어 운임 인상 공지를 내고 있는 상황인데요. 그 여파가 물류센터에서 매일같이 쓰는 에어캡 수급 문제로까지 번졌다는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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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에어캡과 포장용 랩, 포장용 테이프 같은 비닐 포장 부자재의 원료는 PE(폴리에틸렌)와 PP(폴리프로필렌). 이건 모두 원유를 증류하여 만든 기초 원료인 ‘나프타(Naphtha)’로 만들어지거든요. 원유 공급이 흔들리면 나프타를 만들지 못하고, 자연히 나프타를 원료로 하는 비닐 포장재 가격까지 오르는 것입니다. 실제로 최근 비닐 포장재 업체들은 연이어 관련 제품 가격을 인상하고 있고, 그 이전 물류 현장에서 사재기 수요는 따라붙었습니다. 그렇게 현장에서는 때아닌 ‘뽁뽁이 대란’이라는 말까지 나오기 시작한 겁니다.


커넥터스는 곧바로 포장재 업계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확인해 봤습니다. 돌아온 답은 예상보다 훨씬 넓은 범위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에어캡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은 랩, 테이프, 비닐 포장재까지 모두 흔들리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쓰이는 포장 부자재 대부분이 석유화학 기반 제품이다 보니, 특정 품목 하나가 아니라 포장재 전반에서 가격 인상과 수급 불안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ADKq_NaJ_R3VQx89pMGvRKDI7n0LeSlSMN2K2Zqkq5g6Kkv83JEYu2rAgejRoRcsEmwbviaLNGgMB_8cz519LDGxzgEy8Fqi1XFxVh9WCjaRDdaXzIMv=s0-d-e1-ft 커넥터스가 입수한 석유화학 업체들의 PE 인상공문 ⓒ독자 제공

실제로 최근 몇 주 사이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등 원료사들의 인상 공문이 연이어 전달됐고요. 포장재 제조기업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공급 자체가 제대로 될지가 더 문제”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한 포장재 기업 관계자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1차 인상 공문이 온 게 2주 전인데, 벌써 2차 공문이 도착했습니다. 3월 초에 톤당 10만 원, 중순에 톤당 20만 원씩 올린다고 했고, 4월에는 톤당 50만 원 추가 인상 이야기가 나옵니다. 누적으로 보면 80만 원 가까이, 인상률로 치면 50%를 넘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가격이 문제가 아닙니다. 석유화학 업체들도 원료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고, 일부 공장은 멈췄다는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병목이 이미 생겼기 때문에, 당장 전쟁이 끝난다고 해도 현장이 바로 정상화되긴 어려울 겁니다. 뽁뽁이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더 큰 문제로 번질 수 있어요”
- 비닐 포장재를 생산하는 포장재 기업 고위관계자 A씨


이야기를 듣고 나니, 에어캡을 구하고자 간절했던 물류기업 실무자의 질문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이 질문이 지금 물류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를 압축한 신호처럼 느껴졌습니다. 늘 당연하게 공급되던 자재가, 어느 순간부터는 ‘구할 수 있느냐’를 먼저 걱정해야 하는 대상이 되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요. 더 나아가 물류 운영의 기본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말과도 같으니까요.


현장의 체감, 답은 없는 건가요?


그렇다면 실제 현장에서는 이 문제를 어느 정도로 체감하고 있을까요. 여러 물류 담당자들에게 확인해 보니, 이미 상황은 꽤 갈려 있었습니다. 포장재 재고를 여유 있게 확보해 둔 기업들은 이번 이슈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고 있었고, 반대로 안전재고가 부족한 기업들은 갑작스럽게 닥친 수급 불안에 대응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같은 시장 안에서도, 이미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그중 수천억 원대 매출을 올리는 한 브랜드 기업의 물류 담당자에게 상황을 물어봤습니다. 이 회사는 비교적 큰 공급업체를 통해 포장 부자재를 턴키로 조달하고 있어, 업계 평균 대비 안정적인 단가를 유지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럼에도 최근 비닐과 랩 품목에서 약 10% 수준의 단가 인상이 이미 발생했다고 하더군요. 다만 이 단계에서는 비닐 포장재가 전체 물류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아, 아직 운영비 차원에서의 체감은 제한적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이 수급 불안이 계속될 경우입니다. 지금까지는 가격이 오르더라도, 어떻게든 물건은 구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전제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실제로 공급사 측에서는 ‘가격 인상과 함께 공급 축소가 동시에 진행될 수 있다’는 안내가 비공식적으로 전달되고 있다고 합니다. 포장재 업체들이 판가 인상과 함께 신규 영업을 제한하고, 기존 고객과의 관계에 집중하는 모습이 보이는 이유입니다.


이건 단순한 원가 이슈와는 결이 다릅니다. 가격이 오르면 비용이 늘어나는 문제지만, 공급이 막히면 운영 자체가 멈춥니다. 물류 현장에서 에어캡과 랩, 테이프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소모품이지만, 이게 없으면 출고를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든 없는 대로 출고하더라도, 상품 파손률이 치솟으면서 예상치 못한 비용을 감당해야 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 현장에서 더 중요해진 질문은 ‘얼마나 싸게 구하냐’보다는 ‘일단 구할 수 있느냐’입니다.


비닐을 대체할 소재는 없나요?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소재로 대체할 수는 없을까요? 예를 들어 종이 완충재나 종이 포장재 같은 대안입니다. 플라스틱 기반 포장재 가격이 오르면, 상대적으로 종이 소재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기대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하지만 현장의 답은 예상보다 냉정했습니다. 먼저 비용 문제입니다. 종이 완충재는 아직 단가가 높습니다. 뽁뽁이 가격이 오르고 있다고 해도, 절대적인 가격 기준에서는 여전히 종이가 더 비싼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여기에 작업 효율 문제도 있습니다. 이미 비닐 포장을 자동으로 하는 설비를 운영하는 업체라면, 종이 포장이나 완충재 사용을 위한 별도 설비나 공정을 마련함에 따른 비용이 커질 수 있습니다.


기능적인 한계도 분명합니다. 예를 들어 파렛트 위 화물을 고정하기 위해 여러 겹을 강하게 감아야 하는 스트레치 필름(랩)은 이를 종이로 대체하기 쉽지 않습니다. 장력과 복원력 측면에서 소재 자체가 갖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신선식품을 다루는 물류센터라면, 습기와 결로 문제로 종이 포장재 사용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결국 현장에서의 판단은 단순합니다. 지금 당장 비닐을 대체할 수 있는 소재가 마땅치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물류기업이 선택한 대응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가능한 범위에서 재고를 미리 확보하고, 기존 거래처와의 관계를 통해 물량을 유지하는 것. 그 이상은 사실상 선택지가 많지 않습니다.

커넥터스 백브리핑 :

거대한 인플레이션의 입구를 지나며

그리고 이 지점에서, 더 불편한 질문이 남습니다. 이 문제가 과연 포장재만의 문제로 끝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 포장재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건 뽁뽁이 하나의 문제가 아닙니다. 더 큰 문제로 번질 수 있습니다”


이 말이 과장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앞선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그리 낯선 결론은 아닙니다. 포장재는 물류 현장에서 가장 눈에 잘 띄지 않는 비용입니다. 종이나 비닐 포장재, 에어캡, 랩, 테이프 등. 하나하나의 단가는 크지 않고, 그동안 ‘언제든지 구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죠. 그래서 비용이 조금 오르는 정도는 감내할 수 있는 문제로 여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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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그 전제를 흔들고 있습니다. 가격이 오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구하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 이건 단순한 원가 문제가 아니라, 운영 리스크의 문제입니다.


포장재가 없으면 출고를 할 수 없습니다. 출고가 멈추면 매출이 멈추고, 고객 경험이 무너집니다. 그래서 기업 입장에서는 가격을 조금 더 지불하더라도 물량을 확보하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비용은 자연스럽게 올라갑니다. 그리고 이 비용은 결국 어딘가로 전가됩니다. 유통기업이라면 상품 가격으로, 물류기업이라면 물류비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비닐 포장재는 커머스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생수, 라면, 즉석밥을 비롯해 우리가 일상에서 소비하는 대부분의 식품과 생활용품은 어떤 형태로든 포장재를 필요로 합니다. 실제로 포장업계에서는 “생수 페트병이나 식품 포장재까지 수급 이슈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여기에 운송비 변수까지 겹칩니다. 중동 리스크로 유가가 오르면 경유 가격이 오르고, 이는 곧 트럭 운송비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항공 운임 인상은 이미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요. 반면 물류비 인상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더 천천히, 그리고 더 넓게 퍼집니다. 결국 이 비용은 우리가 구매하는 최종 재화의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이런 이야기도 나옵니다. 전쟁이 오늘 당장 끝난다고 해도, 바로 정상화되긴 어렵다고요. 이미 유가는 올랐고, 공급망에는 병목이 생겼습니다. 수요 기업들은 사재기에 들어갔고, 공급 기업들은 물량이 없습니다. 원료 공급망이 다시 열리더라도, 현장에서 체감하는 정상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네, 우리는 이미 팬데믹 기간 비슷한 게임을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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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다시 질문해봅니다. 지금의 뽁뽁이 대란은 단순한 포장재 수급 이슈일까요, 아니면 물류 현장에서 가장 먼저 감지된 인플레이션의 신호일까요? 물류업계 관계자들은 이 일이 뽁뽁 대란 하나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데에는 대체로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지금 이 상황에 뚜렷한 해답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전쟁이 얼마나 길어질지, 공급망이 언제 정상화될지, 대체재가 언제 현실적인 선택지가 될지. 어느 것 하나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현장의 대응도 단순합니다. 버티는 것. 그리고 대비하는 것. 어쩌면 지금 물류 현장은, 조금 더 큰 인플레이션의 입구를 먼저 지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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