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소비와 공정무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쓰레즈
한때 한국에서 공정무역 커피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종종 가던 시립미술관 앞에서는 공정무역 커피를 파는 행사를 곧잘 했는데,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난히도 '공정무역(Fair Trade)', '슬로우 푸드', '대안교육', '젠트리피케이션', '에코프렌들리' 같은 단어들이 많이 오르내렸다.
그때가 2010년대 초반이었으니 불과 얼마 되지 않았지만, 어느새 네온과 레트로를 필두로 한 힙스터 열풍에 공정무역은 우리에게 조금은 뒤쳐진 그리고 기억 저편으로 잊힌 단어가 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명품 브랜드들은 퍼프리 무브먼트와 함께 에코퍼 열풍을 불러일으켰고, 프라이탁 같은 업사이클 브랜드들이 인기를 얻고 있으니 단어가 약간 올드하게 느껴지는 것일 뿐 여전히 그때 그 개념들은 우리 곁에 존재한다.
올해 1월 19일, JA라 불리는 미국 보석인 연합회(Jewelers of America)가 매년 개최하는 시상식에서 탁월한 소매상인에게 주는 GEM 어워즈에서 영광의 수상자는 쓰레즈(Threads)였다. 럭셔리 시계와 보석으로 유명한 셀리니(Cellini)와 젊은 감각의 디자인과 합리적인 가격으로 끈 인기를 끈 브로큰 잉글리시(Broken English)를 제치고 상을 거머쥔 쓰레즈는 앞서 본 공정무역 주얼리 브랜드다.
공정무역이란 세계화와 자유무역으로 인해 국가 단위의 불평등이 전지구적 차원으로 확대되고, 불공정 무역구조 때문에 발생하는 부의 편중, 노동력 착취, 환경파괴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 하에 생긴 대안적 형태의 무역이다. 소외된 국가의 소외된 노동자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공정한 무역조건을 제공하고 권리를 보호하는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의 가치 실현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사실 공정무역이라는 개념은 2차 세계대전 후 구호단체들이 난민들의 수공예품을 구매하고 되팔면서 시작되었다. 로컬리티가 살아있는 수공예품은 최초의 공정무역부터 주목했던 아이템인 것이다. 1950년부터 시작되어온 수공예품의 공정무역이라는 다소 고리타분한 주제를, 어떻게 2011년 세 명의 여자들이 만든 작은 스타트업이었던 '쓰레즈'가 소생시킨 걸까. 아니, 단순한 소생을 넘어 지구촌을 연결하는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든 하나의 사회운동이나 사회적 기업으로 자리 잡게 되었을까.
쓰레즈는 세 명의 친한 친구들이 공동대표가 되어 운영되고 있다. 린지 머피, 안젤라 멜피, 그리고 카라 발렌타인이다. 셋은 함께 전세계를 여행하던 도전정신과 모험 의식으로 가득 찬 친구들이었다. 캄보디아, 인도, 과테말라 등 다양한 개발도상국을 여행하면서 그들은 전세계 각지에서 동료 여성들을 보고 만나게 되었다. 전세계에 있는 여성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가치 있는 노동을 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지구촌을 잇는 하나의 커뮤니티가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는 단순히 여성에게 경제적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을 통한 지역사회의 개발이라는 면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한다.
에스닉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들은 각 나라와 지역사회 특유의 문화를 살린 독특한 수공예 주얼리가 시장성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주얼리는 비교적 접근이 용이하지만 그것이 내포하는 의미와 역사, 문화와 과정 등을 의논하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그 확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누군가 귀걸이가 예쁘다고 할 때, '고마워요. 과테말라에 있는 아이를 가진 엄마들이 만든 귀걸이랍니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이게 어디 브랜드 것이고 어느 나라의 어떤 사람이 디자인하고 만들었으며, 귀걸이 디자인이 갖는 의미와 그 문화에 대한 의논을 하면서 기존의 사고를 뛰어넘는 새로운 세상으로의 관점 확장과 함께 새로운 소통의 장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단순히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지역의 여성들이 당면하고 있는 사회문화적 맥락을 주얼리에 담아내는 수공예를 지향한다. 쓰레즈는 인도네시아, 케냐, 베트남, 에티오피아, 에콰도르, 볼리비아, 인도, 우간다, 과테말라의 여성 수공예 장인들과 함께 하고 있는데, 각 나라의 여성들이 만든 주얼리들은 전부 하나 같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볼리비아에서는 만연한 인신매매와 성매매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에티오피아에서는 그 나라에서는 감기처럼 흔하지만 낙인처럼 따라다니는 HIV/AIDS를 극복해낸 굳센 엄마의 이야기가, 케냐에서는 청각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소외된 젊은 여성이 지역사회를 이끌게 된 이야기가, 과테말라에서는 경제적 사정으로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되었지만 다시 선생님의 꿈을 꿀 수 있도록 학비를 모은 소녀의 이야기가 그 속에 들어있다.
쓰레즈는 단순히 개발도상국 여성들의 노동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세일즈 과정에서 큰 주얼리 시장이 있는 미국에서 비슷한 가치를 공유하는 여성들을 파트너로 모집하여 온라인 부티크나 쇼케이스를 운영하도록 한다.
공예기술을 가진 여성들은 공예기술을 통한 비즈니스를, 세일즈 능력을 가진 여성들은 세일즈를 통한 비즈니스를 운영하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밸류체인에 합류하는 것이다. 하나의 서플라이 체인으로서 주얼리를 디자인하고 만드는 개발도상국 여성들과 그 주얼리를 마케팅하고 판매하는 미국 여성들이 하나의 커뮤니티로 거듭나는 유대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쓰레즈에는 비즈니스를 운영하면서 경제적 이윤을 내고 소비 가능한 자산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무력감에 빠져 바닥을 치던 자존감을 되찾거나, 자신을 옭아매던 전통적인 여성상과 한계를 극복했다는 후기들이 존재한다.
자본주의 질서 하에서는 경제적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 결국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필수적인 요소일 수밖에 없다. 현시대에서 폭력과 사회적 억압 속에서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갖는 방법은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 연대하는 것이다. 연대(solidarity)는 직접 면대면으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시장을 통해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나의 경제적 능력으로 얻은 재화를, 같은 가치를 나누는 생산자들이 생산한 제품에 소비하는 것도 시장경제 속에서 연대의 한 방편이 되지 않을까.
코너스톤은 누군가의 소중한 날, 그 날의 아름다움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 수만 시간을 노력한 사람들의 노고가 합리적으로 소비될 수 있도록 돕는 주얼리 플랫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