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끼 든든하고 따뜻한 파니니에 반했어
난 영국에 살면서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이 스트레스였다. 대학원 재학 시절 남들 다 먹는다는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난 이렇게 생각했었다. 어쩜 이리도 맛 없는 샌드위치를 5000원이나 넘는 돈을 내고 먹어야 하나... 차라리 김밥천국에서 이 돈으로 김밥과 쫄면을 먹으리라... 이토록 나를 실망시켰던 영국의 맛없는 차가운 샌드위치 이야기는 다음 편으로 넘기겠다. 내 마음까지 차갑게 만든 샌드위치와는 달리....
힘들고 고된 영국 대학원 시절, 나를 잠시나마 행복하게 해 주었던 점심 메뉴가 있었다. 현지인들의 인기 점심 메뉴로 간단하게 한 끼 식사 대용으로 만점인 맛있고 든든한 구운 샌드위치(Toasted Sandwich)... 바로 "파니니(panini)"이다. 국내에서도 몇 년 전부터 브런치 레스토랑이나 카페 등지에서 파니니를 판매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여자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브런치 메뉴이다.
나는 2005년 영국에서 파니니(Panini)라는 존재를 처음 안 것이다. 파니니는 학교 카페테리아, 펍, 카페에서 학생들에게 인기 만점인 점심 메뉴이다. 이탈리아식 샌드위치로 다양한 종류의 빵(치아바타, 로제타, 바게트 등)으로 만들 수 있으며, 이탈리아어로는 파니노(Panino)라 불린다. 주문 시 취향에 맞게 토핑을 선택하면, 반으로 가른 빵 안에 토핑을 넣어 파니니를 압축 기계에 넣어 노릇노릇하게 구워 제공된다. 특히 듬뿍 넣은 잘게 갈린 치즈가 녹아서 흐르는 파니니는 어찌나 맛있던지... 마치 피자 치즈처럼... 쭈우욱~~ 늘어나는 치이~~~즈
대학원 오전 수업을 마치고 같은 과 친구와의 점심 약속을 위해 학교 카페테리아에 갔다. 그 친구는 아주 자연스럽게 파니니라는 메뉴를 주문하는 것이 아닌가? 난 파니니의 모양새를 보자마자 '나도 먹어봐야겠다'라는 호기심이 생겼다. 처음 먹어 본 햄, 치즈 파니니.... 한 입 베어 먹는 순간.. 홀딱 반해버렸다.
너 왜 이리 맛있는 거니? 영국에 이런 게 있었네...
딱 내 스타일이야~~
햄, 치즈 파니니의 맛은 완전 중독 그 자체였다. 그동안 질려버린 마트용 차가운 샌드위치만 먹다 내 입맛에 딱 맞는 그것도 아주 따뜻한 샌드위치를 먹게 되다니.... 내가 신랑에게 파니니에 대해 쓴다고 했더니...
너가 그렇게 맛있다고 입에 침이 바르게 말했던 파니니??
신랑이 아직까지 기억을 할 정도라면 내가 무척 파니니를 사랑했나 보다. 실제로 난 몇 주 동안은 점심 시간마다 부리나케 카페테리아로 가서 파니니와 커피를 먹었던 것 같다. 그렇게 좋아하던 파니니를 내가 직접 만드는 기회가 왔다. 영국 사람들과 직접 만나기 위해 자원봉사를 신청하고 카페에서 5월부터 일을 하게 되었다. 부엌 일이 서투른데다가 주문 시에는 손님들의 말을 잘 못 알아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 아닌가 걱정마저 들긴 했다. 하지만 걱정마시라... 매 번 친절하게 알려주시는 영국 아줌마들이 있기에 난 금방 적응 완료!
몇 달 후 나는 주문도 척척 받고 (물론 사투리 억양이 센 분들은 패스), 음식들도 완벽하게 만들 수 있었다. 사실 그다지 어려운 것은 없다는게 함정~ 그럼 카페에서 내가 직접 만들었던 파니니 만드는 법을 한 번 보시라.
빵은 칼로 반으로 갈라서 안 쪽에 버터를 듬뿍 발라 준다. 약 2~3개 정도의 원하는 토핑들을 빵 안에 넣는다.
보통 토핑(빵 안에 들어가는 재료)은 치즈, 햄, 마요네즈로 버무린 참치, 토마토, 파, 양파, 칠리(고추) 등 다양한 재료가 들어 간다. 카페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파니니 토핑은 뭐니 뭐니 해도 "햄 + 치즈 + 토마토 + 참치"이다.
파니니 프레스로 꾸욱~ 눌러 주고 앞 뒤를 번갈아 뒤집어 주면서 약 몇 분 정도 더 눌러 준다. (빵의 종류와 토핑 양에 따라 조리 시간은 상이하다) 뜨거운 파니니는 칼로 반을 나누면 굳이 나이프를 쓰지 않아도 먹기 편하다.
파니니에 넣는 치즈는 그냥 네모난 것보다는 "곱게 갈린 (grated) 치즈"를 넣어야 훨씬 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바삭한 빵을 원하면 파니니 프레스를 이용해 좀 더 길게 눌러주면 된다.
재미있는 표현으로, 파니니 종류 중에 Tuna Melt 가 있다. 이는 참치와 치즈가 흘러 나올 정도로 풍성하게 들어간 파니니이다. 파니니 안에 버터를 넓게 펴 바르고, 그 안에 마요네즈와 범벅이 된 참치를 발라 준다. 그 안에 송송 자른 파를 펴 바른 참치 안에 콕콕 박아주고, 잘게 간 치즈를 아낌없이 뿌려라. 앞 뒤를 뒤집어 가면서 바싹하게 구우면 치즈가 폭포수처럼 밖으로 막 흘러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파니니 그 이상의 맛을 느낄 수 있는 프랑스식 구운 크로와상(Toasted Croissant) 이 있다. 물론 영국 음식은 아니지만, 현지인들이 먹는 브런치 메뉴 중 하나여서 소개해 보겠다.
크로와상을 굽다니??
일단 만드는 법은 위의 파니니와 별반 다를게 없다. 크로와상을 반으로 가르고 토핑을 넣어 파니니 프레스에 넣고 구우면 끝~ 단, 다른 점은 크로와상 자체에 기름이 많이 함유되어 있으므로 버터를 바르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완전 오일 리 한 맛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버터를 발라도 상관은 없다.
빵이 달라지니 토핑과 조리법이 같아도 맛은 새롭다.
나에게 파니니는 힘든 대학원 초창기 시절을 나와 함께해준 든든한 추억의 음식이다. 그런데 귀국 후에는 좀처럼 파니니를 먹지 않게 된다. 영국에서 그렇게 많이 먹었는데 굳이 한국에서 와서까지 파니니를 먹어야 하나? 얼마나 맛있는 음식들이 많은데... 아무리 맛있었어도 영국에서 먹은 파니니로 족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