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형태의 악도 남기지 말고 없애라
1. 묵상본문
열왕기상 18장
2. 오늘의 주제
소수라도 진리를 붙드는 용기
3. 마음에 남는 말씀
21(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22(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
24(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하니라)
30(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37(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40(엘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거기서 죽이니라)
4. 묵상 요약
속으로 갈등할 때가 있다. 이게 하나님의 뜻이신가 고민할 때가 있고,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기 위해 인간적인 방법을 찾는 속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오늘 본문의 백성처럼 둘 사이에서 갈등한다. 옳은 길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인간적으로 좋아보이는 길을 따를 것인가. 엘리야는 아합 왕의 말에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고, 수많은 바알의 선지자(우상을 따르는 자)들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다.
그는 옳은 길을 걸어가는 자였기에, 그리고 하나님을 진실로 믿었기에, 담대할 수 있었다. 바알 선지자들은 물 한 방울 젖지 않은 제단을 돌며, 창과 칼로 자신의 몸을 찌르며, 피를 흘리면서 바알이 제단에 불을 붙이길 바란다. 하지만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한편, 엘리야는 단순히 불이 붙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가능성이 없어보이는 상황에서 불을 내리실 하나님을 보인다. 제단에 흘러넘치도록 물을 붓고, 하나님께 단순히 불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백성의 마음이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를 올린다.
그리고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제단을 다 태워버린다. 참 인상적이었던 것은 엘리야가 아합 왕에게도 옳은 말을 하고, 수많은 바알 선지자 앞에서도 두렵지 않고, 바알과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갈등하는 백성들 앞에서도 담대히 말을 하였다. 또한, 그는 제단을 수축(修築)하였다. 제단을 고쳐 지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세워지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 그 말씀이 삶에서 드러나야 한다. 단순히 말씀을 아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이 성도이기 때문이다. 잔인하게 보이지만, 오늘 엘리야는 마지막에 거짓 선지자들을 하나도 남김 없이 쳐버린다. 그것이 옳은 길이었기에.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하실 때 말씀하셨다. 앞으로 거짓된 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팔며, 미혹할 것이라고. 정말로 지금도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예수님이 부활 후 승천하시고, 사도들이 거짓된 복음을 전하는 자들과 싸웠던 것처럼 지금도 거짓된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미혹하는 악인들이 넘쳐난다.
이는 단순히 신앙과 비신앙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부자의 돈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자는 엉터리 이분법, 서구 문화의 기초인 책임감 있는 개인, 전통적인 가족과 공동체를 ‘자유’라는 이름으로 파괴하는 허무주의의 영과 같이 수많은 악한 사상이 이 시대를 잠식하고 있다.
그래서 싸워야 한다.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거짓된 자를 잿가루 조차 남기지 않고 벌하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으며 싸워야 한다. 그리고 우리를 사용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백성들은 그 사이에서 갈등한다. 국민은 그 사이에서 갈등한다. 왜냐하면 모르니까. 그리고 불편한 진실을 알고 싶지 않으니까.
진정으로 자유로운 인간. 모든 죄에서 해방된 인간으로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개돼지 취급을 받아가며, 배급을 받아먹으면 전부인 짐승으로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그 끝에 영원한 심판으로 살아갈 것인가.
꼭 하나님의 어떤 기적이 있으면 믿겠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은 변명이다. 그리고 그 날은 가깝다. 그래서 믿어야 한다. 믿음으로 이 영적 싸움을 오늘도 싸워나가야 한다.
5. 적용과 기도
의로우신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진리이신 하나님을 붙잡는 용기에 대해 묵상하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아버지, 악인들이 백성의 눈과 귀를 막고, 입에 값싼 사료를 먹이며, 미혹하는 이 땅의 현실에 안타깝습니다. 주님,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지, 제 마음보다 훨씬 아프시고, 악인을 멸하고 싶으신 마음이 넘치실 것을 압니다. 그래서 이 말씀으로 나를 일깨워주신 거겠죠.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참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왔습니다. 이 악한 현실에, 선하신 하나님, 미쁘신 하나님을 잊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 땅의 것을 쫓고, 또 후회하고,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합니다.
하지만 의로우신 주님께서는 그런 나를 불쌍히 여겨 의로운 지체를 허락하시고, 진리를 쫓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마음을 다시 부어주시니 감사합니다. 부디 이 은혜를 잊지 않고, 날마다 기쁨으로 걸어갈 수 있게 하소서.
어둔 밤 지나고 동트는 날을 기다립니다. 단지 이 나라뿐만 아니라,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을 기다립니다. 자주 찬양하는 것처럼 죄 많은 이 세상을 내 집으로 생각하지 않고, 내 모든 보화를 저 하늘에 쌓아두게 하소서. 지나가는 모르는 이에게도 선을 행하고, 악인에게도 긍휼한 마음으로 회개하도록 권하고, 받기 보다는 먼저 베푸는 마음을 허락하소서.
그리고 하나의 악도 내 마음에 남김 없이 제하여 주소서. 어떤 모양의 악이라도 버리라고 하신 그 말씀을 기억하며, 악인의 거짓된 말에 속지 않고, 선하신 주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선포하게 하소서. 말씀이 거짓된 공산주의의 영과 허무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의 영을 물리치고, 그들을 하나도 남김 없이 처단하게 하소서.
말씀의 검으로 그 악의 영을 베어 물리치고,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이 이 땅에 바로서는 것을 눈으로 보길 바랍니다. 그 날을 기다리며, 기쁨으로 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케 하소서. 나의 인도자,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6. 느낀 점과 질문
하나님의 말씀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 번 느끼는 말씀이었다. 정말 오랫동안 말씀에 대한 감동이 있음에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지만, 말씀으로 눈시울이 축축해지는 시간을 오랜만에 느꼈다.
제단을 바로 세우는 것, 그것이 엘리야를 통해 하나님이 보이시는 기적이었다. 불이 절대 붙지 않을 것 같은 제단에 불덩이를 떨어뜨려 하나도 남김 없이 태우시는 하나님. 인간의 지적 능력을 넘으시는 그분답다. 그래서 감사하다.
이 묵상을 시작하고, 하루하루 쌓이는 말씀들이 나에게 큰 기억을 남긴다. 큰 은혜를 준다. 피곤할 때도 있다. 왜 이걸 진작에 안했나 싶기도 하고, 또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은지 스스로 돌아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이 말씀 주시는데, 또 뭐가 더 필요한가?’ 싶다. 더 바랄 게 없다. 잠들고 일어날 수 있는 은혜, 하나님을 앎이라는 은혜, 그리고 오늘 말씀을 통해 기쁨을 누리는 은혜. 그것이면 좋지 않은가?
부디 엘리야처럼 선포할 수 있으면 한다. 악에 맞서 빛의 사자로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