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uiux디자이너는 행뽁해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 같습니다.
봄이 오고 있네요. 저는 봄이라는 계절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꽃이 많이 펴서 귀여운 호박벌들이 배부른 계절이라고 생각하면 꽤 낭만적인 것 같습니다.
고등학생 때 영어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저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기억에 남습니다.
인상도 성격도 곰돌이처럼 온화하고, 푸근하셨던 선생님이셔서 세상 예쁜 것들만 알고 계실 것 같은 분이셨는데 어느 날 수업시간에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세상에 힘들고, 고통스러운 게 80프로고 행복하고 좋은 게 20프로인데 인간은 그 20프로 때문에 살아가는 것 같애."
당시 저는 그럼 내 인생이 힘듦과 고통으로 가득해도, 그래도 날 버티게 해 주는 20프로가 뭔지 생각해 봤었습니다. 어렸던 저에게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20대가 되어서도 그 20프로를 찾아내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이제는 저에게 그런 의미를 갖는 몇 가지를 찾아냈는데요. 그중 하나는 단연코 지금 하고 있는 소중한 제 일입니다. 저는 당시 영어선생님의 그 말씀이 인생을 관통하는 말이라 생각했고 일, 즉 생계활동이 인간의 인생의 가장 큰 부분이기 때문에 직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생명을 가졌다는 건 그렇잖아요. 살아가기 위해 생계활동에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마련이죠. 남의 돈 벌기란 쉽지 않은 게 이치이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어도 나에게 긍정적인 20프로가 있다면 출근할 수 있는 거죠. 버틸 수 있는 거죠. 누군가에겐 일은 그냥 일일 뿐이고, 번 돈으로 여행을 다닌다던가 하는 식으로 20프로를 다른 곳에서 채우기도 하지만, 저는 그게 안되더라고요.
직업에서 그 20프로가 누군가에겐 만족할만한 급여가 될 수도, 너무 친하고 잘 맞는 동료가 될 수도, 정말 적성에 꼭 맞는 직무가 될 수도 있겠죠. 저 같은 경우엔 신입이라 잘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제가 너무 좋아하는 일을 찾게 되어 일하는 게 즐거워졌습니다. 이게 저는 너무 감사해요. 정말 제가 꿈꾸던 상황이거든요.
저는 무작정 공무원이 된다거나 남들이 우러러보는 직업 그런 거엔 딱히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게 무슨 일이든 나에게 잘 맞고, 내가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그런 일을 찾고 싶었어요. 세상에 지나치게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일만 아니라면. 저의 20대 전부는 이 욕망(?)을 향해 방황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현재 이쪽 분야 신입 단기 계약직으로 uiux 디자인 업무를 하고 있는데요.
재택근무 중이라 더 편할 수도 있겠지만 어째 '나는 지금 일을 하고 있다', '아 빨리 끝나고 쉬고 싶다'는 감각이 예전 직장 다닐 때보다 거의 뭐 없는 수준이 되었어요.
20프로의 행복을 찾은 게 아니라 80프로의 행복을 찾은 것 같단 거죠. 피그마로 화면 그리는 시간들이 그냥 너무 재밌고요, 어떻게 하면 더 '읽히는 디자인'을 그려낼 수 있을까, 어떻게 사용자 여정을 설계하면 유저들이 더 편하게 느낄까, 이 플랫폼을 다시 찾아줄까 고민하는 시간들이 너무 좋아요. 이 시간들 자체를 제가 너무 사랑해요.
물론 속상한 순간들도 있긴 합니다. 근데 그건 그냥 제가 잘하고 싶은 마음에 나오는 것들이에요.
화면 만들어놓고 뭔가 마음에 안 들면 그게 기분이 안 좋더라고요. 계속 거슬려요. 그래서 밤에 혼자 다시 생각해요. 근무 시간 끝나면 종종 유튜브 틀어놓고 마디아님 영상 같은 거 보면서 눈으로 공부하게 되더라고요.
잘하고 싶은데 신입이라 그게 안 되는 걸 아니까 베테랑 영상을 계속 보는 거죠.
요즘 업무 이야기를 해보자면, 최근 한 달간 저는 제가 맡은 부분들 웹디자인을 그려내다가 이제 앱(모바일) 디자인을 시작했습니다. 앱 디자인을 하고 있으면 진짜 저는 그런 생각 밖에 안 들어요. "난 재미있는 놀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게 돈을 버는 일이라니. 진짜 긍정적으로 충격이다;;" 그리고 요즘엔 웹보다 앱 사용성에 다들 익숙하듯이 저도 역시 앱에 익숙한지라 웹 디자인을 먼저 했지만 앱 디자인을 하면서 제가 기존에 해놓은 웹디자인 사용자 여정에 구멍이 뭔지 역으로 보이기도 하더라고요.
요즘 AI 툴로 피그마에서도 초기 와이어프레임 생성이나 1차 시안들도 많이 뽑아내잖습니까.
저도 직접 디자인하다가 ai 툴로 1차 디자인들도 뽑아보았는데요. 근데 제 생각엔 100% 만족할만한 디자인은 아닌 것 같고 그래도 수정은 역시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래 화면은 특정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고객 요청 관리 상황을 가정하여 재구성한 예시입니다.)
예를 들어, 실제 AI 툴로 이런 시안들을 뽑아내는 것은 가능합니다.
오토레이아웃도 잘 걸려있고, 양 옆 16px 패딩 등등 아주 잘 되어있어요.
기능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 거죠. 하지만 상태, 색상, 정보가 모두 강조되어 사용자가 봤을 때 어디를
먼저 봐야 할지 알기 어렵다는 겁니다.
다 배지화 시켜버리고, 각종 색을 넣어버리니 정보는 안 보이고 화려해지기만 한 겁니다.
모든 요소가 중요해 보이는 순간, 결국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게 되는 거죠.
사용자는 한 번에 하나의 정보만 우선적으로 인지하는데, 이 화면에서는 모든 요소가 동시에 주의를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AI 생성 시안을 토대로 ‘덜어내기’ 디자인을 하였습니다.
상태 표현을 단순화하고, 색상 사용을 최소화하여 눈에 들어오는 디자인을 하고자 했습니다.
과거 산업 혁명시대를 지나 요즘 같이 'AI 혁명'이라고도 불리는 시대에 분명 디자인에서도 AI는 좋은 출발점을 만들어주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효율이 극대화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걸 어디까지 가져가고, 어디서 덜어낼지 결정하는 건 여전히 디자이너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생각을 하고 만들어내는 이 일이 너무 좋습니다.
그냥 AI에만 의지하는 건 재미가 없어요. 그걸 토대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가져갈지 또 생각해 보는 게 제 일인 것 같고 저는 그 순간들이 재미있습니다.
지금 업무를 하면서도 좋은 분들과 작업하며 많이 배우고 있는데요.
앞으로 조금씩 더 성장하며 좋은 UIUX디자이너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