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의 독후감을 가장한 끄적끄적

결국은 이 모든 게 다 '사랑'을 위한 길 아닐까요

by 김세이

2025년을 되돌아보면 '나'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고 알아가는 한 해를 보냈던 듯 싶다.

그리고 맞이한 2026년에 거창한 새해 목표랄 건 없지만, 올해부터는 주도적으로 내 취향의 책을 찾아 읽는 시간을 틈틈이 가지기로 하였다. 이유라고 하면.. 눈앞에 닥친 현실만 마주하며 살다 보니 '생각'을 잃어버리는 일이 너무 잦아서이다. 삶은 유한하고, 내가 언제까지 살아있을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지만 난 꽤 이것저것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현실에 닥친 일들만 마주하다 보면 그걸 잃어버리기가 너무 쉽다는 거다.

생각이 죽어버린 채 기계적으로 살고 있으면 그건 재미가 없잖아. 취향이 확실한 나니까, 내가 읽고 싶은 책만 골라서 읽고 감상문을 남겨보자고. 이걸 감상문이라 할 수 있을까 싶지만 그냥 내가 그렇게 정함. 내 브런치니까.


연말부터 시작해서 1월 초까지 단 숨에 읽어버린 첫 번째 책은 '고흐의 편지'.

나는 고흐를 정말 정말 좋아한다. 예술을 전공으로 배운 사람도, 거기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도 아닌지라 고흐의 작품이 현대 서양예술사에 얼마나 아름다운 작품인지 설명할 순 없다. 게다가 사실 내가 좀 더 사랑하는 부분은 고흐의 작품이라기보다 고흐라는 '사람'이다. 고흐는 '생명 냄새'가 나는 느낌이다. '사람 냄새'라고 썼다가 방금 지웠음. 사람은 꽤나 추악하지 않은가? 그래서 생명 냄새로 바꿨다. 생명에는 지구도, 강아지도, 고양이도 포함되니까. 내가 연말과 연초에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고흐에게서 느껴지는 외로움에 공명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 모르겠지만 외로움을 정말 잘 타는 성격인데 이게 사람과 대화를 해서는 풀리지가 않는다는 거다. 그래서 공명하기 위해 읽었다. 그리고 혼자 그림을 그리며 수많은 여러 자신의 모습들과 싸웠을 고흐를 떠올리며 울었다. 진짜 F감성 미쳤다. 얼마나 외로웠겠어? 좋아하는 일을 하고도 가족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아버지와 반복적으로 갈등해야만 했던 현실이. 그림으로 보란 듯이 성공해서 테오에게 떳떳한 형이 되고 싶었겠지만 그러지 못한 현실이. 정신병으로 입원한 채 자신을 마주해야만 했던 현실이. 고갱처럼 애정을 주었던 인물과 결국 갈등이 있던 채로 끝난 현실이.


고흐라는 사람의 진짜 멋진 점은 바로 그 숱한 외로움 속에서도 자신만의 세계를 그림으로 구축했다는 점이다. 성격이 예민하고 외로움을 잘 느끼는 사람은 어떨 때는 그 감정에 꼼짝 못 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이 있기도 하니까. 고흐의 편지는 그래서 사실 가볍게 읽기 좋은 책 같다. 그냥 고흐의 감정을 느끼면서 읽어 내려가면 되니까. 울고 싶으면 울고, 공감이 가면 공감이 가는 대로. 진짜 읽는 순간순간 그냥 느끼면서 읽어서 그런가 딱히 무슨 할 말이 없다. 읽으면서 노트에 적어뒀던 고흐의 편지 중 글귀가 딱 하나 있는데, 이것조차 한 달이 지난 지금 다시 보니 왜 적었지? 싶긴 하다. "사랑이 있어야 할 곳에 파멸만 있는듯해서 넌더리가 난다. 이렇게 소리치고 싶다. 신이시여,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합니까!" 아마 작품이 팔리고, 사랑받는 자신을 기다리는 일이 너무 지친 고흐의 심리 아니었을까.


고흐의 편지에서 고흐의 모네에 대한 예술적 존경심도 엿볼 수 있는데 그것조차 멋지고 고흐답다. 세상의 화려한 것들에는 관심 없고 자연을 통해 예술을 말하는 고흐가, 농부 같은 어찌 보면 평범한 인물들을 자신의 작품에 등장시키는 것도 너무 생명 냄새나고 멋지다. 농부의 손은 땅을 닮아야 한다지?

(insta. 이란 출신 작가 @alirezakarimimoghadam)



그리고 다음으로 선택한 책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진짜 너무 유명한 책이다. 내가 헤세의 책을 처음 접한 건 3~4년 전쯤 심리상담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독서모임에서였다. 그때 주제가 책 '데미안'이어서 데미안을 읽고 토론하고, 그 책에 대해 배웠던 기억이 있다.

그건 진짜 돈 주고도 못 바꾸는 소중한 경험이었는데, 그 뒤로 내 인생 책을 항상 '데미안'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이제 싯다르타도 추가하고 싶다.


싯다르타는 헤세가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그 치료를 받은 1년 후 출간한 소설인데 데미안이 그러하듯 싯다르타도 주인공인 싯다르타가 진정한 자아, 초월 자아를 만나게 되는 영적 성장을 담은 소설이다. 데미안의 결말에서 싱클레어가 크로머와 데미안을 만나 혼란의 시기를 겪지만 결국 에바부인(진정한 자아)을 만나게 되는 것처럼, 싯다르타도 유복한 바라문 가정에서 태어나 모두에게 촉망과 사랑받는 삶, 그 모든 걸 떠나 사문 생활을 하는 삶, 또 속세에 찌들어 탐욕에 젖은 삶, 남녀 간의 사랑에 빠져들고 아버지가 되는 삶, 바주데바와 함께한 뱃사공의 삶 등 여러 가지 모습의 삶을 겪은 후에 마침내 '아트만(개인의 참자아)'으로 존재하는 상태에 이르는 내용이다.


챗지피티에 싯다르타의 교훈에 대해 물으니 핵심 교훈 중 하나가 '지금 이 순간이 완전하다'는 거란다. 언젠가 괜찮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 먼 미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 과정이고 곧 완성이라는 것. 뭔가 뭉클해졌다. 나는 과거 고통스러운 순간에, 그 언제인지도 모를 미래를 항상 바라봤던 것 같다. "나중엔 이 모든 게 괜찮아질까? 그렇게 되겠지? 버티면 나아질까요". 근데 다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눈앞에, 내 안에 있는 걸까? 긍정적인 의문이 생긴 것 같았다. 싯다르타가 소설의 마지막에서 아트만의 상태에 이르렀을 때, 다시 친구인 고빈다를 오랜만에 조우하여 그에게 했던 이야기들은 정말이지 저장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이 세계는 매 순간순간 완성된 상태에 있으며, 온갖 죄업은 이미 그 자체 내에 자비를 지니고 있으며, 작은 어린애들은 모두 자기 내면에 이미 백발의 노인을 지니고 있으며, 젖먹이도 모두 자기 내면에 죽음을 지니고 있으며, 죽어가는 사람도 모두 자기 내면에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아무도 다른 사람에 대하여 그 사람이 스스로의 인생행로에서 얼마만큼 나아간 경지에 있는가를 감히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는 없네."


"깊은 명상에 잠긴 상태에서는 시간을 지양할 수가 있으며, 과거에 존재하였던, 현재 존재하고 있는, 그리고 미래에 존재할 모든 생명을 동시적인 것으로 볼 수가 있어. 그면 모든 것이 선하고, 모든 것이 완전하고, 모든 것이 바라문이야. 따라서 나에게는 존재하고 있는 것은 선하게 보이며, 나에게는 죽음이나 삶이 다 같게 보이며, 죄악이나 신성함이 똑같이, 지혜로움이나 어리석음이 똑같이 보여."


"나는 나 자신의 육신의 경험과 나 자신의 영혼의 경험을 통하여 이 세상을 혐오하는 일을 그만두는 법을 배우기 위하여, 이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하여, 이 세상을 이제 더 이상 내가 소망하는 그 어떤 세상, 내가 상상하고 있는 그 어떤 세상,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해 낸 일종의 완벽한 상태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놔둔 채 그 세상 자체를 사랑하기 위하여 그리고 기꺼이 그 세상의 일원이 되기 위하여, 내가 죄악을 매우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내가 관능적 쾌락, 재물에 대한 욕심, 허영심을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그리고 가장 수치스러운 절망 상태도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모든 돌멩이는 하나하나가 제각기 독특한 것이며, 제각기 나름대로의 방식대로 옴을 읊조리고 있으니, 모든 돌멩이 하나하나가 바라문인 셈이지. 그렇지만 이와 동시에 꼭 마찬가지로 그 돌멩이는 돌멩이이기도 하며, 기름 같은 느낌을 주거나 비누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지.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내 마음에 들어."


"사랑이라는 것 말일세, 고빈다, 그 사랑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으로 여겨져. 이 세상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일, 이 세상을 설명하는 일, 이 세상을 경멸하는 일은 아마도 위대한 사상가가 할 일이겠지. 그러나 나에게는,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것, 이 세상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하는 마음과 외경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것, 오직 이것만이 중요할 뿐이야."


친구인 고빈다는 싯다르타의 깨달음과 생각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사랑에 이끌려 싯다르타에게 몸을 숙여 절을 올렸다는 부분까지 완벽하게 좋았다. 1년 넘게 연락하고 있는 펜팔 친구 예린이에게 헤세 책 읽고 있다고 이야기했었는데 그녀는 싯다르타를 이미 읽었고, 데미안을 아직 안 읽었다고 해서, 데미안 꼭 읽어야 한다고 했더니 오늘 보내준 귀여운 사진 한 장을 첨부하며 글을 끝마치려고 한다.


2월이 될지 3월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헤세의 다른 책들도 꼭 읽어야지.. 싶다.

인생의 목표는 정말 이거 두 개면 되지 않을까. 나를 알아가는 거랑, 세상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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