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창가에 기대어

by 또바기

아침 버스에 오르면 나는 늘 창가 쪽 자리를 찾는다. 창가에 앉아야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습관이 생겼다. 사람들 사이에 낀 채 서 있는 것보다, 창문에 기대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간이 나를 차분하게 만든다. 비좁은 좌석과 흔들림 속에서도 창가에 머무는 순간은 작은 여유처럼 다가온다. 창문은 단순한 유리창이 아니라 나와 세상을 연결해 주는 스크린 같다.

버스가 출발하면 풍경이 천천히, 때로는 빠르게 흘러간다. 정류장을 스쳐 지나며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 가게 앞을 정리하는 상인의 손길, 횡단보도를 서둘러 건너는 학생들. 모두가 자기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 창문 너머로 전해진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나의 하루는 특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의미 없지도 않다. 버스 창문은 그런 생각을 일깨우는 창구다.

창가에 앉으면 빛의 변화도 선명하게 느껴진다. 흐린 날이면 창문에 스치는 빗방울이 작은 음악처럼 들리고, 맑은 날이면 쏟아지는 햇살이 얼굴을 따뜻하게 감싼다. 계절은 창문 너머로 가장 먼저 다가온다. 봄에는 벚꽃이 흩날리고, 여름에는 짙은 나무 그림자가 도로 위에 드리운다. 가을에는 낙엽이 바람에 흩날리며 창가를 스치고, 겨울에는 서리 낀 유리창에 하얀 숨결이 맺힌다. 창가는 늘 계절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여준다.

버스 창가에 기대어 있을 때 나는 종종 나 자신을 돌아본다. 어제의 일들을 곱씹기도 하고,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기도 한다.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은 평소보다 차분해 보인다. 바쁜 걸음 속에서는 보지 못한 나의 표정이 창문에 고스란히 담긴다. 그 얼굴은 조금 피곤해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기대에 차 있기도 하다. 나는 그 얼굴을 바라보며 하루를 어떻게 살아갈지 조용히 다짐한다.

창가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다. 버스가 급정거하거나 큰길을 돌 때 몸이 기울어지듯, 내 마음도 종종 균형을 잃는다. 하지만 금세 다시 바로잡히는 것처럼, 삶도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잠시 휘청거려도 결국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창문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그렇게 말해주는 듯하다. 흔들림은 끝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을.

나는 창가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는 걸 좋아한다. 옆 좌석에 앉은 사람이 책을 읽는 모습,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은 모습, 간간이 창밖을 보며 미소 짓는 모습. 그 순간들은 모두 짧지만, 삶의 단면을 보여준다. 우리 모두는 다른 목적지를 향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같은 버스 안에 있다. 그 사실이 묘한 동질감을 만들어낸다. 서로를 알지 못해도 함께 움직이는 시간, 그것만으로도 연결감을 느낀다.

버스 창가에 기대어 있으면 가끔은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익숙한 정류장을 지나칠 때면, 그냥 오늘은 다른 곳에서 내리고 싶다는 충동이 생긴다. 하지만 결국 나는 늘 같은 정류장에서 내린다. 책임과 약속이 나를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잠깐의 상상만으로도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다. 언젠가는 정말로 낯선 정류장에서 내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창문은 늘 그런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창가는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작은 멈춤을 준다. 눈앞에서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보는 동안만큼은, 나는 어제와 내일이 아니라 지금에 머물 수 있다. 버스가 흔들려도, 사람들 사이에서 복잡해도, 창가에 기대어 있으면 마음이 한결 고요해진다. 그것은 어쩌면 내가 하루를 버텨내는 작은 비밀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버스 창가에 앉아 세상을 바라본다. 창문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 속에서 내 마음도 함께 흐른다. 잠시 머물다 흘러가는 풍경처럼, 하루도 결국 그렇게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일은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일이다. 버스 창가에 기대어 있는 시간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나의 하루를 정리하는 의식 같은 것이다.

나는 내일도 같은 자리에 앉아 창문을 바라볼 것이다. 다시 반복될 하루 속에서도 창가는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줄 것이다. 그 이야기를 바라보며 나는 또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버스 창가에 기대어 보낸 시간들은 그렇게 내 삶에 작은 문장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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