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싶은 날들이 있다. 아프고, 부끄럽고, 후회되는 날들. 그날들을 지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잊으려 할수록 더 선명해진다. 잊고 싶은 기억일수록 더 자주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그 기억이 아직 내 안에서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스물여섯 살, 나는 큰 실수를 했다. 중요한 자리에서 말을 잘못했고, 모두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지만, 긴장한 나머지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말이 꼬이고, 자료가 엉키고,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 순간이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발표가 끝나고, 사람들은 어색하게 박수를 쳤다. 동정의 박수였다. 상사는 "수고했어"라고 짧게 말했지만, 눈빛은 실망으로 가득했다. 나는 자리로 돌아와 앉았지만, 온몸이 떨렸다. 부끄러움, 수치심, 자책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날 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왜 그랬을까. 왜 조심하지 못했을까. 왜 더 준비하지 않았을까. 질문은 끝이 없었고, 대답은 없었다. 그저 내가 부족했다는 사실만 남았다. 나는 그날 하루를 지우고 싶었다. 없었던 일로 만들고 싶었다.
그 기억은 몇 년이 지나도 생생했다. 자다가도, 일하다가도, 문득 그날이 생각났다. 그러면 온몸이 움츠러들었다. 부끄러움이 다시 밀려왔다. 나는 그 기억에 갇혀 살았다. 새로운 도전을 할 때마다, 그날이 떠올라 주저하게 되었다. "또 실패하면 어떡하지?" 그 기억이 나를 가뒀다.
잊고 싶었다. 그날을, 그 순간을, 그 감정을. 하지만 잊으려 할수록, 그 기억은 더 자주 떠올랐다. 마치 잊지 말라고 하는 것처럼. 억지로 지우려 하면 할수록, 더 깊이 새겨지는 것 같았다. 나는 방법을 바꿔야 했다.
어느 날, 나는 그 기억을 마주하기로 했다. 잊으려 하지 않고, 그냥 바라보기로. 노트를 꺼내 그날의 일을 자세히 적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때 나는 무엇을 느꼈는지. 쓰는 동안 눈물이 났지만, 계속 썼다.
다 쓰고 나니,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 기억이 조금 흐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여전히 아프지만, 예전만큼 날카롭지는 않았다. 마주하니, 오히려 힘이 약해졌다. 도망치지 않고 직면하니, 그 기억은 더 이상 괴물이 아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날의 실수는 나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그날 나는 실패했지만, 그 후로 많은 것을 배웠다. 더 철저히 준비하게 되었고, 더 신중하게 행동하게 되었다. 그날의 실패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잊고 싶은 날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날들의 의미가 변한다. 단순히 아픈 기억이 아니라, 나를 성장시킨 순간으로. 부끄러운 과거가 아니라, 배움의 기회로. 잊고 싶었던 날들이 결국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그날들은 나를 놓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