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도착한 사무실의 공기

by 또바기

사무실에 평소보다 조금 일찍 도착하는 날이 있다. 건물 로비는 아직 한산하고, 엘리베이터 안에도 혼자 서 있을 때가 많다. 출근 시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의 사무실은 마치 다른 공간처럼 느껴진다. 늘 시끌벅적하던 자리와 복도는 고요하게 비어 있고, 책상 위의 물건들도 아직 움직이지 않은 채 잠들어 있는 것 같다. 나는 그 정적 속에 앉아 있으면, 마치 내가 사무실의 첫 번째 주인처럼 하루를 열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사무실의 공기는 일찍 도착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결이 있다. 누군가 앉았다 간 흔적도 없고, 키보드 소리나 전화벨 소리도 없는 공간은 묘한 긴장감 대신 차분함을 준다. 어제 남겨둔 서류 위로 아침 햇살이 비스듬히 내려앉고, 컴퓨터 본체의 전원 등이 조용히 깜빡인다. 아주 사소한 장면인데도, 그 순간만큼은 하루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준비된 무대에 내가 가장 먼저 들어선 배우가 된 기분이라고 할까.

나는 가끔 일부러 더 일찍 사무실에 도착하려 한다. 남들보다 앞서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이 아니라, 그 고요한 공기를 잠시라도 누리고 싶어서다. 아무도 없는 자리에서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한다. 이메일을 열기 전의 짧은 여유, 아직 울리지 않은 전화기 옆에서 느끼는 고요, 그 모든 것들이 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그 시간이 하루의 무게를 견디게 해주는 작은 버팀목이 된다.

일찍 도착한 사무실에서 나는 나 자신과 대화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말소리에 휘둘리지 않고 오롯이 나만의 목소리에 집중할 수 있다. 어제의 고민을 다시 꺼내 보기도 하고, 오늘 해야 할 일을 차분히 정리하기도 한다.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아직 여유롭고, 심장은 급하게 뛰지 않는다. 오히려 차분히 박자를 맞추며 하루의 속도를 천천히 정한다. 그 순간 나는 사무실이라는 공간을 비로소 내 것으로 느낀다.

물론 일찍 도착한 사무실의 공기가 늘 편안한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묘한 외로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빈자리들 사이를 둘러보면, 내가 너무 서둘러 와 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 누구도 앉지 않은 의자들이 낯설게 느껴지고, 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그러나 그 고요 속에서 스스로를 다잡는 시간이야말로 필요하다는 걸 알기에, 나는 그 외로움마저 받아들인다. 그것은 나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 같은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하면 공기는 달라진다. 인사 소리와 의자 끄는 소리, 컴퓨터 전원이 켜지는 소리, 커피 머신이 돌아가는 소리가 공기를 채운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나만의 공간 같았던 사무실은 다시 익숙한 소란으로 변한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그전에 잠시 머물렀던 고요가 오늘 하루를 다르게 만들 것이라는 사실을. 일찍 도착한 사무실의 공기는 분명 나를 단단하게 해 준다.

나는 이 경험을 삶과 닮았다고 느낀다. 모두가 몰려오기 전에, 누군가 나를 흔들기 전에, 스스로를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짧은 고요가 있어야 하루의 무게를 견딜 수 있다. 일찍 도착한 사무실의 공기는 단순히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나를 다시 세우는 순간이다. 그 시간을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하루의 결이 달라진다.

오늘도 나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사무실에 도착했다. 커피잔을 내려놓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차갑고도 맑은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오늘 하루도 버텨낼 수 있을 거라고. 일찍 도착한 사무실의 공기는 그렇게 또 한 번 나를 앞으로 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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