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방 안의 고요

by 또바기

하루의 마지막은 늘 불을 끄는 순간으로 다가온다. 작은 방 안에 켜져 있던 불빛이 사라지면, 세상은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낮 동안은 무심히 지나쳤던 가구와 물건들이 어둠 속에서 모양을 감추고, 방 안은 고요로 가득 찬다. 불 꺼진 방 안의 고요는 단순한 정적이 아니라 하루 전체를 감싸 안는 깊은숨 같다. 나는 그 고요 속에서 비로소 오늘을 떠올리고, 나를 마주한다.

불을 끄기 전까지는 늘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책상 위의 메모지, 읽다 덮어둔 책, 대답하지 못한 메시지. 하지만 스위치를 내리는 순간, 그 모든 것들은 잠시 멈춘다. 고요는 내가 잠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품처럼 조용히 나를 덮는다. 더 이상 서두르지 않아도 되고, 무언가를 붙잡지 않아도 된다. 고요는 말없이 속삭인다. 이제 충분하다고, 여기까지 잘 왔다고.

불 꺼진 방 안에서는 작은 소리조차 크게 다가온다. 냉장고의 낮은 진동음, 창밖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 이웃집에서 스며드는 웃음소리. 낮에는 무심히 흘려보냈던 소리들이 고요 속에서는 선명해진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정리한다. 소음이 아니라 여운처럼,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로하는 배경처럼. 고요는 결코 완전한 침묵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자잘한 소리들을 부드럽게 품어내는 공간이다.

불 꺼진 방 안의 고요는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낮 동안은 바쁘고 소란스럽게 살아왔지만, 결국 이렇게 작은 방 안의 고요 속에서 잠들어야 한다는 사실. 그 단순한 진실이 나를 차분하게 한다. 아무리 많은 일을 해도, 아무리 큰 성취를 이루어도 결국은 불을 끄고 잠들어야 한다. 그 앞에서는 누구나 같아진다. 고요는 나를 낮추고, 동시에 나를 위로한다. 오늘 하루를 충분히 살았으니 이제 쉬어도 된다고.

어릴 적 기억 속 고요도 떠오른다. 불을 끄면 방 안은 금세 어둠에 잠겼고, 나는 두려움에 이불을 덮어쓰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 고요가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그 속에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상상력이 피어나기도 했다. 고요는 나를 무섭게도 했지만, 동시에 나를 자라게 한 공간이었다. 지금의 고요도 마찬가지다. 두려움이 아니라 안식을 주는, 나를 다시 시작하게 하는 자리다.

고요는 하루를 정리하는 또 하나의 언어다. 나는 불 꺼진 방 안에서 마음속으로 조용히 오늘을 읊조린다. 기쁘던 순간, 힘들던 순간, 말하지 못한 생각들까지 고요 속에서 다시 떠오른다. 그러나 그것들은 더 이상 나를 무겁게 짓누르지 않는다. 고요는 모든 것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 내일로 넘긴다. 나는 그 속에서 마음을 비우고, 다시 채울 준비를 한다.

오늘도 방 안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어둠 속에서 눈을 감자, 고요가 천천히 나를 감싸 안았다. 낮의 소란은 멀어지고, 내 마음의 파동도 잦아들었다. 나는 속으로 속삭였다. 오늘 수고했다고, 이제 쉬어도 된다고. 불 꺼진 방 안의 고요는 그렇게 또 하루의 마지막 문장이 되어 주었다.

이전 28화창문을 열자 스며든 저녁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