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쓰지 못한 일기장 한 장

by 또바기

하루가 끝나갈 즈음, 나는 종종 일기장을 펼친다. 오래된 공책일 때도 있고, 작은 노트일 때도 있으며, 가끔은 휴대폰 메모장이 그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어떤 형태이든 하루를 글로 옮긴다는 건 내게 중요한 의식이다. 그러나 늘 그렇듯 모든 걸 다 쓰지는 못한다. 다 쓰지 못한 문장과 다 담지 못한 마음들이 페이지 사이에 남는다. 그 빈자리가 오히려 일기장의 가장 진실한 기록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일기를 쓰다 보면 글자와 글자 사이에 내 마음이 묻어난다. 기쁘고 설레는 순간은 의외로 짧게 적히고, 아쉽고 힘든 순간은 길게 이어진다. 그러나 그마저도 완전하지 않다. 아무리 많은 문장을 적어도 하루 전체를 다 담을 수는 없다. 빛과 그림자, 웃음과 한숨이 얽혀 있는 하루를 한 장 안에 온전히 옮긴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기장은 늘 ‘다 쓰지 못한 이야기’로 남는다.

나는 그 불완전함 속에서 오히려 위로를 느낀다. 다 쓰지 못했다는 건 그만큼 오늘이 풍성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모든 걸 기록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모든 것을 살아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다 쓰지 못한 빈칸은 내가 살아낸 하루의 여백이다. 그리고 그 여백 덕분에 내일 또 다른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다. 완벽한 기록이 아니라 이어지는 기록, 그것이 삶과 닮아 있다.

어릴 적 썼던 일기장도 떠오른다. 선생님께 보여주기 위해 억지로 한 줄씩 적었던 날들, 맞춤법을 틀리면 고쳐야 했던 기억, 그림일기로 대신했던 여름 방학의 기록들. 그 일기장도 대부분 다 쓰지 못한 채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미완성의 기록들이 지금 돌이켜보면 더 생생하다. 다 쓰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때의 공기와 감정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다. 빈칸은 결코 공허가 아니었다.

다 쓰지 못한 일기장은 내게 질문을 남긴다. 오늘 왜 이 말을 끝내 적지 못했는지, 왜 이 기분을 끝내 담아내지 못했는지. 그 질문이 내일을 살아가게 만든다. 미처 다 쓰지 못한 이야기를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 여전히 기록되지 않은 감정을 언젠가 꺼내야 한다는 다짐. 그래서 일기는 늘 미완성이지만, 그 미완성이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다 쓰지 못한 채 남겨둔 것들이 결국 나를 다시 살아가게 만든다.

나는 가끔 다 쓰지 못한 일기장을 보며 오늘의 나를 용서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끝내지 않아도 괜찮다고. 글로 다 적지 못했다고 해서 내가 덜 살아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빈칸 속에 더 많은 숨결이 남아 있다. 그 사실을 깨달으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오늘의 나를 다 쓰지 못했더라도, 내일의 내가 그 빈칸을 채울 수 있을 테니까.

오늘도 나는 일기장을 펼쳤다. 몇 줄의 문장을 남기다가 펜을 놓았다. 하고 싶은 말은 더 있었지만, 다 쓰지 않아도 괜찮았다. 오히려 다 쓰지 못한 그 한 장이 내일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다 쓰지 못한 일기장 한 장은 그렇게 내 삶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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