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괜찮아?”라고 물으면 나는 늘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럴 때면 내 머릿속엔 늘 어떤 장면 하나가 재생되었다.
비 오는 날, 우산의 둥그런 면을 따라 또르르 미끄러지듯 떨어지는 물방울,
혹은 앞유리를 스치는 와이퍼의 일정하고도 기계적인 움직임.
어떤 감정이나 대답을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움직이는 모습들이 떠오르곤 했다.
“괜찮아?”라는 물음은 마치 내 감정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걸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닦아내길 바라는 요청처럼 들릴 때가 많았다.
그래서일까. 그 말이 나를 감싸기도 전에 나는 이미 그것을 털어내고 있었다.
아무 일도 아닌 듯 스스로의 감정을 지우고 감추는 게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그 순간의 나를 멀리서 바라본다면,
마치 감정의 얼룩 하나도 용납하지 않는 결벽증 환자 같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누군가의 다정한 위로 앞에서 경계심을 늦추지 못한 사람이었다.
내 마음이 들킬까 봐, 내 약함이 타인의 말속에 번질까 봐 조심스럽게 자주 물러섰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렇게 위로를 흘려보내는 방식이 내게 평온함을 안겨주곤 했다.
그건 아마도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터득한 자구책 같은 것이었다.
기댔다가 무너졌던 기억, 말없이 멀어진 손길.
나를 아프게 했던 다정함의 잔해들이 마음 구석구석에 남아 나는 결국 스스로를 감싸고 보호하는 방식을 몸에 두르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도 쉽게 기대지 못하던 시간이 길어졌다.
하지만 그건 다시 다른 이에게 그 다정함의 잔해를 남기는 일이기도 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좋아서 시작한 글 쓰는 일이 점점 지쳐갈 무렵.
'아 이제 그만두어야 하나?'라며 망설이고 있을 때 나의 글을 읽는 게 좋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날 이후 나의 글은 오직 한 사람만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나를 위한 글이 그를 위한 글로 변했다.
그가 글을 읽으면, 내가 쓴 문자들이 환하게 웃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글을 쓰며 생긴 커다란 구멍은 좀처럼 메워지지 않았다.
스스로를 위해 써도, 그를 향해 쓰는 동안에도 정작 나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결국 아주 작은 균열 하나에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결국 나는 글 쓰는 일을 멈추었다.
다시 쓰고 있는 지금도 이 글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이렇게라도 쓰는 일이 나를 혹은 그 사람을 위로하는 일이라고 결국 합리화시켜 버렸다.
또 실패할 위로라는 걸 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