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위로를 기다릴 틈 없이 살아지는 날들

by 고양이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네는 일은 평소에 쓰지 않는 근육을 쓰는 느낌이라

약간의 통증이 동반되지만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 사람이 안심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그럴듯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 나는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무게에 지쳐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글 속에서는 단정한 문장과 알맞은 낱말로 나를 포장했지만 현실에서는 그러한 문장들을 찾을 수 없었다.

스스로에게 지운 무게는 때로 고독이나 우울이 되었고 그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래서 누구도 모르게 아주 천천히 가라앉았다.


가족, 동료, 심지어 온라인상의 친구들.

당연히 그들에게 위로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위로는 받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였는지가 더 중요했던 것 같다.

어디로도 흘러들 수 없는 감정의 강가에 홀로 서있는 느낌.

이건 누구의 잘못도, 그의 위로가 부족해서도 아니라 어쩌면 내가 지쳐버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였을까.


사람들은 늘 사실보다 이야기에 더 끌리고 진실보다 해석하기 쉬운 감정에 기대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처음 스캔들이 터졌을 때, 사람들은 진실이 무엇인지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비난할 대상'이 필요했고 누군가를 끌어내려서 자신이 가진 어떤 감정을 대리 해소하려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감정엔 정의도, 공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그 사람이 더는 반응할 수 없는 위치에 있게 되었을 때.

그제야 사람들은 비로소 자신의 말이 무거웠다는 걸, 그 말이 돌아올 수 없는 상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희미하게나마 깨닫는 것 같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그립다.", "안타깝다."
하지만 정작 그 사람이 가장 필요했을 때 그 말 한마디를 아무도 하진 않았다. 내가 보기엔.


왜 사람의 마음은 이렇게 가벼운 걸까.
사람의 마음이 쉽게 변하는 걸까 아니면 너무 늦게 진심을 자각하는 걸까.
쉽게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던 건 아닐까.
자신의 프레임, 두려움, 혹은 세상의 어떤 흐름에 따라 판단하고 해석하느라.



언제 치료받은 건지도 모르는 충전물이 떨어져 나왔고, 그 조각이 씹혔다.

며칠을 미루던 끝에 치과로 향했다.

예약은 했지만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전날 급히 잡은 예약이라, 제대로 예약이 된 게 아니었던 걸까.

이럴 거면 왜 약속을 한 걸까. 하지만 나는 화를 내지 못했다.

최근 나는 누군가에게 약속을 어긴 사람이었으니까.

말로 확인한 적은 없지만 분명했던 약속을.


나는 기다림에 익숙했다.

그러나 익숙하다는 말은 언제나 잘 견딘다는 뜻은 아니다.

한 시간을 기다리고서야 겨우 치과 의자에 앉았다.

그 이후로 30여 분이 흐르자, 의사가 들어왔다.

그리고 의자는 천천히 뒤로 눕기 시작했다.

의자가 180도를 넘기자 몸이 기묘하게 젖혀졌다.

배가 위로 떠오르고 허리는 살짝 활처럼 휘어졌다.

그때 문득, 옆에서 본 나의 라인이 눈웃음처럼 보일 것 같다는 쓸데없는 상상에 웃음이 터질 뻔했다.


“안쪽으로 충치가 좀 생겼네요. 신경치료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의사의 말이 와닿기도 전에

어린 시절 들었던 드릴 소리와 입안의 진동, 차가운 금속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는데 몸은 먼저 움츠러들고 마음은 그보다 앞서 도망쳤다.


마취 주사가 잇몸을 찌르자

입술, 목, 식도 주변의 감각이 하나둘 사라졌다.

감각이 사라지는 자리에 설명하지 못한 감정 하나가 스며들었다.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날의 이유,

끝내 꺼내지 못한 마음이 다시 먹먹해졌다.


신경치료가 시작되고 잇몸 깊은 곳에서 잔잔한 진동이 느껴졌다.

진료가 끝나고 약국에서 3일 치 약을 받아 나왔다.

차에 올라 시동을 걸며 문득 떠올린 건

‘마취가 풀리면 아프려나?’라는 별것 아닌 걱정 하나였다.


나는 한동안 아팠다.

갑작스럽게 생긴 빈자리에 내가 소중히 여기던 사람의 그림자가 오래 머물렀다.

나는 그곳에서 도망치려 했지만 동시에 그곳에 정착했다.

슬픔은 그렇게 이상한 방식으로 나를 그곳에 묶어두었다.


그러나 우습게도,

그 아픔을 가장 먼저 덮은 건 시간이 아니라 작은 일상이었다.

활처럼 휘어진 채 버둥거리던 내 모습, 마취 주사의 뾰족하면서도 둔한 느낌,

'약 먹으면 아프지 않겠지'같은 단출한 희망 이런 것이 지나온 상처들을 살짝 덮는다.


어떤 감정도 결국은 아주 사소한 일상 속 조각들에 가려지고,

시간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사라지는 게 조금은 쓸쓸하게 느껴졌다.

나는 더 아프고 싶었지만 하루하루가 억지로 등을 떠밀며 나를 앞으로 밀어냈다.

어떤 위대한 통찰이나 위로의 말보다

그저 바쁜 하루, 짧은 통증, 미뤄뒀던 약속, 한 번의 세탁기 소리 같은 게

나를 삶으로 다시 끌어올리고 있었다.


내버려 두고 온 마음은 밀물에 묻힌 운동화처럼 여전히 어딘가 젖어 있지만

'이따가 마취 풀리면 많이 아플까?'

그 한마디 걱정에 또 조심스레 자리를 내어준다.

삶이 마음을 덮는 방식은 어쩌면 이토록 비겁하고, 현실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1. 서로를 정말 위로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