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취미의 키워드는 '손' #1

배운 게 도둑질이야

by 버들아씨

돈이 아닌 여가를 즐기기 위한 것이 취미라면, 하고많은 것들 중에 취미가 아니 되는 것은 없을 테니,

참으로,

'세상은 넓고, 취미는 많다.'


그 넓은 세상 많은 취미들 중에

어떤 이는 한 두 가지만을 깊게 파서 거의 전문가가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여러 분야에 관심 갖고 이것저것 체험해 보며 다채롭게 취미생활을 즐길 것이다.


나의 취미는?

깊게 파기와 여기저기 조금씩 발 담가 보기,

이 둘 사이 어디메쯤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일 년 이상 내가 발 담가 왔던 취미들을 쭉 더듬어 보면, 서로 일맥상통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으니


바로 ''이다.

주로 손을 사용해서 뭔가를 하여 왔다.


색칠도구를 잡은 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가위 잡은 으로 한지를 자르고 붙이거나,

천에 얇은 솜을 대고바느질하거나,

코바늘 대바늘 잡은 으로 뜨개질을 하였다.


손을 써서 텅 빈 시간의 허기를 풀고,

메말라가는 미적욕구에 조금씩 물을 주었다.

그런데, '손'이라 쓰고 보니,

피아노나 바이올린도 손으로 연주하고, 요리도 손으로 조리하고, 농구 배구도 손으로 공을 던지고 때리고, 바둑 체스도 손으로 두고, 목공도 손으로 톱질하고 망치질하고......

손이 중요한 분야가 내 취미 말고도 많이 있어서,

왜 내 취미의 키워드를 꼭 '손'이라 하려는지 그만 궁색해진다.


그래도 내 취미 이력을 살펴보면

'손재주', '손기술'이랄까?

변덕이 죽 끓듯한 나의 성정과는 반대로 꾸준히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 왔으니,

그것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게 바로 '손' 아닐까 하는 것이다.


좀 억지스럽다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내 취미를 가지고 내가 그렇다는데용?!'

'우훗!'(수줍은 웃음소리임)

버팅겨본다.



내가 손과 관련된 뭔가를 계속 해온 것은

'배운 게 도둑질'이기 때문이다.

깡촌에 가까운 시골에 살았지만, 아빠는 가끔씩 크레파스를 가져다주셨다.

덕분에 좀 끄적거려 봤는지 국민학교 2학년 때 작은 대회에 나가 '우량상'을 탔다.

지금도 기억난다. 그림 주제는 '김장하는 날'이었다.

이후 한두 번 더 대회에 나갔지만 학교를 빛낼 영광의 수상은 더 이상 없었다

우수상 장려상도 아닌 '우량상'과 몇 번 군 대회에 출전해 본 것으로 그림을 잘 그린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커가면서

'못 그리는 것도 아니지만 뛰어난 것'도 아니며, 나의 소질은

'노력이 많이 필요한 소질'일뿐이라는 것을 지극히 객관적으로 보고 깨달았다.

그럼에도 아빠표 크레파스 조기교육과 '우량상'의 기억은 불도장처럼 또렷했는지,

나는 대학입학해서도 미술동아리만 기웃거리고 다녔다.

반짝이는 손끝을 가진 동기들의 감각과, 선후배들의 자연스럽고 능숙한 붓질을 보며

다시금 겸손한 내 미술실력을 확인하는 나날이었다.

그렇지만 전공책과 스케치북을 가슴에 안고 캠퍼스를 걸을라치면 '멋쟁이 여대생'이 된 듯 발걸음이 경쾌해졌다.

때마다 학생회관을 빌어하던 전시회 내심

자랑스러웠다.



나는 대학을 학부만 두 곳 이상 다녔다.(자랑 아님, 잘 풀리지 않던 청춘의 증거)

미술동아리를 기웃거렸던 때는 첫 번째 대학을 다니던 시절로, 최루탄으로 캠퍼스가 매캐했던

1980년대였다.

2학년 때 학보사에 들어갔다.

수습기자, 정기자를 거쳐(그때는 이렇게 단계가 있었는데 지금은 어떨까)

'문화부장'이 되어 문화 관련 기사를 쓰고, 만평을 그렸다.

만평은 글쎄?

지금 생각하면 불판 위 오징어다리처럼 한없이 오그라든다.

풍자가 들어 있는 한 칸 그림 만평, 나는 버거웠다.

만평을 담당하는 후배기자가 들어와 무척 기뻐했던 기억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분명하다.

만평도 그림인데, 그 작업이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만족스럽지 못하니 재미도 없었다.

내가 손으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기는 하는 걸까 의문도 들었다.

그냥 어릴 때부터 시골아이들 속에서 좀 끄적거린 것으로

'나는 그림을 잘 그리고 좋아하는 아이야' 생각해 왔을지도 몰랐다.

한 칸 그림 속에 촌철살인 메시지를 담아내는 것이 내 역량으론 벅찼다.


어쨌든, 이 학보사생활은 나에게

'코스모스 졸업'이라는 아름다운 영예(?)를 안겨주었다.

동기들과 같이 졸업하지 못하고, 과에서 나 혼자만 유일하게 한 학기 늦게 졸업한 것이다.

'학생운동'을 열심히 하다 그리 된 건 아니고,

내가 야물지 못하고 게을러 학점을 못 챙긴 탓이었다.

이 '야물지 못한 게으름'은 아직도 내 발목에 감겨있어,

지금도 가끔 허방다리로 나를 인도하여 구덩이에 팽개치고 허우적대게 한다.

손사진.jpg

'배운 게 도둑질'로 시작하여 그것이 취미로 이어지는

옛 기억을 더듬다 보니

어찌 글이,

별거 없는 내 인생의 지루한 자기 고백 같아졌어요.

종일 비가 내리니 마음도 눅눅해지나 봐요.

덩달아 지루함으로 함께 눅눅해지셨을 독자님들을 위해

여기서 글을 마무리해야겠습니다.


나머지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 쓸게요.(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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