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취미의 키워드는 '손' #2
종일 비가 내리던 날,
내 취미의 뿌리를 찾아갔었다.
옛 기억을 되짚다 보니
닫지 못한 창문에 들이치는 비처럼
지나간 시간들도 무방비로 따라 들어왔다.
나는 그만 울적해져서, 글을 다 마치지 못하였다.
5월의 첫 주.
바람도 상냥하고, 햇빛도 말갛고, 공기도 상큼하다.
이 밝고 맑은 계절의 기운에 힘입어 나머지 글을 즐겁게 이어 쓴다.
(날씨의 맑고 흐림에 따라 기분도 함께하는 나야말로 날씨친화, 자연친화적인 사람이 아닌가 엉뚱한 생각을 동시에 한다.)
내 취미를 이름 지어 본다.
손으로 만드는 수수(手手)한 평화
손으로 만드는 수수한 평화
첫 번째 '수수'는 손을 써서 만든다는 뜻으로, 한자 손 수(手)를 두 개 겹친 것.
두 번째 '수수'는 내 취미의 결과물들이 겸손하고 소박하다는 뜻의 '수수'
나의 취미는 많은 이가 즐기는 대중적인 것들이고, 그 결과물도 그리 대단친 않지만,
취미가 주는 몰입의 시간은 '괜찮아, 괜찮아' 나를 토닥이며 편안함으로 이끌어주었다.
그래서 내 취미를 '손으로 만드는 수수한 평화'라 말해본다.
처음엔 '손으로 짓는 행복'이라는 이름도 좋았다.
그런데 유명배우인 김현주 씨의
'현주의 손으로 짓는 이야기(한 올 한 올 숨 쉬는 행복한 바느질이야기)'라는
비슷한 뉘앙스의 책이름이 이미 있어서
손으로 짓는 '행복' 대신 손으로 만드는 '평화'를 취했다.
넘사벽 유명인은 내가 비켜간다.
나의 '손' 취미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해 본다.
손 취미 첫 번째, 한지공예
한지의 고장 '00시'에 살 때, 한지의 우아한 질감과 의미깊은 전통 문양에 매료되었다.
첫 아이 만삭 때에도 허리를 손으로 받쳐가며 찢고 오리고 붙였다.
손 취미 두 번째, 퀼트
큰 애는 유치원에 가고 어린 딸은 집에서 내가
돌보고 있었다.
딸을 보면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궁리 끝에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퀼트하우스'를 방문하였다.
색색의 천을 꿰매 조화로운 형상을 만드는 일이 이토록 재미있을 줄이야.
손 취미 세 번째, 수채화
대학졸업 후로 그림은 그리지 않았다.
어느 날 직장동아리에서 동료들이 그림을 배우는 모습을 창 너머로 보았다.
가슴이 뛰었다.
대학 때까지는 동아리에서 내 맘대로 그리거나,
누군가의 조언을 간혹 들었을 뿐이었다.
이번에야 말로 '레슨'이라는 것을 받아보고 싶었다.
강사의 정기적인 지도와 연습으로 실력은 일취월장(순전히 뇌피셜)하였다.
손 취미 네 번째, 수성사인펜 수채화
다년간의 수채화 열정도 시들해질 무렵, 우연히 수성펜 수채화를 발견.
교본을 여러 권 구입해 기법을 익혔다.
수성펜과 물붓 만으로 수채화 맛을 구현하는 간편하고 확실한 신세계.
손 취미 다섯 번째, 뜨개질
자리가 남았으니 시간 되는 사람은 오라는 직장 뜨개동아리 메시지.
뜨개재료 무료제공에 솔깃하여 갔다가 뜨개세상의 빗장을 열어버렸다.
마음이 꼬여있을 때면 꼬인 실을 풀 듯이 뜨개실을 잡았다.
수시로 마음이 꼬이므로 수시로 뜨개질을 하였다.
가장 최근의 취미이다.
이 외에도 발 담가본 것이 있다.
줌바댄스, 요가, 수영은 건강을 위해
유화는 대학동아리 때.
조소, 도예, 한국화, 아크릴화, 색연필화는 손취미의 연관선상에서 잠깐씩.
작년 겨울부터는 '희곡낭독동아리'에 가입하여
'목소리 연기'세상에 발을 디밀고 있다.
취미부자같이 여기저기 기웃거렸지만,
나는 '손 취미'라고 이름 붙인 다섯 가지에 애정이 더 간다.
집안 곳곳에, 상자 속에,
혹은 지인에게 선물하여 나를 떠난
취미의 결과물을 생각하면,
텅 빈 시간의 허기를 채우려던 지난날의 간절함이 떠오른다.
그래서 '내 잊지 않으리',
문득 그것들과 함께한 시간을 글로 남겨두고 싶어졌다.
심심하고 외로울 때 친구가 되고,
근심으로 복잡한 마음에 멈춤과 휴식을 주던
'손으로 만들었던 수수한 평화' 이야기들을.
취미와 함께한 시간은 내게 재료와 한숨도 남겼다.
우리 집엔 사놓고 다 쓰지 못한 재료들이 구석구석 먼지를 한가득 뒤집어쓰고 있다.
내가 욕심부려 저질러 놓고, 나는 한숨을 쉰다.
급기야 혼잣말로 대화까지 한다.
'이거 언제 다 쓰냐?'
'백세시대니까 언젠간 쓰긴 쓰겠지!'
'그건 백세까지 살아야 할 수 있는 건데?
'...... 그래, 뭐 있냐, 사는데 까지 다 쓰며 신나게 놀아보자'
'누구랑?'
'내 친구 취미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