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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러기퐝 Nov 17. 2020

기러기를 위한 변명

여의섬4


  기러기는 철새다. 계절에 따라 서식지를 이동하는 게 무릇 철새의 자연 본성이자 특징이다. 그러나 유독 정치권에서 철새라는 단어는 정당을 여기저기 옮기며 계절과 바람에 따라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정치인에게 따라 붙는 부정적 의미다. 한 번 철새라는 딱지가 붙은 정치인에게는 평생의 멍에가 된다. 그런 천형을 받은 정치인에는 이인제, 손학규, 김민석 등이 대표적이다. 꼬리표가 따라다닌다는 점에서 탈당은 정말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정당을 출입하는 기자도 마찬가지 신세다.   


  정당 출입 기자는 회사의 명에 따라 통상 여당과 야당 출입으로 나뉘어서 담당하게 된다. 개인의 성향이나 의사가 반영되는 경우도 있지만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한 번 출입이 정해진 기자는 그 출입처 사람들과 가까워져야 한다. 정보의 핵심에 근접하기 위해선 그 정당의 수뇌부와 친해져야 하고 그들의 시각에서 생각하며 그들의 언어에 맞장구를 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영혼(?)을 파는 척하는 일은 생길 수밖에 없다.

  어느 술자리에서 생긴 일이다. 당시 경선 주자별로 마크맨이 정해졌는데 내가 마크하지 않는 다른 진영의 핵심 인사들과 저녁을 했다. 거기서 내가 마크했던 인사에 대해 술자리 참석자들은 비난을 하면서 나에게 그들이 속한 경선 캠프 주자에게 ‘충성 맹세’를 하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오갔다. 물론 나는 하지 않는 대신 벌주를 마셨다. 술자리 장난과 농담처럼 이뤄진 일이었지만 이처럼 피아를 구분하는 일은 여의도에서 쉽게 이뤄진다.

  정당을 출입하는 기자에게 누구 편이냐를 묻고 이를 강요하는 것은 편 가르기식의 못된 습성이라고 생각한다. 기자는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기사를 쓴다. 기본적으로 회사의 조직원이기도 하다.

  물론 출입처 입장에선 믿을만한 사람이냐 아니냐를 판단하기 위해 생기는 일이다. 그들은 항상 기자들을 평가한다. 기사를 정확하게 잘 쓰는지, 취재를 잘하는지, 누구랑 친한지 등은 물론 인성도 반영돼 평판이 생긴다. 기자는 그 평가를 감수하면서 문제가 되지 않도록 균형감 있게 기사를 써야 한다. 기사를 놓고도 저 기자는 누구랑 친해서 우리 쪽에 나쁜 기사를 썼다는 식으로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도 적지 않다. 억울한 경우도 있지만 처신을 잘못한 경우도 있다.

  심지어 회사 내부에서조차 그런 오해와 시선을 겪기도 한다. 가장 화가 났다. 회사의 지시와 명에 따라 그 사람들과 가까워졌고 그걸 바탕으로 정보를 얻고 기사를 써왔는데 기사가 너무 출입처 편을 들고 있다거나 나중에 정치하려고 한다고 하는 뒷말을 들었을 때다. 근묵자흑이라는 말을 되새기며 늘 경계했는데도 말이다. 한 선배는 나에게 “취재원을 짝사랑하지 말라”고 했다.

  물론 이 바닥 속성상 어느 정도 출입처 편향적으로 마음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도 사실이다. 출입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기에 부당한 비판이나 기사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방어해야 한다. 그렇다보니 선거를 앞두고 다른 정당을 담당하는 선후배들끼리도 서로 야지를 놓거나 쓸데없는 말을 주고받고 견제하며 빈정 상하는 일이 많았다. 그런 고민을 토로했더니 나보다 한 30년 이상 선배에게 들은 얘기다.


 “나 때는 말이야~ 진짜 더 심했어. 대선 치룬 어느 날 정치부장이 부원들을 소집하고 술자리가 이어졌는데 다들 취하고 술 먹다가 이긴 쪽 정당을 출입하는 선수들이 진 쪽 선수들을 놀리니까 술병이 날라다니고 그랬다니까”


  실제 정치부 기자의 한 장막은 대선이다. 대선에서 이긴, 다음 대통령으로 선출된 사람의 마크맨과 정당 출입 기자는 청와대 출입기자로 영전(?)하게 된다. 반면 대선에서 진 정당 출입 기자는 패배한 정당과 운명을 같이하며 특별히 역할이 없게 된다. 출입처 기사의 중요성이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대선 주자의 운명에 따라 마크맨들의 운명도 결정되는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그 기자 커리어에도 청와대 출입이라는 이력은 중요하다. 흔히 얘기해서 청와대 출입 경험 없이 정치부장이 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철새 정치인이라 비난을 받는 분들도 생각해보면 자신의 사명과 역사적 소명의식에 따라 정당을 바꿨을 것이다. 결과가, 운명이 그들의 편이 되지 않았을 뿐이다. 가끔 기자도 기러기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하필 기레기와 글자로 한 끝 차이다. 부서가 변경될 때, 출입처가 바뀔 때 보따리를 싸서 옮기며 서식지를 바꿔야 하는 서글픈 운명이다. 그래서일까 철새 정치인이라는 단어에 동병상련이 느껴지고 이 단어를 쓰는 것에 좀 더 신중해지게 된다.

  영화 무간도의 주인공들처럼. 조직을 위해 잠입했다가 내가 경찰인지 조직폭력배인지 혼돈을 겪기도 한다. 정치인과 가깝게 지내고 의견을 제시하고 조언을 하다보면 기자인지 당직자인지, 보좌관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중요한 것은 공정성과 균형에 대한 스스로의 다짐과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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