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돈룩업 Don't look up, 2021
영화는 종합예술이라 불릴 만큼 한 장면 한 장면 감독을 비롯 여러 제작진들의 아이디어와 디테일들이 가득하다. 때로는 제작진이 숨겨놓은 보석 같은 소품 등의 장치에 대한 상징과 의미를 찾아보는 것도 영화를 보는 즐거움 중 하나일 테다.
와인 역시 영화에 자주 나오는 소품 중 하나이며, 때로는 직접 주인공이 마시기도 하며 그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영화도 적지 않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사이드웨이(Sideways, 2005)'나 셰드릭 클라피쉬 감독의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Back to burgundy, 2018)' 같이 아예 와인이 주요 소재인 이른바, '와인영화'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와인은 대중적인 술 중 하나이다.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들은 아마도 이 영화 그 장면에 그 와인을 배치해 둔 이유가 있다. 분명한 이유가 없더라도 나름대로 그 와인에 담긴 스토리와 영화의 내용을 비교하고 그 의미나 뜻을 유추해 보는 것도 영화를 새롭게 감상하는 방법이다.
'와인미라클(wine miracle, 2008) 같은 와인이 주인공인 영화부터, 대중오락영화인 마블영화 아이언맨 토니스타크가 마시는 와인까지, 와인이 나오는 장면이 있는 영화들을 다시 한번 찾아보고, 구할 수 있다면 되도록 그 영화에 나온 와인을 직접 마셔보려고 한다.
첫 번째, 와인에 취한 영화는 아담 맥케이 감독의 돈룩업이다. 2021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혜성의 지구 충돌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천문학자(들)가 지구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결국 비참한 종말을 맞게 된다는 내용의 블랙코미디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제니퍼 로렌스가 주연을, 조나 힐, 티모시 살라메, 메릴 스트립이 조연을 맡아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조나 힐의 능청스러운 대통령의 아들 연기가 일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구의 종말을 목전에 두고 정부는 정부대로, 기업을 기업대로 자신들만의 잇속을 챙기는 모습을 아담맥케이 감독 특유의 위트와 재치로 담아낸 수작이다.
결국 피할 수 없는 혜성충돌로 종말을 맞게 된 주인공 일동은 집에서 소소한 만찬을 즐기며 종말을 기다리면서 와인을 곁들이는데 이때 이들이 마시는 와인이 오늘의 주인공 'A to Z 오레곤 피노누아(Oregon pinot noir)이다.
피노누아는 프랑스어로 검은 소나무를 뜻하는 말로 이 와인을 만드는 품종 이름이기도 하다. 피노누아 포도의 생김새가 마치 검은 솔방울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이다. 프랑스의 대표 와인산지인 부르고뉴의 대표적인 품종으로 각종 향신료, 체리를 비롯한 베리류의 뉘앙스, 치즈나 버터 혹은 그 숙성도에 따라 가죽이나 버섯과도 같은 향미를 가질 정도로 와인이 되는 포도 품종 중엔 가장 섬세한 품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와인 애호가는 물론 나와 같은 일반인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현재는 부르고뉴뿐 아니라 전 세계 각지의 와이너리에서 생산 중이다. 그중에서도 미국의 오레곤 지역이 대표적인 피노누아의 산지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와인은 오레곤의 AtoZ 와인웍스라는 와이너리에서 생산 중이다.
프랑스 피노누아는 대체로 숙성도가 있어 치즈나 가죽의 꼬리꼬리한 뉘앙스가 나타나는데 반면, 이 오레곤 피노누아는 마치 포도 열매를 그대로 먹는 듯한 느낌의 신선함이 가득 느껴지는 와인이었다. 왜인지 약간의 탄산감이 느껴질 만큼의 청량함이 지배적이며, 상기했던 체리와 각종 베리류의 뉘앙스가 폭발적으로 느껴졌다.
때문에 기존 부르고뉴 피노누아를 즐겨마시던 분들이 피노누아에 기대했던 입안의 휘감는 독특한 텍스처나 특유의 꼬리꼬리한 향미가 없어 불호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음식의 베리에이션을 즐길 수 있는 포용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색다른 즐거움을 찾기엔 충분할 향미를 가진 와인이다.
같이 할 음식은 파스타나 스테이크보다는 샐러드 또는 붉은 살 생선(구이 혹은 회)과 잘 어울린다.
지구의 종말을 다루는 블랙코미디 영화에서 처음과 끝을 뜻하는 'A to Z' 와인을 선택한 것은 또 하나의 의도된 설정이었을 것이다.
이 영화를 재밌게 보신 분이라면 이 들이 마신 마지막 만찬의 와인 A to Z 오레곤 피노누아를 꼭 맛보길 권한다.
햇과일의 짜릿한 산미와 달콤함, 싱그러운 청량감이 어쩌면 우리가 평소에 그냥 지나치고 있는 지구의 고마움을 전해줄지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