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2025)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분장상과 미술상, 그리고 의상상까지 거머쥔 영화 <프랑켄슈타인>은 기괴한 미장센으로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고수하며 크리처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감독인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의 12번째 장편 영화이다.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은 그간 10여 편의 영화 속에서 고딕(Gothic)과 괴물(Creature) 등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로 인간의 나약함 속에 가려진 폭력적인 본성과 이기적인 욕망을 그려내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동화적인 미장센과 아름다운 색채 감각을 통해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추악함에 대해 고혹적인 비판을 시도한다.
특히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미술상, 음악상 총 네 개의 트로피를 거머쥔 작품 <쉐이프오브워터 <The Shape of Water, 2017)를 통해 그는, 개개인의 이기적인 욕망과 잔인한 본성 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정해놓은 규범과 질서의 정당성과 도덕성에 대한 질문을 덜어놓는다. '금기'는 자연이 아닌, 인간이 만든 것이며 이성 역시 인간이 스스로 규정하며 감성과 감정의 위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찰학적인 질문들로 수놓는다.
이번 작품 역시 그와 다르지 않다. 절대적인 도덕이나 이성, 진리 등을 거부하고 보다 능동적인 상태를 강조하며, 권력과 그에 따른 의지, 영원으로서의 회귀, 그리고 위버멘쉬(초인)로 요약할 수 있는 니체의 철학을 집대성한 영화로 현대 사회의 과잉된 '책임 없는 창조(자)'에 대한 비판과 동시에, 결국은 크리처(피조물)로부터의 메시지를 통해 화해에 이룰 수밖에 없는 니체적 해피엔딩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현시대에 맞물러 A.I 등의 과잉 발전은 더 이상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가능성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천재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오스카 아이작 분)은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생명을 창조하려는 집착에 빠진다. 후원자의 도움으로 실험을 완성해 괴물(제이콥 엘로디 분)을 탄생시키지만, 그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버린다. 괴물은 세상 속에서 언어와 감정을 배우지만 인간에게 배척당하며 고통을 겪는다. 창조자에게 인정과 동반자를 요구하며 빅터를 추적하고, 두 존재는 비극 속에서 다시 마주한다. 결국 복수 대신 이해와 용서를 선택하며 관계를 새롭게 정의한다.
1818년, 작자 미상으로 발표된 메리 셀리의 원작 <프랑켄슈타인 ;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의 결말은 크리처가 창조자에게 복수를 가하는 내용이었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상기했던 것과 같이 창조주에 대한 피조물의 화해와 용서로 원작이 가지고 있던 경고성의 메시지 위에 따뜻한 감정의 레이어를 한 층 더 쌓아 올렸다.
영화의 내용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의 시대적인 배경은 크림전쟁 등의 배경설명으로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지만, 영화 속에서 나오는 패션은 실제 그 시대와는 전혀 다른 순수 100% 창작이라 할 수 있다. 고딕(Gothic) 또는 고스(Goth)라고 불리는 어둡고 음산한 패션은 고증보다는 시대적인 상상력에 가깝다. 물론 현재에도 '고 스코어(gothcore)'라는 표현으로 예의 '어두움'을 기반으로 한 패션이 유행할 정도로 70년대 후반 펑크 등 함께 런던의 카운터컬처(counter-culture)를 거쳐 하나의 서브컬처의 자리 잡고 있다.
고딕 또는 고스라는 단어는 원래 4세기경 로마를 침략한 고트족의 지칭하던 말로, 건축이나 패션, 미술 등에서 쓰이기 시작한 건 르네상스 시절부터이다. 화려하고 멋지고 문화적으로 풍요롭던 르네상스의 시대가 바라본 중세시대의 건축이나 미술 등은 어둡고 단조로우며 따분했기에 비하하는 어투로 사용한 단어가 고딕이었다. 가장 화려하면서도 모순적인 패션을 보여주었던 빅토리아 시대가 저물며 권위와 억압에 저항하는 문화, 이른바 카운터컬처로 고딕은 음악으로 먼저 세상에 등장했다. '수지 앤 더벤티스', '더 큐어'가 대표적인 고딕 음악을 하는 밴드로 자연스레 그들의 분장과 의상을 따라 하는 팬덤이 형성되면서 고딕은 점차 서브컬처 패션의 한 부류를 차지하게 되었다. 저항의 상징이었던 빅토리아시대의 애도복 또는 추모복을 모티브로 한 고딕패션은 블랙과 화이트로만 치장을 하고, 검은색 립스틱 등의 스모키 메이크업이 그 시그니처였다.
영화 <프랑켄슈타인>은 이러한 고딕 패션을 계승, 발전시켜 조금 더 화려한 색채와 실루엣으로 다크함은 물론 관능적인 퇴폐미와 원초적인 자연의 아름다움까지 더해 묘한 앙상블을 이루며 캐릭터의 서사를 돋보인다.
마치 믹재거를 연상시키는 주인공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여유로운 실루엣의 의상은 낭만중의의 광기에 사롭잡힌 매드사이언티스트의 전형적인 룩을 연출하였다. 특히 빨란 장갑을 통해 그의 엇나간 욕망과 피의 상징을 통한 잔인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남루해지면 흐트러진 복장은 스스로 파멸로 이끄는 그의 서사를 더욱 입체감 있게 표현한다. 반면, 초기의 크리처는 의상이라 하기 민망한 수준의 모습을 보여주면 갓난아기의 순수함을 보여준다. 전쟁터의 시신의 옷을 주워 입으며 스스로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모습을 표현하며, 점차 신발이나 숄, 후드 등의 아이템이 하나씩 추가되며 점점 더 '성장'하는 캐릭터의 모습을 표현한다.
원작에서는 그저 수동적인 캐릭터로 존재감이 없던 백터의 동생 윌리엄(펠릭스 카머러 분)과 그의 약혼녀 '엘리자베스(미아 고스 분)'의 패션 역시 그 소용돌이처럼 휩쓸려가는 스토리의 전개에 단단한 서사를 부여하는 의상으로 이목을 끈다. 특히 엘리자베스의 의상은 딱정벌레 등의 곤충을 모티브로 한 색채를 사용함으로 자연과 생명의 신비로움을 나타냄과 동시에 심리적인 변화의 흐름을 자연스레 보여준다. 또한 모든 장면에 등장하는 그녀의 목에 걸린 카넬리안 레드 컬러의 십자가 묵주 목걸이는 그녀의 신성함을 표현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과 신성에 대한 도전과 모독에 대한 경고의 의미를 내포한다. 너무도 유명한 주얼리 업체인 '티파니 앤 코'에서 제작한 이 목걸이는 이 영화의 의상디자이너인 케이트 홀리가 직접 자연의 경이로움을 담은 <자연신학>이란 책에서 받은 영감과 티파니 앤 코의 아카이브에서 찾은 스카라브 목걸이를 결합해 만든 디자인이다. 그녀는 이를 통해 자연과 종교, 그리고 피의 이미지를 함축적으로 담고자 했다고 한다.
피터 잭슨 감독의 추천으로 영화 <크림슨 피크(Crimson Peak, 2015)부터 줄곧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과 함께 협업하고 있는 뉴질랜드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 케이트 홀리는 의상의 소재와 구조, 그리고 색채를 통해 캐릭터의 감정 변화의 미묘함의 층위를 나타내는 데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이번 영화에서 티파니 앤 코와의 협업으로 의상에 걸맞은 액세서리를 통해 한층 더 화려하고 입체감 있는 캐릭터의 유니크함을 완성시켰다.
18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산업혁명은 현재 A.I의 발전만큼이나 우리의 생활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중심이 되었던 영국의 런던은 유럽을 넘어 전 세계가 주목하는 산업의 중심지가 되었고 패션을 비롯한 온갖 신문화의 발상지가 되었다. 폭풍우가 몰아친 휴가철 한 여름밤에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에서 출발한 <프랑켄슈타인>은 메리 셀리를 세계 최초의 SF 소설 작가로 만들었다. 물론 그의 남편이었던 영국을 대표하는 낭만주의 시인이자 저항정신 가득한 혁명가인 퍼시 셀리의 영향이 없지는 않았을 테다. 출간 당시에도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았던 메리셀리는 1818년 작가미상의 상태로 착을 발간, 이후 1823년 본인의 이름으로 재출간한다.
급격한 사회 시스템의 변화와 산업 혁명은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스모그와, 열악한 노동 환경, 특히 하루 12~16시간 동안의 미취학아동들의 노동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어 항상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일자리를 찾아 런던으로 집중되는 수많은 인구 때문에 도시의 슬럼화는 계속되었고, 위생과 환경 역시 안 좋아져 장티푸스, 콜레라 등 전염병의 도시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인간의 기계화가 낳은 인간의 존엄가치의 하락으로 인한 인간소외 현상이 두드러진 시점이었다. 이는 현재와 맞물러 시사하는 바가 크다.
A.I의 발전으로 인류는 산업혁명만큼이나 엄청난 편의를 제공받겠지만 그만큼 막대한 보이지 않는 비용을 치루어야 할 것이다. 사고는 선택적 물음에만 답을 할 분 창조적인 사고는 멈추게 될 것이다. 비단 발 빠른 A.I의 추천 때문만이 아니다. 창작의 발원을 알지 못하고, 창작의 진위를 구별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면 인간의 창조 혹은 창의력이 그전 시대보다 낮은 가치로 폄하될 것이다. 이는 창의 활동의 저하로 귀결되며 결국은 선택적 사고만이 가능한 인간으로 전략하게 될 것이다. 200년 전 한 여성이 경고했듯이 우리는 우리가 지금 무엇을 만들고 있는 건지, 책임은 질 수 있는 건지 되돌아봐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