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레이디 두아(The Art of Sarah, 2026)
소위 명품이라는 것에 대한 열정 혹은 집착은 그 사람의 가진 것과 상관없다. 가정과 재산을 모두 잃고 동생 집에 얹혀살며 파트타임잡에 전전긍긍하는 재스민이 끝까지 에르메스 버킨백을 놓지 못하는 것처럼.
8부작으로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인 <레이디 두아>는 공개 당일부터 22일간 한국 넷플릭스 시청률 1위를, 세계적으로는 비영어권 콘텐츠 가운데 2주 연속 1위의 자리를 지키며, 오징어 게임 이후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한국 드라마이다.
MBC 출신으로 드라마 <신돈>과 <개와 늑대의 시간> 등을 연출한 김진민 PD가 연출을, 신혜선과 이준혁이 주연을 맡은 <레이디 두아>는 가짜로라도 명품이 되고 싶었던 한 여자의 끝없는 욕망과, 그녀를 쫓는 형사 '무경'에 대한 이야기이다.
정체를 숨기고 살아온 여자 사라 킴(신혜선 분)은 신분과 과거를 바꿔가며 상류층 세계에 침투하고, 명품 브랜드 ‘부두아’를 통해 스스로를 완벽한 존재로 만들어간다. 그러나 그녀를 추적하는 형사 무경(이준혁 분)이 등장하면서, 치밀하게 쌓아온 가짜 삶은 조금씩 균열을 보이기 시작한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무너지는 가운데, 사라는 끝까지 자신이 만든 삶을 지킬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오른다.
2006년 실제로 있었던 가짜 명품 사건인 '빈센트앤코 사건'을 모티브로 한 <레이디 두아>는 인간의 어리석은 욕망과 명품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다. 극 중 '진짜와 구별할 수 없는데 가짜라고 볼 수 있나요?'라는 대사는 수많은 카피본의 세상 속에 살게 된 우리에게 조금은 섬뜩한 경고의 메시지로 들리기까지 한다.
우리가 소위 '명품'이라고 명명하는 것들은 그 물건 혹은 브랜드의 희소성과 장인정신, 그리고 사회적인 위치를 보장하는 상징이 곁든다. 그러한 요소들이 깃들기 위해 몇십 년 길게는 몇백 년이라는 물리적인 긴 시간 또한 필수이다. 이 모든 것 담아 그 브랜드의 헤리티지라고 표현하며, 이러한 헤리티지가 없다는 것은 '명품'이라고 불릴만한 물건이나 브랜드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과학과 문명의 발전을 거듭해 오면서 글로벌의 경계가 무뎌지고 지난날의 한 달이 지금의 하루정도의 시간으로 압축되면서 모든 오래된 것들의 가치는 그 본래의 의미보다는 지금의 사람들의 입 맛에 맞는 원시적이고 말초적인 것들만 남게 되었다. 유교와 불교를 숭상하던 선대의 우리 민족은 본디 검소함은 자랑으로 삼으며, 평생 청렴과 결백의 정신으로 살아왔다. 사농공상이 철저하던 유교의 이념덕에 사실 현재 대한민국의 명품이라 할 만한 게 많이 남아있지 않은 까닭 그러하다.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한가의 기적이라 불리는 역동의 7,80년대를 거쳐 온 대한민국에 유교가 남긴 건 쓸데없는 서열 싸움뿐이었다.
전 시대를 거쳐 내려온 뿌리 깊은 서열 문화는 '개천에서 용 나는'것이 최고의 미덕으로 삼으며, 나는 평생 하루 18시간씩 막노동을 할지라도 자식만큼은 서울대에 보내 판, 검사 만들어야 한다는 웃지 못할 문화로 번져 80%에 가까운 대학진학률을 기록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 같은 서열 문화가 오늘날 대한민국이 명품 소비의 1번지가 된 이유라고 생각한다. 신분이나 위계질서가 사라진 지금 가시적으로나마 남과 다르게 보이고 서열 속에서 우위에 차지하기 위해서는 소위 명품이라는 것을 휘두르는 것으로 대체 가능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가질 수 없으며 아는 사람만 알아볼 수 있는 명품들의 마케팅은 군중 속에서 서열화를 이루어내야 하는 대한민국 사회에겐 보이는 계급장이요 신분상승의 징표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한민국의 명품시장은 미국의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주창한 베블런 효과의 극단을 보여준다. 명품의 가격이 오를 때마다 백화점의 오픈런 등 과시적인 소비 또한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이는 서열화하고는 다르게 설명된다. 일반적으로 물건의 가격이 오르면 그 수요는 자동적으로 줄어들기 마련이지만, 사치재의 가격이 오를수록 수요가 급등한다는 것은 그 물건의 가격을 그 물건을 가치로 혼동하는 착시에서 비롯된다.
드라마 <레이디 두아>는 이 같은 대한민국 사회의 맹점을 파고든 사회 고발성이 깊은 드라마이다. 명품의 가치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브랜드가 가진 헤리티지가 말해주는 것이지만, 명품의 홍수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헤리티지 따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누가 그 가방을 들었으며, 얼마나 비싼지가 중요하다. 요컨대 가방 하나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대변한다. 그렇기에 점점 더 비싸고 희소한 가방을 사기 위해 애를 쓰며, 급기야 진위와 상관없이 우르르 휩쓸려가는 거대한 유행을 만들어내 '부두아'같은 괴물을 창조해 낸다.
<레이디 두아> 속 가짜 명품 브랜드인 '부두아(boudoir)'의 단어는 프랑스어로 '여성(들)의 혼자만의 공간, 은밀한 공간'이라는 뜻이다. 때문에 페미닌 한 여성의 실내복 차림을 뜻하는 '부두아룩'이라는 패션 용어도 있다. 노출을 중심으로 여성의 섹슈얼함을 강조하는 란제리룩과는 다른 부두아룩은 말 그대로 여성들만의 공간에서나 편하지만 최소한의 격식과 장식을 차리는 패션이라고 볼 수 있다.
제목인 '레이디 두아'는 숙녀를 뜻하는 '레이디(lady)'와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디올(DIOR)'의 합성어로 상승 지향적인 주인공의 욕망을 잘 표현해 낸 제목이다. 레이디 역시 현재에는 일반적인 숙녀 혹은 아가씨의 의미지만, 역사적으로는 꽤 큰 의미의 변화가 있는 단어로, 원래는 '빵을 나누는 여성'을 지칭하는 단어 'hlæfdige'에서 유래했다. 발음도 하기 힘든 이 단어는 점차 '집안을 책임지는 여성', '큰 집안의 여성'이라는 뜻으로 변하며 귀족 또는 상류층 여성을 지칭하는 말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 아마도 이점에서 착안하여 붙인 제목이 아닐까 한다.
드라마 속 가짜 명품 브랜드인 '부두아'의 가방의 디자인은 다소 현실적이진 못하다. 루비나 사파이어 같은 보석이 군데군데 장식처럼 달려있거나 큰 리본 형태나 로고 형태의 다소 부담스러운 비즈디테일은 십여 년 전 돌체 앤 가바나를 연상케 한다. 콰이엇 럭셔리가 최근 몇 년 동안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명품업계 역시 '더로우' 같은 로고리스의 브랜드의 가방이 훨씬 더 각광을 받고 있다. 아마도 제작진이 시청자로 하여금 현실과는 동떨어진 완벽한 판타지 드라마 혹은 우화로 접근하기 위해 만든 장치가 아닐까 한다.
드라마 <레이디 두아>는 인간에게는 정체성이 곧 가치라는 명제를 우리에게 던진다. 이 시대의 명품 역시 그렇다. 단순히 외형을 뽐내며 가치를 내세우기보다는 그 명품이 지닌 헤리티지와 함께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묻고, 때로는 그 명품에 걸맞은 삶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