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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심리 상담

갑자기 문득 깨닫게 된 것

두 번째 상담을 받았다. tci검사나 mmpi검사는 별로였다. 결과도 해석도 뻔한 결과였다.


두 번째 상담을 받고 나서 나는 한 번도 살면서 누군가의 정서적 지지를 받아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가 나를 응원하고 내가 잘되기를 바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느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누가 내게 도움을 준다거나 뭐 그런 것들... 나는 그냥 혼자서 묵묵히 1인분의 내 몫을 해왔을 뿐이다. 그래서 항상 자신이 없고 확신이 없고 불안하고 위축이 되어있던 것 같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마음 편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성장시키지 못한 무능한 부모를 증오하고 원망한다. 그래서 매사에 부정적인가.. 아버지란 사람은 집에 불을 지르기 전까지 일주일에 3~4번은 술을 먹었기에 오늘도 술을 먹고 들어오진 않을까 매일매일을 불안에 떨며 살았던 기억이 난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외갓집을 가면 삼촌이나 이모들은 다 잘 사는 것 같고 이모부들은 책임감 있게 직장생활도 잘하시면서 집도 점점 커지고 사촌들도 다 좋은 대학 나왔는데 외가 쪽 식구들 중 우리 집만 불우한 가정형편에 대한 자격지심도 있는 것 같다.

나는 항상 눈치 보고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내가 성인이 되고 독립을 했어도 늘 상황을 파악해 놔야 그나마 마음이 편하기에 항상 피곤하고 예민하며 맥락에 맞지 않는 말이 들리면 파악하기 어렵고 내 부담이 가중되니 신경질과 짜증이 났다. 언니의 일로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에 파악하는 기능이 과부하가 되어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 것 같다.

상담을 받으면서 나는 살면서 나에 대한 얘기를 귀담아 들어주고 도움을 주거나 지지를 해주거나 조언을 해주려고 했던 사람이 전무했다는 걸 알게 됐다. 누군가 나에게 도움을 주고자 조언하기 위해 100% 집중하며 단어 하나 놓치지 않으려 하는 것을 보며 정서적 보살핌을 받는다는 느낌은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약간 낯설고 어색했다.

내가 많이 닮은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은 외갓집 냉장고에서 언제 누가 넣은지도 모르는 초코파이를 먹으라고 꺼내주던 그 기억밖에 없는 내가 1인분의 몫을 하며 살아남기 위하여 혼자 눈치 보고 마음 졸이며 살아온 인생이 불쌍해서 눈물이 났다.


심리 상담을 받는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내 안에 있는 모든 감정을 끄집어내야 한다. 그 감정이 10년 된 감정이든 20년 된 감정이든 30년 된 감정이든간에 다 끄집어내야 한다.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그냥 그렇게 했다. 근데 끄집어내는 감정마다 너무 아팠다. 안 아픈 감정이 없어서 가지치기로 비유한다면 뿌리 빼고 다 잘라내야 하는 상태 같다. 썩고 곪을 대로 곪아버린 감정들이 하나씩 꺼내질 때마다 악취가 나는 것 같고 기억할 때마다 부모가 원망스러웠다. 이왕시작한 거 그래도 끝까지 해보자는 마음이지만 괴롭다.

우연히 뚜렛증후군이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힘들고 증상이 부끄럽지만 자신을 세상에 드러낸 다큐를 보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는데 그들의 용기를 보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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