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터넷에서 흥미로운 문구 하나를 보았습니다. 'AI를 글쓰기에 자주 활용하면서 우리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겪어야 할 고군분투가 사라지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실입니다.
이제는 손가락 몇 번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막막했던 보고서 초안이 완성되고, 며칠을 고민해야 할 기획안이 단 몇 초 만에 쏟아집니다. 글쓰기의 괴로움과 고민의 시간이 사라진 자리에 효율성이라는 매끄러운 결과물만 남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멈춰 서서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쉬워진 시대에 역설적으로 가장 귀해진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바로 ‘거절하는 힘’이라고 믿습니다.
AI는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해 가장 확률이 높은 답을 내놓습니다. 다시 말해, AI의 답변은 언제나 ‘가장 평균적인 정답’에 가깝습니다. 만약 우리가 AI가 주는 결과물을 아무런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생각과 글 역시 딱 그만큼의 평균 수준에 머물게 됩니다.
처음에는 일을 빨리 끝내서 좋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고유한 색깔은 사라지고, 누구라도 쓸 수 있는 뻔한 문장들만 내 주변을 채우게 될 것입니다. AI가 주는 편리함은 사실 우리의 성장을 담보로 빌려온 것입니다. 고민하고 헤매는 과정을 생략할수록 '고민해서 글쓰는 근육'은 조금씩 힘을 잃어갑니다.
많은 전문가가 AI 시대를 잘 살아가려면 ‘질문(프롬프트) 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명령어를 넣어야 더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있는지, 어떤 비법이 있는지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
물론 도구를 잘 다루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보다 더 높은 차원의 실력은 AI의 답변을 보고 '아니, 이건 내 생각이 아니야'라고 말하며 거절하는 데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거절은 단순히 싫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AI가 내놓은 매끄러운 답변들 사이에서 상투적인 표현을 골라내고, 내 경험과 진심이 담긴 구체적인 문장으로 갈아 끼우는 치열한 편집 과정입니다. AI가 써준 글을 거절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고칠 수 있을 때 비로소 결과물에는 ‘나의 생각’이 배어듭니다.
운동을 해본 분들은 압니다. 근육이 자라는 순간은 가벼운 아령을 수백 번 들 때가 아니라, 도저히 들지 못할 것 같은 마지막 한 번을 끙끙대며 들어 올릴 때라는 것을요.
공부와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답이 보이지 않아 머리를 쥐어뜯고, 쓴 글이 맘에 들지 않아 전부 지워버리는 그 ‘고통스러운 과정’이 바로 우리 실력을 키워주는 핵심입니다.
자취할 때를 생각해 보면 동네 지리를 익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날씨 좋은 주말에 무작정 헤매보는 것이었습니다. 직접 길을 헤매고, 막다른 골목에서 되돌아 나와 본 사람만이 자기만의 지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AI가 대신 고민해 주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의도적으로 ‘헤매는 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글이 막혀 답답해하는 시간, 적절한 단어를 찾기 위해 멍하니 창밖을 보는 시간은 낭비가 아니라 가장 고귀한 투자입니다.
이제 우리가 길러야 할 문해력은 단순히 글을 읽고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합니다. AI가 쏟아내는 정보의 바다에서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가려내는 눈,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이 나다운 글인가?’를 판단하는 안목을 길러야 합니다.
각자의 방법이 있겠지만, 저는 가장 먼저 ‘거리 두기’를 추천합니다. AI가 준 답변을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넣기 전에 메모장에 글을 옮기고 천천히 읽어 보는 방식입니다.
'이 문장에 나의 생각이 잘 담겨 있는가?'
'이 문장과 단어가 정말 최선인가?'
조금이라도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직접 문장을 다듬거나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AI의 제안을 그대로 가져다 쓰지 않고, 나만의 문장을 채워 넣을 때, 비로소 살아있는 글이 완성됩니다.
글쓰기는 나를 발견하는 과정입니다. AI는 결코 당신의 어린 시절 추억이나 어제 느꼈던 미묘한 설렘, 혹은 내일을 향한 간절한 꿈을 대신 써줄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오직 당신만이 가진 고유한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효율성이라는 말에 속아 나의 주관을 너무 쉽게 내주지 마세요. 서투른 첫 문장을 직접 적어보고, 엉망인 글을 고치며 밤을 지새우는 그 ‘고군분투’의 시간을 기꺼이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쌓인 시간만이 당신을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AI의 제안 중 몇 가지를 거절하셨나요?
혹은 거절할 준비가 되셨나요?
AI 시대의 진짜 글쓰기 실력은 바로 그 거절의 순간부터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