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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진상열전(3)-텀블러 편

적당한 텀블러와 적당한 고객들

by 구름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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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진상열전(2)-외부음식 편


오후에 라테를 한잔 마시면서 스타벅스 '진상열전-기물파손 편'을 구상하다가 번개처럼 스쳐가는 기억이 하나 있었다. 특이한 텀블러를 들고 온 손님. 그의 얼굴이나 닉네임은 몰라도 텀블러의 형태는 잊을 수 없는 손님. 텀블러만큼 그 행동도 너무 특이해서 언젠가는 반드시 글로 쓰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던 손님. 다음 편을 쓰기 전에 텀블러와 관련된 경험담 3가지만 풀어보고 가자.


1. 일회용 컵과 노란 오리 텀블러

이 고객은 늘 아침 8시쯤 와서 '아이스커피 벤티 사이즈'를 일회용 컵으로 주문했다. 특이한 점은 커피를 받은 후의 행동이다. 일회용 컵에 커피를 받으면 쓰레기통 앞에서 커피를 한 모금을 마신 뒤에, 가지고 온 노란색 오리모양 텀블러에 커피를 붓고 일회용 컵은 버리고 간다.


'처음부터 텀블러에 담아달라고 하고 400원 할인을 받는 게 더 현명하지 않나?'

'굳이 일회용 컵에 커피를 받아가서 그 컵을 버리는 이유는 뭐지?'

'매장용 컵에 담아서 적당히 마시다가 텀블러에 담아 가는 것도 아니고 왜 일회용 컵만 고집하는 걸까?'

'일회용 컵만 낭비하고 할인혜택도 못 받는 선택을 아침마다 반복하는 이유가 대체 뭘까?'


이 쓸데없는 호기심과 오지랖을 참았어야 했다. 그냥 모른 체 했어야 했다. 그만 순진하게 고객이 텀블러 할인을 몰라서 그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상냥한 목소리로 안내했다.


"고객님, 텀블러 이용하시면 400원 할인도 돼요. 일회용 컵 사용할 때보다 쓰레기도 적게 나오고 더 저렴해요. 다음에 주문할 때 텀블러 바로 주시면 할인해드릴게요."


그러자 고객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내가 내 돈 쓰겠다는데 당신이 왜?"


기분 상했다고 소리를 빽 지르고 가버리는 고객을 보고 어안이 벙벙했다. 말로 뺨을 맞으면 이런 기분일까? 도대체 내가 뭘 잘 못했다는 걸까? 또 만나면 이유라도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 고객은 다시 방문하지 않았다.


2. 꿀단지와 유리병

개인컵의 재질이나 사이즈에 대한 제한이 없다 보니 특이한 컵도 많다. 집에서 쓰는 유리 물병을 가져오는 분도 있고 락앤락 밀폐용기를 가져오는 분도 있다. 음료는 계량컵으로 정확한 양만큼 제공할 수 있어서 상관없는데, 드리즐이나 휘핑크림은 정확한 양만큼 주기 어렵다. 드리즐이나 휘핑크림을 저울 위에 놓고 계량하는 게 아니라 '음료 위에 2~3바퀴' 정도로 가늠해서 주기 때문이다.

2420809808158708-811a971f-7250-4565-860a-58695bbbf0ad.jpg 이게 개인컵이라니...

한 손님은 2.4kg짜리 꿀단지를 개인컵으로 가져왔다. 늘 프라푸치노에 '드리즐 많이', '휘핑 많이' 커스텀을 주문하는 손님이다. 그는 '일반적으로 음료에 올리는 휘핑크림보다 많이' 올리면 양이 적다고 불평하는 VOC를 올린다. 애초에 꿀단지가 너무 커서 휘핑크림이 적어 보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VOC가 많으면 매장의 고객만족도 점수가 낮아지니까 고객의 요청대로 휘핑을 더 많이, 드리즐도 더 많이 올려주기 시작한다.


만족스럽게 프라푸치노를 받아간 고객은 얼마 뒤 휘핑크림 리필을 해달라고 요청한다. 스타벅스는 휘핑크림이 올라가는 메뉴를 주문하면 1회 휘핑크림 추가 제공이 가능하다. 그럼 처음 받아간 만큼 휘핑크림을 짜고 드리즐을 쏟아붓는다. 만약 조금이라도 본인이 만족하지 못할 정도의 양이라면 VOC를 올려서 매장이 너무 춥다느니, 직원이 불친절하다느니 트집을 잡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매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반복된다.


3. 4개의 텀블러

한 남자 고객은 매일 텀블러 4개를 가져와 아메리카노 1잔과 얼음 3잔을 받아간다. 하루 종일 커피를 마시면서 공부를 하는가 했지만, 매장을 체크할 때마다 보면 핸드폰 게임이나 영화를 보고 있다. 그는 내 시선을 눈치채고 서둘러 핸드폰을 숨긴다. 엄마 몰래 게임하다가 들킨 중학생 아들 같다.


그는 한 번에 담배 3~4개비를 피운다. 그것도 성냥으로 담뱃불을 붙여서. 담배를 피우면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거나 핸드폰으로 게임을 한다. 한참 담배를 피우고 올라와서 공부를 좀 하나 싶으면 긴 소파에 드러누워 있거나 책상에 엎드려서 자고 있다.


볼 때마다 얼굴이 점점 시꺼멓게 변하는 것이 간이 안 좋은가 걱정된다. 담배를 그 지경으로 피워대니 얼굴색이 흙빛인 것도 이해된다. 최근에는 빨간 볼펜으로 알 수 없는 글자를 연습장 빼곡히 쓰고 있었다. 허공을 보면서 골똘히 생각하다가 실실 웃으면서 빨간 글자를 적는 모습이 공포스럽다. 그와 눈이 마주친다. 흠칫 놀랐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부디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 프로파일러나 심리전공자가 있으면 좋겠다. 진상이라고 비난하기보단 함께 이들의 행동을 분석해보고 싶다. 이들의 심리를 알고 나면 기분이 한결 좋아질 것 같다. 지금도 가끔 저 손님들을 만나서 사람대 사람으로 대화하는 상상을 해본다. "당신은 왜 그랬나요? 당신을 이해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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