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
'G-dragon'이란 예명으로 활동했던 권지용 씨가 KAIST 기계공학과의 특임교수가 됐다며 떠들썩했습니다. SNS에서는 기사가 공유되자 '권지용이 교수 자격이 있냐' '특임교수의 연봉이 8천만 원이라는데 아깝다' 등의 부정적인 여론이 생겼죠. 그러나 이는 특임교수와 초빙교수라는 미묘한 용어 차이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특임교수는 '특별한 업무가 있을 때만 강의를 담당하는 교수'로 전국 4년제 겸임교원 평균 연봉이 8000만 원 이상이라는 자료가 있습니다. 하지만 KAIST에서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초빙교수 임용"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특임교수와 초빙교수는 뭐가 다를까요?
대학에서는 다양한 교수의 명칭을 만들고 대우도 천차만별입니다. 고등교육법에 따르면 교수는 크게 '전임교원'과 '비전임교원'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임교원은 풀타임(Full-time) 교원이란 뜻이고, 이 중 정년트랙(tenure-track)으로 채용되면 조교수, 부교수, 정교수를 거쳐 정년보장을 받기도 하는 교수입니다. 전임이지만 1~2년마다 재계약을 하는 비정년트랙으로 구분해 채용한다고 합니다.
비전임교원 중에 외부영입형 교원과 특별대우형 교원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외부영입형 교원 중에는 초빙/ 겸임/ 특임/ 대우/ 외래/ 기금/강의전담(시간강사)/ 연구 교수 등이 있죠.
초빙교수는 특정한 분야의 전문가를 대학에 초청할 때 사용하는 용어이고, KAIST는 권지용 씨에게 초빙교수라는 직함을 준겁니다.
YG와 계약을 종료한 후 권지용 씨는 상당히 흥미로운 행보를 보였는데요. 연예소속사가 아닌 '갤럭시코퍼레이션'이라는 메타버스, AI, 아바타 기술 전문 스타트업과 전속계약을 진행했습니다.
갤럭시코퍼레이션은 넷플릭스 '피지컬:100 시즌2'를 비롯해 '스트릿 우먼 파이터', '1박 2일', '뭉쳐야 찬다' '미스터트롯 2'와 같은 화제성 높은 방송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하고, 권지용 씨 영입 후에는 기술과 엔터테인먼트를 결합한 '엔터테크'기업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 갤럭시코퍼레이션이 카이스트 기계공학과에 'KAIST-갤럭시코퍼레이션 엔터테크연구센터(가칭)'를 설립하고 다음과 같은 연구를 진행한다고 전했습니다.
디지털트윈(Digital Twin) 기술 연구
K-컬처와 AI·로봇·메타버스 등의 과학기술 융합 연구
볼류메트릭·모션캡처·햅틱 등 기술을 활용한 아티스트 아바타 개발
권지용 씨의 역할은 1. 글로벌 앰버서더로 카이스트 홍보 2. 학부생 및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리더십 특강 3. 문화행사를 통한 소통 4. 디지털트윈 기술연구에 참여 등을 한다고 합니다.
유사한 사례로 2022년 이수만 씨가 SM엔터 총괄프로듀서이던 시절, KAIST전산학부 초빙교수로 임용된 바 있습니다. 메타버스 연구를 주제로 KAIST와 SM엔터테인먼트가 공동연구를 진행했고 이수만 씨는 자문을 맡았어요.
당시 이수만 씨도 상당히 인지도가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SM엔터테인먼트의 상징적 인물로 초빙교수에 임용된 것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반면 갤럭시코퍼레이션은 상장을 앞둔 스타트업의 적극적인 홍보유치와 권지용 씨의 인지도 때문에 초빙교수가 된 것을 아닐까요?
KAIST에는 문화기술대학원이 있는데요. "첨단과학 기술과 문화적 사고를 기반으로 예술, 인문학, 사회과학을 접목하는 융합형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원이라고 합니다. 주요 연구분야도 음악, 음향,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등이라 연관성이 높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기계공학과와 협업을 선택한 것은 볼류메트릭·모션캡처·햅틱·AI·로봇 등의 연구분야 때문일 것입니다. 볼류매트릭(Volumetric) 기술은 카메라 수십대가 움직이는 인물을 찍어 3D데이터로 캡처하는 기술입니다. 공연장 뒤에서 3D아바타가 등장하거나 실제 움직이는 인물을 메타버스 상에서 구현할 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햅틱 기술은 영화 '레디플레이어 원'에서 주인공이 입은 슈트를 생각하면 됩니다. 게임에서 느끼는 충격이나 게임 속 물체의 무게를 전기신호로 전달해 가상세계를 실제처럼 느끼게 하는 기술입니다. 햅틱 기술을 사용하면 사람들이 가상세계에 더 깊이 몰입할 수 있습니다.
로봇과 AI연구도 포함한다고 하니 공연장에서 로봇의 움직임이나 AI를 활용한 실시간 인터랙티브 영상 등이 나올 수도 있겠죠? AI를 활용한 권지용 챗봇이나 AI영상 콘텐츠가 등장할 수도 있겠고요. 혹은 메타버스 상에서 공연을 진행하고 팬들은 비전프로와 햅틱 슈트를 이용해 실제로 공연장에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갤럭시코퍼레이션과 계약 후 첫 공식행사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IT박람회 CES2024였습니다. 당시 현장에 지드래곤이 등장해서 많은 관심을 받았죠. 그보다 중요한 것은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스피어'공연장에서 컴백한다는 소식입니다.
반구형 공연장이 스피어는 돔 외부에도 화려한 광고를 상영할 뿐만 아니라, 내부에 축구장 두 개와 맞먹는 규모의 스크린이 있습니다. 장거리 음파를 제어하는 알고리즘으로 오디오를 조절하고 곳곳에 휴머노이드가 안내를 해줍니다.
록밴드 U2가 스피어에서 공연한 Achtung Baby는 역사적인 공연입니다. 16만 개의 스피커와 밤하늘처럼 천장 가득 채운 LED디스플레이를 활용해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던 몰입형 공연을 선보였던 거죠.
이 공연장에 가상현실, 증강현실, 인공지능, 로봇 등의 기술이 적용되면 어떨까요? 오늘 있었던 교수 임용식에서 권지용 씨는 “동시다발적으로 저를 소환한다든지, 진짜 제가 누구인지 찾아볼 수 있도록 하는 재미있는 콘서트를 만들겠다”라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AI기술을 활용한 아바타를 공연에 적용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밝힌 거죠.
라스베이거스 스피어에서 연 공연을 메타버스 상에서 생중계할 수도 있습니다. 비전프로를 쓰고 집에 앉아 현장감을 느끼며 가상현실상의 콘서트를 볼 수도 있겠죠. 앨범이 언제 나올지 밝히지 않았지만 "곧"이라고 했다니 좀 더 기다려봐야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 기술발전에 관심을 가지는게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기술발전의 방향성을 제시하면 투자 유치도 쉬워지고 산업계의 발전에도 도움 되니까요. 그런데 온라인상에서 특임교수의 연봉을 문제 삼아 자격 논란이 생기는 것이 다소 의아했습니다.
미묘한 용어의 차이가 오해를 만들고 그 오해가 순식간에 비난 여론으로 커지는 것을 목격하니 섬뜩하더군요. 잘못된 정보는 손쓸 새도 없이 퍼지는 반면, 오해를 바로잡으려는 정보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니 언론인은 처음부터 올바른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풍자소설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 조나단 스위프트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거짓은 빠르게 날아다니고, 진실은 그 뒤에 절뚝이며 걸어온다. 진실이 드러났을 때는 언제나 한 발 늦은 뒤다.
출처
[단독] 지드래곤, 카이스트 특임교수 된다..컴백 전 겹경사
이수만 SM 총괄프로듀서, 카이스트 교수 됐다...'메타버스' 시장 선점 겨냥
"살면서 본 것, 들은 것 다 잊어라" 22세기의 콜로세움, 스피어의 비밀[라스베가스 스피어를 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