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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과언니 May 16. 2023

지금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아요.

스칸디아모스에 대한 생존확인

"저... 선생님, 제가 알고 있는 것과 조금 다른 게 있어서요"


어차피 하루 듣고 마는 건데......

그냥 그러려니 하면 되는 건데......

강사님이 전하려는 건 조그만 공예품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고 마는 건데......


나는 참지 못하고 손을 들고 말았다.


기후변화, 탄소중립 등의 키워드가 익숙한 요즘,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환경강의나 체험프로그램 등이 많이 개발되어 진행되고 있어 

각 지자체가 마련한 문화센터나 주민센터, 전시관이나 야외축제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다양한 친환경 재료 또는 재활용이나 새활용을 위한 재료를 이용한 만들기 수업이 궁금하던 중 

수업을 들을 기회가 생겼던 터, 

즐겁게 자리에 앉았던 그 시간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불편한 시간이 되고 있었다.


불편감은 재료를 알고 나서부터 시작되었다. 

요즘 친환경 인테리어 재료로 벽체 마감에 사용되고 있는 '스칸디아모스'로 

미세먼지 제거하는 장식용 소품을 만드는 수업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수요가 많으면 수입도 많이 해올텐데, 

그럼 북유럽에서 우리나라까지 탄소발자국이 꽤 나오겠는데......'


생각이 하나, 둘 튀어나온다.


'부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입해야 했던 강력한 장점이 있으면 좋겠다. 

저 멀리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한반도까지 배 타고 왔을 텐데......'


재료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 지 몇 분 되지 않아 머릿속에서는 빨간펜이 여기저기 체크표시를 하고 있었다.


"여러분, 이런 식물을 본 적이 있나요? 스칸디아모스라고 해요, 

북유럽에 사는 이끼로 순록의 먹이예요.

일 년 중 정해진 기간에만 수확할 수 있는데, 

이것을 건조하고 열처리를 하고 염색을 해서 이렇게 우리가 쓰는 거예요. 

열처리를 해서 더 이상 생장을 하지 않지만, 여전히 살아있어서 미세먼지를 흡수하고 공기를 맑게 해 줘요."


뭐/라/고/요?


"저 선생님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건조에 열처리까지 한 생물이라면 죽은 것으로 봐야 할 것 같은데요. 

열처리까지 했으면 세포가 살아있지 않을 거예요. 

게다가 살아있다는 건 세포활동이 있다는 것인데, 생장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설명 같은데요."


강사님의 표정은 다소 굳었지만 애써 친절한 미소로 대답을 해주려 애쓰고 계셨다. 

하지만 말을 끊고 질문한 나에게,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나에게 

기분이 상한 것은 얼굴에 드러났다. 

하지만 잘못된 정보임이 틀림없는 것 같은데 그냥 듣고 있을 수만은 없어 계속 이어갔다.


"솔직히 저도 오늘 주의 깊게 본 것은 처음이라 이 생물종을 잘 모르기는 합니다만, 

원래 살던 환경이 바뀐 데다가, 열처리에, 화학약품으로 염색까지 된 것을 

살아있다고 보기에는 무리인 것 같고요.

미세먼지 흡수가 아니라 저 가지처럼 뻗은 사이사이에 먼지가 흡착된다고 봐야 할 것 같은데요."


라고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강사님은 바로 말을 받아내었다.


"이건 살아있는 게 맞/습/니/다. 자 이제 나눠드린 것으로 한 번 만들어보세요."


더 이상 소통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표현이었고, 

대화를 이어가는 데에 대한, 내 질문에 대한 답변 거절이었다.


내 손에 놓인 스칸디아모스를 요리조리 관찰하면서 수업 내내 스마트폰을 만지작만지작. 

이끼라면 헛뿌리라도 있어야 할 텐데... 뿌리도 없고 잎이라고 볼 수도 없고...  

문득 표본장 속에서 몇 백 년 동안 마른 상태로 있던 이끼표본에 물을 주니 다시 싹이 나고 살아났다는, 

어디선가 들어본 이야기가 생각나기도 했다. 

그렇게 그날의 수업은 끝이 났다.


강사님은 스칸디아모스를 살아있다고 믿고 수업을 마쳤고, 

나는 스칸디아모스가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고 부정하며 수업을 마쳤다.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여기저기 식물을 알만한 지인들에 전화를 하고 물어보던 중, 

마침내 스칸디아모스의 정체가 이름에는 이끼를 뜻하는 모스(moss)가 들어가지만 

실제로는 이끼가 아니라 '지의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의류는 곰팡이와 같은 균류와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세포들이 서로 공생하며 만들어가는 생물체이다. 

이끼와는 전혀 다른 분류군이고 식물이 아니었던 것.


'이제 지의류라는 것을 알았으니, 지의류를 전공하시는 분들에게 여쭤봐야겠다'

목마른 자가 샘을 판다 했던가.

여기저기 검색하던 중, 지의류를 연구하는 전문가에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BGM이 있다면, 천상의 뷰가 나올 때 들려오는 고운 합창소리가 깔렸을 것.

스칸디아모스에 대한 나의 의문을 종결지을 답신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시판되는 스칸디아모스는 검역상 열처리를 해야 할 것 같고 그런 것이라면 죽은 것으로 봐야 함 


-지의류는 공생체라 단독 생활 생물체보다 훨씬 민감할 것이라고 판단됨 


-즉 공생 곰팡이는 살아있는 조직이 남을 수 있을지라도 광합성을 하는 조류는 모두 사멸될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맞을 것(그럴 경우 더 이상 지의류의 강인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없음) 


-염색을 하는 이유는 조류가 죽으면 더 이상 지의류 고유한 색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 백화 됨(

 즉 하얀색의 곰팡이 조직만 남게 됨) 



이어, 몇 가지 추가적 질문에 대해 메모하고 싶을 말들이 덧붙여져 있었다.


'생명력이 강하다고 알려진 지의류라고들 하지만, 생물마다는 고유한 생태적 지위(niche)가 있어서 모든 곳에 살 수는 없다. 오직 인간만이 이 지구상에서 그렇게 살고 있는 것.'


스칸디아모스에 대한 정리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며 스스로를 달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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