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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na Mar 21. 2017

취미 생활이 20개인 그 여자의 슬픈 초상

Contents Study #4. 20대 청춘들의 잡식성 문화소비

주변을 둘러보면 전시회 관람, 영화 감상, 꽃꽃이, 책 읽기, 각종 락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야구와 농구 등의 스포츠 경기에도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이를 SNS에 활발히 포스팅하는 여성들을 한 두 명씩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한국연차심리학술대회에 참여하며 준비했던 주제, '문화 소비를 잡식성으로 수행하는 20대 여성, 피콕족'에 대해 소개하려 한다.

연구 대상을 20대 여성으로 한정지었던 것은 남성까지 포함해 연구를 진행하기에는 학술대회 준비 기간의 제약과 인터뷰 대상자 모집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여전히 이번 주제를 브런치에서 다루고 싶은 이유는 내 주변에서 이른바 '피콕족'들을 발견하는 빈도 수가 오히려 늘었기 때문이다.


온갖 약속으로 플래너가 가득 찬 그녀

피콕족을 종류를 불문하고 문화 활동을 잡식성으로 소비하는 20대 여성으로 정의했다. 이후 이들의 심리기제를 분석하기 위해 피콕족 3명과 대조군으로써 일반적 문화소비자 1명 대상으로 1회 평균 2시간, 총4회에 걸친 개별 심층 면접을 진행했다.


모집한 이들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결과 밝혀 낸 이들의 특징적인 공통점 네 가지는 아래와 같았다.


1. 이들은 보통 6개 이상의 문화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함

2. 일주일에 평균 이틀 간 문화소비에 시간을 보냄

3. 대한민국 사람들의 문화소비 비중이 전체 소비의 4.2%(*'14년 기준)인 것에 비해 이들은 소득의 10%를 문화소비에 투자


이 외에도 재미있었던 사실 몇 가지는 또 다음과 같다. 인터뷰에 참여했던 인터뷰이 대부분이 외모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거나, 주변 사람을 설명하거나 묘사할 때 그들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부를 강조한다는 사실이었다. 더불어 플래너를 습관적으로 사용하고, 일주일의 스케줄이 각종 지인들과의 만남으로 가득찬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것보다 더 꽉찬 플래너가 많았다.


그리고, 문화소비와 관련해 이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 중 가장 결정적인 사실 하나는 바로 이들에게 문화 활동이란 '자신을 더욱 가치있게 만들 도구'로서 소구하고 있었던 점이다. 대조군으로 함께 인터뷰했던 일반적 문화소비자 1명, 연구 내용에는 포함되지않았지만 번외로 함께 인터뷰했던 외국의 잡식성 문화소비자와는 확연히 다른 인식이었다. 후자의 경우 문화 활동이란 '여가를 보내는 수단'으로 더욱 강력히 인식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쉬지 못할까?

이렇게 우리가 풀어야 할 핵심 질문이 간단해졌다. 왜 피콕족은 문화 활동을 여가 그 자체로 즐기지 못하고, 일주일 중 하루를 온전히 쉬는 경우가 없는 것일까-라는 질문이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피콕족은 여가생활로
문화소비를 선택함으로써
'문화소비를 통해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피콕족은 여가활동의 한 종류로 문화 활동을 즐기는 내재적 동기가 아닌, 자기개발을 위해 문화 활동에 참가하는 외재적 동기에 의해 움직이므로 문화소비영역의 폭이 넓어졌으며, 강박적으로 문화소비를 하게 된 것이다.

외재적 동기에 의해 넓어진 문화소비영역의 폭은은 피콕족이 문화 소비와 관련해 '자신만의 영역' 혹은 '자신만의 취향'을 확실하게 발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다.


이러한 결론은 피콕족의 가정 환경과도 연관이 일부 있다고 할 수 있다. 조사했던 바에 따르면, 피콕족은 외모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부모로부터 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은 부모로부터 '여자라면 ~게 행동해야 한다' 혹은 '여자라면 예뻐야 한다', '여자는 자기 자신을 가꿀 줄 알아야한다'라는 말을 듣고 자랐으며, 고등학생이 되기 이전에 부모로부터 화장하는 방법에 대해 습득한 경우도 많았다.


즉, 외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부모로부터 성장하면서 '예쁘지 않으면 인정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내재화했고 이로 인해 1) 낮은 자존감과 2) 타인의존적 성향을 가지게 된 것이다.


다시 이들은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타인의 인정을 통해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는 강한 인정 욕구를 지니게 되었고, 그 결과 일상 생활에서 외모 및 스펙에 집착하거나 SNS 활동, 대외활동 등을 통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가시적, 사회적 활동에 과도하게 몰두하는 모습을 보이는 양상이었다.


안타까웠던 점은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일상 생활과 여가 생활, 사회 생활 모두를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는 점이었다. 여가를 보내는 방식을 선택하는 과정에서도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채우기 위해 문화소비를 선택한 결과, 문화활동 과정에서도 약한 수준의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문화소비 과정에서도 타인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하는 경향은 이로 인한 스트레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문화소비를 강박적으로 하게 하는 악순환마저 야기했다.


다른 이를 유혹하기 위해 한껏 펼친

화려한 공작(Peacock)의 깃털

수컷 공작은 암컷 공작을 유혹하기 위해 화려하게 깃털을 펼친다. 깃털이 곧고 화려할 수록 건강한 수컷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고 한다. 한 편 속설에 따르면, 공작이 화려하게 깃털을 펼치는 동안 이들이 받는 스트레스의 수준은 어마어마하다고도 한다.


공작을 뜻하는 Peacock이라는 단어가 수컷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조금 아이러니하지만, 우리가 위와 같은 특성을 지닌 20대 여성을 이른바 '공작족'이라 명명한 이유도 동일한 맥락이다. 이들은 동성 혹은 이성으로 분류되는 타인에게 인정 받기 위해, 그들을 유혹하고자, 최대한 많은 문화 생활을 통해 자기 스스로를 치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장르를 불문한 다양한 문화소비가 일종의 과시적 소비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공작의 화려한 깃털과 같은 역할을 한다. 문화소비 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공작이 화려한 깃털을 펼치기 위해 혹은 펼치는 동안 받는 스트레스의 수준과 동일하거나, 혹은 그 이상이라고 추측 할 수도 있겠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기만 했던 이들의 수 많은 문화생활 그리고 여가생활이 사실은 이미지를 통해 사람을 판단하는 '외모지상주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부를 가늠할 수 있게 하는 스펙을 자신의 존재의의로 치부하는 '스펙지상주의'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비추는 거울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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