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오해의 중도 _ 비로소 이면
어려서부터 나는 까다로운 아이가 아니었다.
옷도 입맛도, 엄마가 사주는 대로 아빠가 먹으라는 대로.
이런 날 두고 사람들은, 친척들은 참 착하다고 했다.
유일하게 분노를 표출한 것은
말 그대로 엄마 친구 딸인 아이가 내 책을 '많이' 빌려 가는 게 싫었다고 일기장에 쓰여있다.
아, 생각났다. 그 아이는 가끔 나와 똑같은 옷을 입기도 했다. 기억 속에 유독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분명 싫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상관없다고. 옷도 먹는 것도, 내겐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국민학교 시절, 동생과 다툰 일이 있었다. 훗날 동생은 그때의 내가 아주 많이 미웠다고 고백했다. 감정을 폭발시키고 있는 자신 앞에서, 나는 양말을 신으면서 덤덤히 말했다고 한다. “어차피 너는 지금 내게 화를 내지만, 결국 다시 화를 풀게 될 거야.” 미래를 다 안다는 듯 굴던 그 한마디가 동생은 참 미웠단다. 하지만 나는 그때 미래를 말했다기보단, 이 다툼의 양면성을 봤던 것 같다. 이리 싸우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없던 일로 돌아가게 되는 일 말이다.
당시 10살의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인간만사 새옹지마’였다. 그리고 맹자의 ‘고자장’ 구절.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려 하면,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근육과 뼈를 고통스럽게 하며, 몸을 굶주리게 하고, 생활을 궁핍하게 하며,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한다. 그리고 그 시절 엄마가 생일 선물로 사주신 오쇼 라즈니쉬의 《뱀에게 신발신기기》와 함께 그 책은 아직도 내 책장에 양귀자 <모순>옆에 꽂혀 있다. 제목부터가 양면성 혹은 모순을 말하고 있었을까
까다로움은 없었으나 공포는 있었다.
눈이 매우 나쁜 나는 밤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갇혔다. 그 속에서 혹여 내 생각이 나를 힘들게 하지 않도록 조심했었다. 무섭고 답답하다는 생각을 깊이 파고들면, 정말로 숨이 막히는 트라우마가 덮쳐올까 봐. 나는 필사적으로 생각의 방향을 틀어야만 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포는 부모님의 다툼이었으리라. 매일 반복되는 극단의 다툼 속에서 나는 어떻게든 평온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절에 다닌 나에게 그때 내 손에 쥐어진 것이 ‘치우침이 없는 중도의 가르침’이었으리라. 삶이 극히 즐겁고 극히 괴로운... 양 극단을 피하는 것.
하지만 너무 어린 나머지, 가장 완벽한 조율이자 조화인 그 ‘중도’를 나는 그저 ‘중간’이라고 오해했다. 감정의 파고가 일렁이지 않도록 억지로 짓누르는 것, 그것이 내가 찾은 유일한 균형이었던가
그래서였을까.
나는 왜 그리도 중도에, 중용에, 균형에 목 말라하며 스스로에게 제동을 걸었는지.
즐겁다고 생각한 일 뒤에는 부러 안 좋은 면을 떠올렸고, 나쁜 일 또한 마찬가지였다.
동전의 앞뒤를 동시에 쥐려는 아이처럼, 항상 모든 일에서 내 나름의 반대편을 보려 했다.
어린 아이 수준의 깜냥으로 바라본, 사실의 이면들..
너무 많은 생각은 내 발목을 잡았고, 나를 높은 곳에서 낮은 곳까지 자이로 드롭 태우듯 흔들었다. 괴리감에 몸서리치던 혼란의 나날들. 그때의 나는 나를 ‘껍질 벗긴 포도알 속에 들어있는 것 같다’고 일기에 썼다. 아마 눈이 나빠서였을지도 모르겠다.
학창 시절 친구들이 교생 선생님에 설레고 불어 선생님을 짝사랑하고 듀스에 열광하며 졸도할 때, 내게는 그런 종류의 열정이 없었다. 헌혈하러 갔던 날이 기억난다. 다른 친구들은 다 헌혈을 하는데, 내 차례가 오자 나는 할 수 없다고 했다. 헤모글로빈 수치가 떨어져서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생각했다. '아, 나는 피도 물 같은가.'
결국 뜨겁지도 차갑지도 못한 상태로 남겨진 나. 어쩌면 나는 나를 지독히도 억압했던 것 같다.
너무 기대했다가 실망할까 봐 미리 제동을 걸었던 건지도 모른다.
사실은 그저 겁이 많았던 것 같은데
남들에게도,
자신에게조차도 너무 겁이 많은 아이. 그래서 의심이 많은.
그런 내가 나를 안아준 건 불과 몇 해 전이다.
그리고 그때 왜 중도의 가르침을 오해했는지 알게 된 것은 이 글을 쓰면서이다.
양면과 이면
그런 내가 '나 정말 까다롭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까다롭다.' 라고 느껴진 것은 <브런치>에 연재를 시작하고 나서다.
고치고 쓰고 다시 쓰고, 글자를 바꾸고 표현을 바꾸고, again, again~
허 참 까다롭네, 라고 느껴지는 순간.
그제야 알았다.
아, 나한테도 이런 까다로운 점이 있었네.
하, 나는 이 일을 좋아하는구나.
나는 내 글 속에서 열정 어린 나를 느낀다.
우리는 때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진짜 색깔을 지우고
'무색무취'의 삶을 선택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 무미건조함 이면에는
당신만이 가진 지독하게 까다로운 진심이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피 대신 물이 흐르는 것 같던 무미건조한 일상 속 ,
당신만 알고 있는 '까다로운 진심'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