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하다.
요 며칠 꿈을 꾼 걸까. 새로운 세상이 온다 하니 나도 이 파도를 타보리라 마음먹었지만,
사실 내면엔 고질병 같은 '불안'이 더 크게 도사 리고 있었으리라.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
"가진 것이 많은 이들에게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가진 것이 없는 이들에게는 조지 오웰의 《1984》가 펼쳐질지도 모른다."고 어느 카이스트 교수는 말했다.
나는 내내
인류의 미래가 허버트 조지 웰스의 《타임머신》 속 풍경이 될것 같았다.
서기 802,701년, 지상에는 연약하고 아름답지만 지능을 잃은 채 과일이나 탐하며 퇴화한 '엘로이족'이 살고, 지하에는 밤마다 그들을 사냥해 먹이로 삼는 괴물 '몰록족'이 사는 세상.
부의 격차에 따라 사는 곳이 나뉘고, 지하의 삶은 늘 전쟁 중인 설정.
미래를 다룬 이야기에는 약속이라도 한 듯 이런 비극이 등장한다. 그래서 더 불안했는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이곳이 무너질까 봐.
그리 마음에 드는 삶은 아니었을지라도, 이것조차 지키지 못하고 추락할까 봐.
불안에 쫓기다 보니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이들만 눈에 들어왔다. 그러다 문득 아차 싶었다.
아프리카 아이들이나 저소득층 아이들을 돕자는 광고는 무심코 '건너뛰기' 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 《거미줄》 속 '칸다타'가 된 기분이었다.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지옥에 떨어진 칸다타. 부처님은 그가 생전에 거미 한 마리를 살려준 유일한 선행을 기억해, 극락의 은빛 거미줄 한 가닥을 지옥으로 내려보낸다. 칸다타는 기뻐하며 거미줄을 타고 위로 기어오르지만, 밑에서 수많은 죄인이 따라오는 것을 보자 소리친다.
"이 거미줄은 내 거야! 다들 내려가!"
그 이기적인 외침이 떨어지기 무섭게 거미줄은 툭 끊어졌고, 그는 다시 깊은 지옥으로 추락한다.
부처님은 그 모습을 보며 슬픈 표정을 짓는 것으로 끝난다.
만약 칸다타가 거미줄에만 집중해서 올라갔다면 어땠을까?
밑을 보며 소리치는 대신, 그저 묵묵히 제 갈 길을 갔다면 결과는 달랐을까?
내가 인류 전체를 구원할 순 없어도 '나만' 잘 살자는 게 아니라,
'나도' 잘 살자는 마음이라면... 그 정도의 소심한 핑계는 괜찮지 않을까.
거미줄을 붙잡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나 자신에게, 오늘은 그 정도의 핑계를 대어본다.
나만이 아닌 나도 잘 살고 싶다는 그 마음은 괜찮은 핑계가 될까?
그렇게 거미줄을 잡고 올라가 마침내 도달한 그 곳은 정말 지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