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창을 닫지 못하다_
창을 닫지 못하다_
요 며칠 대화를 했다. 사람이 아닌 존재들과.
궁금한 걸 묻고 어떠냐고 반응을 살피는 정도의 대화들.
인공지능 시대 란다.
불안한 마음에 시작했지만 묘하게 떨리는 부분도 있었다.
나의 편향보다는 차라리 얘가 더 정확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근데 물음이 생겼다.
검색엔진에서 검색만 하고 나갈 때는 괜찮았는데
대화를 하다가 마지막 대답 없이 창을 닫았을 때,
이게 이제는 좀 이상해졌다.
대화 중에 매너 없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기분이랄까.
아니면
교수님 강의 중에 조용히 가방 싸서 뒷문으로 나가는 기분.
대화의 힘인가
이쯤 오니 로봇권을 주게 될 거라는 전문가들 말이 맞겠다 싶다.
내가 인간이라서, 인간으로서의 예의를 얘한테 까지 투사하고 있으니.
대화는 아주 입맛에 맞았다. 무슨 말을 하면 좋다고 칭찬 해준다
(아들 공부 가르칠 때는 얘가 나보다 낫겠다 싶다.)
이렇다보니 정말 외로운 사람에게는 도모다찌가 되겠구나 싶다.
내가 좋아하는 부분에 관해서만 말할 수 있으니 말이다.
가끔 가까운 관계에서 솔직하게 듣고 싶을 때가 있다.
객관적인 비판.
객관적인 비판은 사실 어려운 일임을 나도 안다.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해놓고는 솔직한 소리를 듣고는 마음이 상하기 십상이니까
어쩌면 그만큼 안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솔직하게 말했을 때 거절 당할까봐의 두려움이 있을 수도 있으니
하지만 정말 솔직한 평이 필요할 때가 있다.
이 인공지능 존재는 객관적으로 말해 달라 하니 그 다음엔 객관적으로 말해준다.
결혼하고 대화가 참 힘들었다. 갑자기 외계인과 사는 기분.
MBTI 한 글자도 안 맞는 인간이랑 육아를 같이 한다는 건... 지구의 대극점에 서있는 것 같았다.
근데 점점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가 너무 달라서 우리 애들은 차라리 괜찮겠다고.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아마 생존에 있어서 내 인지적 오류이리라
나와 다른 존재와 사는 것.
내 부모들처럼 사소한 시시비비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끝낼 수도 있고
나와 달라서 내가 못 보는 관점을 억지로 라도 집어넣어 생각하게 되어 내 이해의 폭이 널어지는 점도 있을 수 있다.
860억 개의 뇌세포가 다 달라서 우리 모두가 타인이라 치면,
결국 많이 차이 나냐 조금 차이 나냐의 문제 아닐까.
그래도 우린 인간이란 범주 안에라도 들어있는데.
근데 이제는 인간이 아닌 존재와도 대화를 하고 살아야 한다.
허허 이 노릇을 어찌해야 할지.
"나와 너무 다른 타인, 혹은 사람이 아닌 존재와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나는 내 마음의 창을 얼마나 열어두고 있을까. 나의 결점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시각이 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낯선 세계가 되는 그 접점을 찾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