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madicgirl Nov 26. 2016

D199. 불편함이 그립다

Part2. 푸른 대지와 붉은 사막을 건너는 법, 북미 로드트립_미국


하루가 넘는 장거리 버스들에 단련이 되기는 했나 보다. 10시간 비행쯤은 껌이 되어버리다니. 눈 감았다 뜨니 다른 세상, 미국. 언제나처럼 유쾌하지 않은 미국의 입국심사를 마치고 새로운 시작 앞에 섰다. 


여행 제 2막이다.


브라질에서 마지막까지 뒤를 걱정하지 않고 놀 수 있었던 건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다. 가고 싶은 곳보다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 나라 미국. 아무런 계획도, 생각도 없이 쉴 수 있는 이모집.


비행기에서 내려 도시로 나가는 방법을 고민할 필요도 없고 오늘 몸을 뉘일 숙소를 찾지 않아도 되는 건 처음인 것 같다. 어디 그뿐인가.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는 화장실에서 언제 찬물이 나올까, 언제 수압이 약해질까 걱정할 필요 없이 마음껏 샤워를 한다. 깨끗하고 포근한 침대에서 침낭 따위 던져버리고 이불에 포옥 안겨 꿀잠을 잔다. 얼마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그리운 음식들로 배가 찢어질 듯 포식을 한다. 아무 데나 짐을 펼쳐놓아도 걱정할 필요가 없고 온 집안을 맨발로 돌아다닐 수 있다. 맞아, 원래는 방바닥에 다리를 쭉 뻗고 누울 수 있었지. 하아! 이 얼마나 그리웠던 편안함인가!



인앤아웃도 있어요.




하지만 나는 불편함이 그립다



묵은 때를 밀고 묵은 빨래를 해내고 나면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할 줄 알았는데, 깨끗하고 편리하기만 한 모든 것들이 어색하다. 조금은 안전하지 않아 긴장되고, 조금은 더러워도 마음은 한없이 유쾌했던 남미가 그립다.


몸은 더할 나위 없이 편하고 오랜만에 느껴보는 가족의 품은 너무나도 따뜻한데, 밤이면 꿈속에서 나는 다시 볼리비아로, 페루로 달려간다. 고작 4시간 시차에도 적응을 못하는 것인지 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며칠째 꿈속에서 라틴 어딘가를 헤매다 눈을 떠보면 어두운 새벽. 왠지 울적해진 기분으로  언젠가 중동의 붉은 사막에 다녀와 한참 동안이나 운동화를 빨지 못하던 날들을 떠올린다. 운동화에 박힌, 눈에도 보이지 않는 작은 모래알들이 사라지는 것이 싫었다. 운동화를 그대로 신고 다니면 언제든 그 붉은 사막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여행의 새로운 막이 열렸지만 여행이 끝나버린 듯 지나온 시간만 그리워하고 있다니. 그만큼 남미가 강렬했던 걸까, 내가 꽤나 질척거리는 사람인 걸까.


잠은 오지 않고 멍하니 누워 지구 반대편 이들의 밀린 일상을 따라잡는다. 인터넷은 너무나 빠르고 쏟아지는 수많은 소식들에 피로감이 몰려온다. 아, 괜히 열어봤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가볍게 떠나왔다 말하지만 모든 물음의 시작은 언제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였다. 미래를 그리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라는 세상의 압박. 그건 나에게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한 번뿐인 인생, 재미있게 이것저것 해보면 안 되나? 왜 꼭 뭔가를 이뤄내고 성공해야만 하는 거야? 답을 찾기 위해 떠나온 여행은 아니었지만 걷다 보면 조금은 달라지려나 기대를 버릴 순 없었다. 그런데 결국 다시 여기다. 


돌아가면 뭐 하고 살 건데? 어떻게 살 건데?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는 다른 이들의 ‘있어 보이는’ 어떤 하루의 단면을 보며, 내 하루의 의미를 찾아보려는 비루한 자화상을 마주해버린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원했던 이 여행, 아직 긴 여정의 한가운데 있음에도 내 안의 찌질함은 여지없이 나를 덮치곤 한다. 정신없이 새롭고 정신없이 행복했던 남미에서 잊고 있던 질문들. 그러나 평생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그 고민의 굴레를 다시금 예감하는 순간이랄까. 불어오는 바람으로부터 초연해지는 날은 언제쯤 올는지. 애초에 초연해질 수 없어서 다른 리듬의 세상을 찾아 방황하는 것은 나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찌질함을 감추기 위해 오늘을 의미 있게 포장하고 싶지는 않다. 이 또한 나와 이 여행의 일부니까. 그래서 어쩌겠다고? 나에게 묻는다. 별 거 있나. 오늘도 ‘없어 보이게’ 재미난 하루를 사는 수밖에. 


인생은 백 미터 달리기 경주도 아니고 마라톤도 아니다. 정해진 목표지점도, 정답도 없으니까. 나는 언제든 흔들리겠지만 이 사실을 자주 기억해내려고 이 여행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껏 그래 왔듯 고개를 들어 하늘도 보고 옆길로 새어 나무도 보고 그렇게 뚜벅뚜벅 걸어가야지. 세상이 원하는 사람은 되지 못할지라도,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어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D196. 또 다른 시작으로 가는 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