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

스물여덟 어떤 봄날 일요일 오후의 사색

by 연수

글을 쓴다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 이유는 글을 쓰는 목적에 있다.

어떤 생각을 글의 형태로 묶어두는 순간 그 글은 누군가에게 읽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내재하게 된다.

나만 보는 일기장에 글을 쓰더라도 그렇다.

적어도 미래의 내가, 혹은 내가 죽은 뒤에 나의 가족이 읽게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글을 쓰는 건 부담스럽다.

어떤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닐 때에는 형태가 모호하지만 그만큼 자유롭다.

그 생각이 어떤 형태이든 아무도 열어서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굳이, 굳이 머릿속의 생각을 헤집어 열어서 글의 형태로 펼쳐놓는다.

글이란 건 너무 명확하고 논리적이어서 내가 가진 생각이 어떤 모양인지 관찰하고 싶을 때 유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자들도, 소설가들도, 시인들도, 과학자들도 글을 쓴다.

생각은 시시각각 변하고 휘발되기 쉬운 반면, 글은 영원불변하다.

그래서 글을 쓰는 건 유용하지만 부담스럽다.


생각을 펼쳐볼 수 있는 도구로는 '말'도 있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규칙에 따라 입으로 소리를 만들어내면 좀 더 쉽게 '언어'라는 형태로 생각을 펼쳐볼 수 있다.

그런데 왜 '말'이 아닌 '글'을 사용하는 걸까?

말하는 것은 기록되지 않기 때문이다.

구글 검색창에 '기록의 기원'에 대해 검색해보면 국립중앙도서관의 설명을 확인해볼 수 있다.



"최초의 기록 매체, 인간의 두뇌에서 디지털 방식의 기록매체로

최초의 기록 매체는 인간의 두뇌였다. 정보와 지식은 두뇌의 해마(海馬)에 기록되어 기억으로 남는다. 하지만 기억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왜곡되거나 사라지기도 한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인류는 바위, 점토판과 같은 외부 매체에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구전(口傳)으로만 이어지던 인류의 지식은 문자를 통해 체계적으로 축적되기 시작했고, 다양한 기록 매체들이 발명되었다. 엄청난 양의 식을 품은 기록 매체들은 곧 세상을 깨우기 시작하였다."

출처: https://nl.go.kr/NL/contents/N40701050000.do



그렇다. 기록은 인류 지식의 축적을 위한 도구이다.

그렇다면 기록하는 행위는 인류의 지식을 축적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대학원생으로서 어떤 주제에 대해 논문을 작성할 때에도 이러한 기록의 의미를 떠올리는 것이 좋다.

글을 쓰는 것을 그저 '남한테 내 생각 보여주기'라고만 정의하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생각이라는 건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규칙으로 기호화하고 기록되어야만 없어지지 않고 인류의 지식 도서관에 축적될 수 있다.

인간의 뇌는 죽으면 사라지지만, 기록물은 한 개인의 삶보다는 오래 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